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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역사
· ISBN : 9788933707944
· 쪽수 : 247쪽
· 출판일 : 2021-09-30
책 소개
목차
추천사
책을 펴내며
들어가며
Ⅰ 복음의 전달자: 동방교회
01 전승시대
동방교회의 전승
초대교회
메소포타미아의 초대교회
02 교회의 대분열
분열의 씨앗: 삼위일체 교리와 그리스도론
동방교회 분립을 둘러싼 신학 논쟁
1차 대분열
동방교회의 성경: 페시타
도움 자료/몽골문자의 창제
03 셀레우키아-크테시폰 시대 1: 교회의 안정과 성장
사산조 페르시아의 그리스도교 박해
박해 속에서 점화된 동방 선교
교회 조직과 교세 중앙아시아를 넘어 땅끝까지
사산조 페르시아 말기의 동방교회
04 셀레우키아-크테시폰 시대 2: 신학의 정립
교부들과 신학
세계종교들과의 만남
동방교회의 신학적 입장
수도원 제도와 금욕주의
05 바그다드 시대: 이슬람과의 공존
새로운 지배자 무슬림
적응과 안정
이슬람 르네상스
동방교회, 이슬람, 아바스왕조
Ⅱ 복음의 수용자: 대초원의 부족들
06 동방 선교
소그디아나와 7개 강들이 흐르는 땅
티베트
동투르키스탄(신장웨이우얼자치구)
07 몽골인들이 만난 복음
초원길을 따라 퍼진 복음
케레이트족
오이라트족·메르키트족·만주족
옹구트족
나이만족·위구르족·탕구트족
쿠츨루크와 키르기스스탄의 튀르크 부족들
08 그리스도인 왕비들·공주들과 고관들
알라카이 베키와 칭기즈 칸의 공주들
소르각타니 베키와 자매들
도쿠즈 카툰과 일칸의 왕비들
그리스도인 왕자들과 고관들
09 원나라 때의 그리스도교
경교의 부흥
국가의 보호와 관리를 받은 동방교회
교세
가톨릭교회의 선교
동서양을 오간 여행자들
10 일칸국에서의 동방교회
이슬람과의 갈등과 몽골인 총대주교
서유럽과의 군사동맹 추진
시련과 쇠락
11 몽골의 그리스도교 흔적들
몽골의 그리스도교 관련 유물과 유적
그리스도교 왕국 옹구트
Ⅲ 북원시대부터 현대까지
12 몽골과 티베트 불교
몽골제국의 붕괴와 동방교회의 쇠락
오이라트와 다얀 칸 알탄 칸과 몽골의 불교화
후금의 등장과 북원의 멸망 자나바자르의 등장과 강희제
중가르칸국과 청 청의 경제 수탈과 사원봉건경제
도움 자료/티무르 시대 이후의 동방교회
13 19~20세기 초 세계 선교와 몽골
위대한 선교의 세기
개신교회
가톨릭교회
러시아정교회
도움 자료/몽골어 성경 번역
나가며
참고문헌
부록
교회의 분열(1~16세기)
동서를 오간 여행자들(13세기)
몽골의 그리스도교 관련 유물과 흔적
몽골·티베트·중국(13~20세기)
칭기즈 칸 계보
토그릴 칸 계보
일 칸 계보
칭기즈 칸·케레이트 칸의 혼맥도
옹구트 왕가 계보
찾아보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동방교회 성직자들은 야즈다기르드 1세 치하에서 교회 조직을 재건하면서, 로마제국에서 추방된 서시리아인들(시리아정교회 교인들)과 사산조 페르시아에 살고 있던 동시리아인들(동방교회 교인들) 사이에 있던 위계상의 불필요한 중복도 털어 냈다. 사도들이 세웠다고 주장하는 동방교회는 야즈다기르드 1세가 칙령을 반포한 해인 410년에 첫 주교회의Synod를 열어 독립된 교회로서의 위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이 회의에서 가톨리코스로 선출된 이삭 1세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수장이라는 예우를 받았으며, 동방교회 교인들을 포함한 제국 안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톨리코스의 권위에 순종하게 되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에베소공의회와 칼케돈공의회를 거치는 동안에 제국교회의 분열이 가속화되면서 안디옥학파를 지지하는 많은 성직자들이 동방교회로 합세하였고, 따라서 교세가 질적·양적으로 크게 성장하였다.
― ‘03 셀레우키아-크테시폰 시대 1: 교회의 안정과 성장’ 중에서
안디옥 학파의 교부 아프라하트와 에프렘, 네스토리우스의 성경 해석을 따르고 있는 동방교회는, 삼위일체 교리를 바탕으로 그리스도를 완전한 신성(참 하나님)과 완전한 인성(참 사람)이라는 두 본성을 가지신 분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육친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주장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성 아우구스투스St. Augustine(354~430)에 와서 정립된 그리스도교의 정통 교리인 원죄original sin 교리를 수용하지 않고 인간의 자유의지free will를 강조하고 있으며, 제국교회와 이슬람에서 말하는 예정설predestination[하나님이 창세 전에 구원받을 자를 미리 선택하였다는 교리로 성 아우구스투스 이후에 발전되었다.]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선과 악 모두를 행할 수 있는 존재이며, 따라서 악이란 본성이 아니라 계율의 한 기능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죄악에서의 구원, 즉 구속救贖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점진적인 계시와 창조의 변모 과정이 된다.
― ‘04 셀레우키아-크테시폰 시대 2: 신학의 정립’ 중에서
7개 강이 흐르는 지역은 동방교회의 동아시아 선교의 전초기지였다. 이곳에서 훈련받은 선교사들이 초원길을 따라 티베트·신장·몽골초원으로 복음을 전하러 나섰다. 1007년에는 동방교회선교사들이 몽골초원의 케레이트족Keraits을 만나 칸과 백성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 마리 이븐 술레이만Mari ibn Suleiman과 바르 헤브라에우스Bar Hebraeus에 따르면, 요遼(907~1125)의 국력이 쇠약해진 뒤 초원의 강자로 등장한 케레이트족의 칸은 몽골 중부에서 고비사막에 이르는 지역(현재 울란바타르를 중심으로 한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다. 어느 날 칸이 사냥을 하다가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정신이 혼미해졌을 때 성 사르기스Sargis가 환상 속에 나타나 세례를 받으면 살려 주겠다고 하여, 살아난 칸은 자기 캠프에 머물고 있던 동방교회 교인인 상인과 의논하여 메르브 대주교 오디쇼Odisho of Merv에게 세례를 청하였다. 대주교는 사제와 부제를 보내어 케레이트족의 칸과 20만 명의 부족민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몽골 관습에 따른 단식을 인정하였으며, 칸이 제단에 놓인 십자가로 마유주에 성호를 그어 축복한 뒤 참석자들 모두가 그것을 마시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렇게 동방교회는 부족의 의전과 전통을 용인하는 유연성을 보였다. (중략) 튀르크족과 몽골족이 종교에 대해 관용을 보이고, 동방교회 선교사들이 이 두 민족의 토속신앙과 관습에 적응하였기 때문에 튀르크족과 몽골족은 고유한 관습을 지키면서 그리스도교를 수용할 수 있었다. 또한 몽골인들은 전능한 하늘의 신 텡그리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살아왔기에, 유일신인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을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 ‘07 몽골인들이 만난 복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