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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27809654
· 쪽수 : 372쪽
책 소개
목차
제1부 위대한 선택
제2부 죽은 자를 밟는 자
부록1 화보
부록2 여흥민씨 가계도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뉴욕은 제반 시설이 밴쿠버나 몬트리올의 백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영환 일행이 짐을 푼 월도프 호텔은 10층이나 되는 건물에 객실이 1,000개가 넘는다고 했다. 강 위로 3층의 철교를 놓아 위에는 기차가 다니고 가운데는 마차가 달리고 아래로는 배가 통하도록 했으니 그 정교하고 편리함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으랴! 그 철교 옆으로 우뚝 솟은 25층짜리 건물까지, 눈 가는 모든 것들이 조선에서 온 민영환 일행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조선이 세계 속에서 얼마나 뒤처진 존재인지를 눈으로 확인하고는, 도저히 그들과 대등한 외교를 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마저 들었다. 물질적 빈곤보다 더 뼈아픈 것은 우리의 허술한 제도와 법, 과학기술, 교육, 의술, 정치…… 그 모두였다.
무엇보다 일본의 철저한 올가미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조선은 도저히 나아질 수가 없다.
지금 상황에서는 개혁도 일본을 위한 것이요 발전도 일본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두렵고 초조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_ ‘서양 오랑캐의 배’ 중에서
민영환이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온 나라 안으로 퍼졌다.
사람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글 읽는 선비들은 물론 지방의 유생들, 각처 절의 승려들, 어린 학생들이 며칠씩 걸어서 전동으로 모여들었다. 도저히 영환의 본가만으로는 조문객들을 다 맞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길 건너편에 있는 평산 군수 윤씨의 집에 따로 조문소를 마련했는데, 나중에는 그 집도 모자라 다시 무교동 백낙진의 집에도 조문소를 차렸다.
전국의 어린 학생들과 기생들까지 상하를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이 찾아와 통곡하고 애통해 했다. 부인조회소婦人弔會所를 따로 설치해서 여인들도 마음 놓고 곡을 하고 술잔을 바치도록 하니 많은 양반가의 여인들도 조문소를 찾았다. 월정당 이씨와 일순당 정씨, 두 부인은 영환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문을 지어 바쳤다. 만고에 없던 일이었다.
_ ‘요령소리 요란하고’ 중에서
“저기요 어머니, 큰사랑방에 대나무가 났어요. 좀 가보세요. 배 서방이 그러는데 그거 대나무가 맞대요!”
“대나무라? 아버님 쓰시던 큰사랑방에? 도대체 무슨 소리냐?”
“내가 용식이랑 주룡이랑 셋이서 숨바꼭질을 하다가 그 방에 숨으려고 했는데, 문틈으로 파, 파란 나무가 있는 게 보였어요. 이상하다 싶은 마음에 배 서방을 불러서는, 함께 방에 들어가서 똑똑히 본 거예요. 배 서방도 대, 대나무가 맞는 것 같다며 얼른 어머니를 모셔오라 했어요.”
- 중략 -
아닌 게 아니라 햇빛을 보지 못하여 갓 돋은 풀처럼 연한 녹색의 잎이 달린 대나무가 보인다. 활짝 열린 방문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에 가느다란 가지를 흔들고 서 있는 것은 틀림없는 대나무다. 마루 위에 바른 장판을 뚫고 솟아난 푸른 대.
박씨 부인과 통인동댁이 놀라 입을 벌린 채 대나무를 자세히 살핀다.
모두 네 순이 솟았다.
제일 큰 순은 키가 석 자가 넘을 듯 쭉 뻗었고 네 개의 가지를 달고 있다. 그다음 것은 두 자쯤 되어 보이는데 세 가지가 돋아 있었다. 셋째 순은 두 가지에 키가 한 자가 넘어 보이고 가장 작은 넷째 순은 한 자가 안 돼 보인다. 해를 못 보고 자란 대는 줄기가 가늘고 이파리 역시 연하고 부드러웠다.
서실 안쪽의 작은 협실은 대감이 옷 방으로 쓰던 곳이다.
지난해 대감이 자결하셨을 때 피투성이가 된 대감의 시신을 모셔와, 피 묻은 옷을 벗겨 의자에 걸쳐 두었던 방이다. 그 뒤로 주인 잃은 큰사랑은 아무도 쓰는 사람이 없어 늘 문을 닫아두었다.
계절은 어느덧 7월이니 그때로부터 반년이 지났다.
_ ‘푸른 대가 스스로 솟으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