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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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마산 출생인 강제규 감독은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84년 정인엽 감독의 연출부 생활을 시작으로 충무로에 첫발을 내딛는다. 85년 합동영화사 연출부를 거쳐 TV 프로그램, CF, 문화영화 제작, 영화 수입사 근무 등 다방면으로 영화경험을 쌓았던 그는 특히 오랜 기간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많은 유명 감독과 함께 작업을 하였고 이 모든 것은 후에 감독으로서의 성공에 자양분이 되었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와 <게임의 법칙> 등을 집필하며 시나리오 작가로 먼저 명성을 쌓은 강제규 감독은 1996년 <은행나무 침대>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면서 큰 성공을 거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애틋한 러브스토리를 보여준 이 작품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환타지장르를 개척하였다.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장면들의 완성도도 당시까지의 기술적 수준으로는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으로 그는 영화를 더욱 영화답게 만드는 스타일리스트라는 평가를 받으며 전국 150만 이상의 관객을 불러들여 성공적인 신고식을 마쳤다. 이후 김희철 감독과 함께 '영화 발전소'라는 제작사를 차리고, 김희철이 연출한 <지상만가>라는 영화의 제작과 시나리오를 맡았지만 실패를 맛보게 된다.
그후 강제규 필름을 설립, 오랜 침묵을 깨고 내놓은 <쉬리>는 한국영화의 모든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는 전무후무한 대성공을 거둔다. <쉬리>는 첨예한 남북문제를 이데올로기적 관점이 아니라 철저하게 영화적 재미를 뽑아내기 위해 이용했기 때문에 화제가 되었고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헐리우드적인 액션과 특수효과, 한국적인 멜로의 정서를 교묘하게 배합한 <쉬리>는 무수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성공을 거두었고,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쉬리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세계 영화 시장에서 한국 영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쉬리>의 성공 후 강제규 필름을 통해 한국영화 제작자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쉬리>의 제작 때부터 강제규 감독은 공식 매체를 통해 자신은 "감독이 된다면 첫 영화로 한국에서, 두 번째 영화로 아시아에서, 세 번째 영화로 세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성공하겠다"는 포부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의 두 영화를 통해 그의 소망 중 둘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셈이고, 그의 세 번째 소망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한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1950년대로 되돌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형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대규모로 펼쳐지는 스펙타클한 영상 안에 끈끈한 형제애를 녹여낸 <태극기 휘날리며>는 강제규 감독이 또 한번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휴먼 전쟁 스펙터클 장르이기도 하다. 이로써 강제규 감독은 장르와 소재의 한계, 아이디어의 고갈이라는 문제에 직면한 한국영화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또 하나의 흥행 신기록을 세워 한국 영화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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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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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 작가로, 현재 극동만화연구소의 대표입니다. 주요 경력으로 대구미래대학 애니메이션과와 게임학과 겸임교수, 한국디지털 애니메이션협회 이사, 국내 최초 남북공동만화 제작 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펴낸 학습만화로는 《한국설화》 《한국신화》 《태극기 휘날리며》 《삼국지 한자 교과서》 《한자성의 보물을 찾아라》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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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영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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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윤성동화에 입사하여 애니메이션을 시작했으며, 1982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다쯔노꼬 프로덕션의 TV시리즈 '마크로스'의 제작에 참여하고, 1994년 미국으로 건너가 한나 바바라, 워너 브라더스를 거쳐 현재 소니 픽쳐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영화 '스튜어트 리틀 3'의 스토리보드 제작에 참여하고 있으며, 2003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2004년 영화 'Some'의 스토리보드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2001년에 애니메이션 <스타쉽 트루퍼스>로 에미상 3D 애니메이션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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