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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28069019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16-03-24
책 소개
목차
2. 내 ‘손바닥’ 안에 너 있다
3. 된장녀,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
4.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5. 아프냐? 나도 아프다
6. 선생도 늑대다!
7. 개 같은 날의 맞선
8. 넌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라며?
9. 6년 전부터 널 가지고 싶었다
10. 여우의 마음은 갈대?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겨우내 잠들었던 대지가 싱그럽게 깨어나는 새봄의 아침, 새 학기를 맞이한 일파고등학교는 바쁘게 등교하는 학생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허용된 사복 등교일이라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유난히 튀는 복장을 한 여자가 유유히 정문 안으로 들어섰다.
“흐음? 여기가 바로 앞으로 나의 ‘사모님 라이프’에 도움을 줄 곳이란 말이지?”
정문 앞에 우뚝 걸음을 멈추며 여자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속옷인지 겉옷인지 구분이 안 되는 란제리 티 위에 타이트한 블랙 가죽 재킷을 걸치고, 그 아래로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학교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이 여자의 정체는 놀랍게도 교사였으니, 그녀는 막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게 된 ‘최강아’라는 이름의 새내기 선생이었다.
파격적인 옷차림을 보면 알겠지만 그녀는 과거에 껌 좀 씹고 다리 좀 떨어본 날라리, 속칭 ‘왕년에 좀 놀아본 언니’였다. 그래도 머리가 제법 총명했던지라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기에, 놀 거 다 놀고도 사범대에 떡하니 합격해 결국 교편까지 잡게 된 것이었다.
그녀가 화려한 과거를 뒤로한 채 어울리지도 않는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이유는 바로 ‘결혼 주선 경력 30년째의 베테랑’이신 어머니의 조언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첫 출근을 하는 오늘 그녀의 어머니는 새벽부터 전화를 걸어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고 한다.
[여자한테 선생만큼 좋은 조건으로 쳐 주는 직업도 없으니까, 일 년 동안만이라도 조신하게 버텨! 그러면 이 엄마가 ‘청담동 마담뚜’의 명예를 걸고서라도 반드시 멋진 신랑감 물어다 줄 테니까, 알겠지? 우리 딸, 파이팅!]
“훗! 일 년이라……. 뭐, 사모님 라이프를 위해서라면 까짓 일 년이야 거뜬하지! 호호호홋!”
강아의 입에서 기고만장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장밋빛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까짓 일 년쯤이야 얼마든지 견뎌 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사모님 라이프를 그리며 그녀가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을 때였다.
“거기, 미니스커트!”
교문 근처에서 허스키한 남자의 음성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미니스커트를 언급하는 짜증스런 외침에 강아는 당황했다.
‘설마 나한테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괜히 찔려서 쭈뼛대며 눈치를 살피는 강아의 곁으로 이 학교의 선생인 듯 보이는 젊은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치마가 너무 짧다! 무릎 위 5센티 규정 위반했으니까, 저기 가서 무릎 꿇고 대기해!”
“!”
남자의 외침에 일순 강아의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그녀의 얼굴은 공포로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뭐, 뭐야? 저 인간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강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눈앞의 그가 너무도 낯익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강아가 풋풋한 학생이었던 그 시절, 당시 고2였던 그녀의 담임이 바로 저 남자, 김준희라는 이름의 선생이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학창 시절 강아는 제법 유명한 날라리였고, 그녀의 담임이었던 김준희 선생은 새내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깐깐하기로 악명이 높던 선생이었다. 날라리와 깐깐 선생, 이들의 궁합은 한마디로 최악이었다.
툭하면 사고를 저지르고 농땡이를 피우는 강아를 몹시도 못마땅해 했던 김 선생은 틈만 나면 그녀의 뒤를 쫓아다니며 훈계와 체벌을 병행했고, 그의 집요함에 치를 떨던 그녀는 보란 듯이 더욱 말썽을 부리며 문제를 일으켰었다.
강아가 말썽을 피우면 김 선생은 훈계하고, 그래도 정신 못 차리고 문제를 일으키면 몽둥이로 제압하고……. 이렇듯 해가 갈수록 더욱 살벌하게 변해 가던 이들의 관계는 사제지간의 탈을 쓴 원수지간이었다.
“뭐하는 거야? 저기 가서 무릎 꿇고 있으라니까!”
김 선생이 다그치듯 외쳤다. 변함없이 쩌렁쩌렁한 호령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재회에 당황하던 강아는 순간적으로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저 인간, 혹시 나를 못 알아보는 건가? 하긴 6년이나 지났는데 일일이 기억하기도 힘들겠지. 한층 성숙해진데다 화장까지 했으니…….’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만약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렇게 학생으로 착각해서 붙잡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어우, 씨! 생각할수록 짜증나네. 아무리 오늘이 사복 등교일이라고 해도 그렇지, 신경 써서 화장하고 머리까지 했는데 어떻게 학생으로 오해할 수가 있담? 옛날에도 그렇게 쫓아다니면서 들들 볶더니만, 지가 뭐라고 또 이렇게 시비를 거는 거야? 내가 아직 학생인 줄 아나? 웃겨, 정말!’
마음속으로 투덜대던 강아가 짜증스럽다는 듯 김 선생을 쏘아보았다. 그러다 교사로 첫 부임한 만큼, 자신의 화려한 과거를 아는 저 인간이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요! 나 학생 아니거든요? 이번에 새로 부임한 교사라고요, 교사! 그러니까 아침부터 쓸데없이 시비 걸지 마세요, 기분 나쁘니까!”
“흥! 너 같은 날라리가 교사면 나는 교장이다! 요즘 그런 수법으로 넘어가려는 녀석들이 한둘인 줄 알아? 쓸데없는 수작 부리지 말고 저기 가서 무릎 꿇어!”
“어머머! 기가 막혀……. 저 진짜 교사거든요? 진짜예요, 진짜!”
화려한 겉모습 때문인지, 김 선생은 교사라는 강아의 말을 도통 믿어 주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그녀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씩씩댈 때였다.
딱―
“입 닫아!”
손에 쥔 지휘봉을 세차게 휘둘러 강아의 머리를 강타하며, 김 선생이 살벌하게 외쳤다. 그가 뿜어내는 카리스마가 어쩐지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고양이 앞에 쥐처럼, 강아는 그 남자의 포스에 순식간에 압도당하고 말았고, 어느새 그의 손에 붙잡혀 교문 앞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다른 학생들과 나란히 앉아 무릎까지 꿇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