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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여행 > 중남미여행 > 중남미여행 에세이
· ISBN : 9788927806431
· 쪽수 : 332쪽
· 출판일 : 2015-05-06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01 과테말라 GUATEMALA
02 멕시코 MEXICO
03 쿠바 CUBA
04 콜롬비아 COLOMBIA
05 볼리비아 BOLIVIA
06 페루 PERU
07 칠레 CHILE
08 아르헨티나 ARGENTINA
그녀의 에필로그
그의 에필로그
리뷰
책속에서
불과 한 달 전까지 높은 건물, 작은 책상에서 일하던 우리가 남미의 오래된 도시에 던져졌다. 우리는 이 여행을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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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는 보통 남편 무릎에 먼저 올라갔다가 내 무릎으로 옮겨와 고롱고롱 잠을 잤다. 능숙하게 주문받고 서빙하는 소년 사무엘과도 친해져서 틈틈이 근황을 묻고 수다를 떤다. 이 아무렇지도 않은 날들이 나중에 몹시 그리워지겠구나. 가끔 그런 생각이 들면 미리 앞서 마음이 서늘해질 만큼, 행복한 시간.
미리 고백하건대, 나는 이곳, 안티구아, 남미 여행의 첫 도시에서 여행의 목표를 모두 이루었다. 이 하루, 이거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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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화려하고 웅장한 선물들로 듬성듬성 엮어진 것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 돌담 위의 꽃, 맛있는 커피 한잔, 사람들의 미소 같은 작은 선물들로 촘촘히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게 다 안티구아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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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는데 방이 없으면 다시 보고타로 돌아올 거야.”
“방이 없으면 전화해. 내가 도와줄게.”
숙소 주인장이랑 친해져서 보고타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우리 이야기에, 한국의 어머님께서는 “나그네가 그리 정을 주면 어쩌냐”고 하셨는데, 우리도 우리지만 호스텔을 운영하는 주인장이 이리 정을 주면 어쩌자는 건지. 다시 올 기약도 없는 나그네들에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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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이 별로 없었다. 시간은 충분했고 하늘은 맑았다. 사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면서 이곳에서의 시간을 보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도 많다. 다만 그 행복의 질감만이 선명하다. 나른한, 그러나 가볍지 않은 기억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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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별이 뜨면 발아래에도 별이 뜨고, 해가 져 하늘이 붉어지면 땅도 함께 붉어졌다. 넋을 놓고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면 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투어를 끝내고 숙소에 들어와서 누우면, 아까 본 그 하늘이 그리워졌다.
“우리 한 번만 더 보고 가자.”
“응, 한 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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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름다운 도시 발파라이소에서 얼마 전 큰 화재가 났다. 내가 걷던 그 포근한 도시가 잿더미가 되었다. 폐허에 남겨진 것들 그리고 남겨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생각에 아내와 나는 며칠 동안 꼼짝 없이 후유증을 앓았다.
재작년에는 토레스델파이네, 작년에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불이 났다.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생각보다 쉽게 사라진다.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리운 곳이 있다면, 시간이 그리 충분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