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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음악 > 음악가
· ISBN : 9788932475882
· 쪽수 : 776쪽
· 출판일 : 2025-12-30
책 소개
책속에서

독주자 대기실의 문은 잠겨 있었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두 번째로 두드리자, 문이 열리더니 글렌 굴드가 정중한 태도로 나를 맞아들였다. 그는 연미복을 벗고 회색 바지와 넥타이 없이 흰 셔츠와 두꺼운 양모 스웨터, 그리고 짙은 푸른색 재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방 안 온도였다. 숨이 막힐 만큼 덥고 습기 차서 마치 사우나탕 같았다. 창문이 모두 꼭꼭 닫혀 있고, 난방기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쏟아지고 있었다.
굴드는 혼자였고, 방문객이 찾아와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그래서 나는 마틴 캐닌의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소개한 다음 연주가 무척 인상적이었노라고, 특히 협주곡이 좋았다는 말을 건넸다. (…) 굴드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는 칭찬 듣는 것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불편한 상태라는 것도 알아보았다. 그의 얼굴은 뻣뻣하게 긴장되어 있고 오른쪽 눈가 근육이 약하게 씰룩거리고 있어, 젊고 잘생긴 얼굴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실제로 그가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사실은 그가 말을 시작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갑자기 분출하듯 말을 쏟아 냈다.
분위기가 약간 긴장된 가운데, 나는 글렌이 조금 전 내게 얘기할 때 보여 준 열정적인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지금은 말을 어물거릴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 얘기하기를 꺼리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일대일 대화에 훨씬 능숙한 사람이었다. 한 방에 자기를 포함하여 세 사람만 있어도 그는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넷 이상이 되면 함께 있는 것 자체를 못 견디는 불안한 상태가 되곤 했다. 그럴 때 제일 좋은 해결책은 즉시 주도권을 잡는 일인데, 글렌으로서는 피아노 앞에 앉는 것이 바로 그 방법이었다. 음악은 그의 개인적 욕구에 가장 적합한, 말이 필요 없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