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명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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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명[본명 순익(淳翼)]은 1910년 9월 18일에 함경남도 함흥의 사무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27년에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흥남질소비료공장에 취직한 후 공장 ‘친목회’ 사건으로 경찰에 체포되기까지 3년간 근무했다. 그 후 한설야와 경성에서 잡지 편집을 했고, 흥남에서 서적상을 하기도 한다. 1937년부터 장진강 수전공사장에 근무하면서 1945년 해방을 맞이하여, 장진강 발전소 노동자들과 함께 발전소 보위에 나섰으며 그 후 장진강 발전부 ‘전로조합’ 선전부장으로 일했다. 1948년에 북로당 중앙위원이 되고, 함경남도 인민위원회 문화선전과에서 일했다. 1949년에 중앙당학교 6개월반을 졸업하고 중앙당 과장을 역임했다. 그는 6·25전쟁이 일어나자 문화공작대 성원으로 충청북도에 파견되었으며, 그 후 중앙당학교를 다시 졸업하고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지냈다. 1956년에 노동당 중앙위 후보위원,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 겸 상무위원을 지냈다. 1961년에는 조국 평통위 위원을 거쳐 1967년에는 조선작가동맹 중앙위 부위원장직을 맡은 바 있다. 그는 생의 말년에 금성청년출판사 창작실에서 현역 작가로 활동하다가 1988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이북명은 공장 체험을 바탕으로 여러 작품을 창작해 ‘최초의 노동자 작가’라 불리기도 했으며, ‘카프’의 방향 전환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등단작인 〈질소비료공장〉(《조선일보》, 1932. 5. 29∼31)은 단 2회 연재된 후 중단되었지만, 같은 해에 〈암모니아 탕크〉, 〈기초공사장〉, 〈출근정지〉 등의 단편을 계속 발표했다. 이어서 〈여공〉(1933), 〈병든 사나이〉(1934), 〈정반(正反)〉(1934), 〈오전 3시〉(1935), 〈민보의 생활표〉(1935), 〈공장가〉(1935) 등 공장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한다. 그러다가 1930년대 후반부터는 소재에 변화를 보여 공장 체험 이외의 내용을 다루기도 한다. 〈구제사업〉, 〈현대의 서곡〉, 〈요양원에서〉, 〈도피행〉, 〈암야행로〉(이상 1936년) 등과 〈아들〉(1937), 〈연돌남〉, 〈답싸리〉(이상 1937년), 〈비곡(悲曲)〉, 〈의학박사〉(이상 1938년), 〈칠성암(七星岩)〉, 〈야회〉(이상 1939년) 등이 그것이다. 일제 말엽에 들어서는 작품 발표 빈도가 낮아지지만 계속되었다. 〈화전민〉, 〈희비자(喜悲者)〉(이상 1940년), 〈형제〉, 〈빙원〉(이상 1942년), 〈갑돌어미〉(1944) 정도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일제에 협력하는 내용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 친일 문학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해방 이후에는 북측에서 이른바 평화적 건설 시기의 노동 소설로 꼽히는〈로동일가〉(1947)를 발표했다. 그리고 장편 《당의 아들》(1961), 《등대》(1975) 등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해방 이후 재북 작가로서 창작한 작품들은, 노동계급의 혁명성에 대해 강조했던 식민지 시기의 작품들의 주제가 지속되면서도 ‘김일성 중심의 당파성’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부가되었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또한 평론으로 〈사실주의 절대기술〉(1935), 〈주제의 적극성 기타〉(1936), 〈공장 문학과 농민 문학〉(1936), 〈문학 건설에 자(資)할 신제창(新提唱)〉(1939), 〈자기비판과 소설의 순수성 파악〉(1939)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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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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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2월 14일 경기도 수원군(현재 화성시) 양감면 정문 2리 포당동에서 출생.
1923년 양감면 사창리 소재 보신 강습소 입학.
1924년 배재고보 입학. 박팔양 시인의 영향을 받아 민족문학에 눈을 뜸.
1928년 3월 배재고보 4년을 수료하고, 일본대학 정경과에 입학하였으나 사상관계로 출학 후, 귀국.
1928년 말 카프에 연맹.
한편 청년운동과 농민운동에 관여하여 3년 여 감옥생활.
1929년 6월 『조선지광』에 단편 「농민」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고, 이후 해방되기까지 수필, 시, 문학평론을 왕성하게 발표.
1945년 8?15해방 후 수원군 인민위원장 등으로 활동.
1948년 8월 가족과 함께 입북한 후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문화선전성 예술부장을 역임.
1970년 조선작가동맹 개성시 지부장을 지낸 것을 끝으로 이후의 행적은 확인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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