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꽃 여인

마르뜨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는다. 왼쪽 허리의 통증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같은 순백의 우아함을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조금 수줍어졌기 때문이다. 마르뜨는 이내 그를 향해 모호한 시선을 던진다. 그는 목도리를 두르고 있지 않다. 살짝 열린 보랏빛 비단 셔츠 사이로 그의 목이 들여다보인다. 주름살이 많이 접힌 노인의 목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만 살아 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아무것도 두르지 않아서인지 그의 목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한 번도 목말라해 본 적이 없던 마르뜨는 갑자기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경험한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에 손을 갖다 댄다. 그처럼 잔주름이 파여 있는 목에. 그녀는 살갗에 땀이 흥건하게 밸 수 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다.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부드러운 살의 감촉도. - 본문 39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