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누구인지 알아보는 데 잠시 시간이 걸린다. 이제는 찢어진 바지나 진흙투성이 장화 차림도, 지저분한 얼굴도 아니다. 소녀는 깨끗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금색 견장이 어깨 위에서 빛나고, 두 줄짜리 계급장이 양쪽 소매에 무늬로 들어가 있는 화려한 군복 차림이다.
설마 리퍼블릭 정부가 내 또래의 여자애에게 이런 고위직을 주었을까. 소녀의 입을 본다. 내가 키스했던 바로 그 입술에는 지금은 광택 나는 립글로스가 칠해져 있다. 문득 정신 나간 생각이 들어서 소리 내어 웃고 싶어진다. 이 소녀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내가 체포되는 일이 없었다면, 이 소녀가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지 않다면, 나는 지금 이 소녀의 모습을 숨이 멎을 정도로 완벽히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녀는 자기를 알아본 내 표정을 읽은 것이 분명하다. 소녀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차갑게 말한다.
“경비에게 붕대를 감아주라고 한 것은 나야. 네가 처형당하는 날 멀쩡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