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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37426278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23-07-14
책 소개
목차
1장 어쩌다 실버아파트로
들어가며 9
전원주택 대신 실버아파트 15
우리집에 놀러 와 20
이사 떡과 실버 시에스타 26
여기 아파트 맞아요 31
혼자 남는다는 것 38
실버 식당과 밥 전쟁 46
발발이 할머니 모임 51
기타 동호회에 들어간 남편 58
카페의 두 여인 64
식당 풍경 70
꽃 부부 74
아파트 내놓읍시다 79
2장 실버아파트의 주민들
실버 전용 산 85
죽음의 나이 89
사막의 여우 94
국가주의와 대벌레 논쟁 98
치매인 듯 치매 아닌 103
이곳엔 천사가 산다 109
가을의 먹이 활동 115
젊고 예쁜 여자 120
시폰 원피스 할머니 126
종이배 130
세입자 134
헤어질 준비 142
꼭 다시 와 146
그곳을 떠났나? 153
3장 실버기의 초입에서
나를 죽게 하라 159
노인이 되는 법 164
전셋집 도배하기 169
무료 교통카드 유감 175
남편의 가발 180
모나리자가 되었네 186
노는 중 190
노노(老老) 양보 196
붕어빵 위로 204
오래된 남편 211
배우자의 죽음 217
그렇고 그런 모임 224
요양원에 다녀와서 232
서로 닮아 가는 240
은퇴 부부가 사는 법 248
소풍 254
나가며 261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실버아파트는 다른 세계였다. 실버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그냥 노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산다는 것 이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예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난 아무런 준비도 생각도 없이 덜컥 실버의 세계로 들어와 버렸다. 그렇게 좌충우돌, 고군분투의 삶은 시작되었다. 매우 조용히. (‘들어가며’에서)
“아유, 한창인데 여길 빨리 들어오셨네. 이제 60이나 되셨나?”
자세가 상당히 곧고 옅은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할머니는 8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펌을 한 은갈색의 머리카락 사이로 밝은 핑크빛의 두피가 살짝살짝 드러났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60은 넘었고요. 할머니 정말 고우시네요.”
옆으로 비켜 앉으며 할머니의 손을 보니 손톱마다 고운 색깔의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퀴어퍼레이드를 연상시킬 정도로 선명한 무지갯빛 색깔들이었다. 대단하시다! 감탄하는데 할머니에게서는 고급스러운 향기까지 은은하게 났다. 무슨 섬유 유연제를 쓰시나 궁금했지만 내가 묻기 전에 할머니가 먼저 시작했다.
“지금이 제일 고울 때야. 젊은 사람이 멋 좀 내고 다녀요. 이렇게 이쁠 때는 금방 지나가거든. 알았죠?”(「젊고 예쁜 여자」에서)
이 모임에서 죽음이 주제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멤버들 나이가 평균 60이 되면서부터 죽음은 좀 더 가깝고 평범해졌다. 그동안 부모나 시부모, 가끔은 친구들의 죽음도 겪었지만 아직 멤버들이나 그들의 배우자가 죽음에 이른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친구와 배우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죽음까지도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을 우리 모두는 느끼고 있었다.
“죽는 게 사는 것처럼 당연한 거지 뭐. 별날 것 없는.”
느닷없는 잠실댁의 한 마디에 우리는 모두 말없이 웃었다. 아니, 웃고 싶었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상당히 괜찮은 일이었다. 죽음을 기뻐할 것까진 아니어도 슬퍼할 일도 아니라는 것. 죽음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접근해 간다는 것과, 나름 계획까지 세워 볼 수 있다는 것. 심지어 ‘나를 죽게 하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죽음인 것은 알지만. 하여간.(「나를 죽게 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