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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46422001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21-11-11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마침’이야말로 곧 ‘시작’이라는 주역의 종즉유시終即有始, 끝이 있으면 곧 시작이고 인생사 모두가 끝없이 무한하게 반복된다는 것을 깨달으면, 한 점이 종착점이면서 동시에 출발점이라는 이치를 어렵지 않게 끄덕이게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런 ‘되돌이’가 품은 함의를 가슴으로 가늠할 수 있게 된 지 어언 꽤 되는데도, 또 맘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거나 어긋나지 않는다는 일흔 ‘종심 從心’을 훌쩍 넘었는데도, 미련과 욕심과 잡념에 매여 아직껏 담담하게 세월을 보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미물이다. 그 미물이 가진 자와 못 가진, 배운 사람과 못 배운, 동쪽과 서쪽, 피부색, 76억 마리 호모 사피엔스들의 그 완연한 다름들을 단번에 없앴다. 인류가 오래 염원했으되 이룰 수 없었던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그 평등은 혼란이었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에 대해 해 왔던 깊거나 또는 얕은 성찰들을 코로나 덕에 되새김질하기 시작했다.
수명이 점점 늘어나는 것 때문에 가뜩이나 생각들이 더 많아졌었는데,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더 진솔한 묵상을 하며 낮게 더 낮게 낮아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는 고요하다.
들어 보려 해도 놓치기 쉽다. 고요한 소리는 고요한 가운데서만 들린다. 맑은 소리가 나는 찬물 따르는 소리도, 더운 물 따를 때 나는 뭉근한 소리도 세월이 지나면 가릴 줄 알게 된다. 젊어서는 안 들리던 그 소리들이 나이테가 커져야 비로소 귀에 들어오는 것이다. 기쁨과 노여움, 즐거움과 슬픔마저 제풀에 바스라지고, 벼린 상처도 세월과 바람에 부대껴 두루뭉술해질 때가 돼야 사람들은 넉넉하게 품을 벌리며 살아온 소리를 들을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