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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박찬호

(메이저리그 124승의 신화)

민훈기 (지은이)
  |  
한국경제신문
2013-03-10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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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책 정보

· 제목 : 박찬호 (메이저리그 124승의 신화)
· 분류 : 국내도서 > 자기계발 > 성공 > 성공담
· ISBN : 9788947529020
· 쪽수 : 344쪽

책 소개

메이저리그 동양인 투수 최초의 124승을 이뤄낸 박찬호 최초의 평전. 국내 최고의 야구전문기자로 손꼽히는 민훈기 기자가 박찬호의 야구 인생에서 의미가 깊은 승리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메이저리그 투수의 여정을 따라간 책이다.

목차

저자의 글
프롤로그|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

1장 코리안특급, 메이저리그를 질주하다
이기는 법을 배우다|에이스 케빈 브라운과의 선발 대결|타자 박찬호 첫 안타와 첫 타점|선발 진입을 위한 소중한 수업|1997년 5선발, 고생 끝에 거둔 첫 승리|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로 성장하다|본즈의 자이언츠를 꺾다|5연승 그리고 첫 10승 달성|첫 완투승, 156km 강속구를 꽂다|두 번째 완투승, 1997 시즌 막이 내리다

2장 위대한 도전의 서막
1998 홈 개막전 승리, 트레이드설을 잠재우다|노모가 떠난 LA다저스|‘여름의 사나이’ 홈경기 11연승을 달리다|박찬호의 폭포수 커브|본즈의 대기록을 저지시키다|최고의 명승부 1_케빈 브라운과의 강속구 대결|시즌 최초 15승 달성

3장 시련, 그리고 눈부신 전성기
사상 최악의 날을 딛고 일어선 마운드|하이킥 그리고 박찬호의 부진|투수둘의 무덤,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삭발은 박찬호의 힘, 파죽의 7연승|메이저리그 최초의 한일전|최고의 명승부 2_강타선을 압도하는 새로운 무기|통산 5번째 완투승, 정상에 서다|4년 연속 10승 고지에 서다|데뷔 후 첫 홈런 그리고 찬란한 호투|개인 최다 18승에 오르다

4장 대한민국 대표선수가 되다
2001년 개막전 선발에 나서다|퀄리티스타트(QS) 행진의 서막|부상과 부진의 시초|최고 연봉 투수 마이크 햄턴을 잡다|김병현과 운명의 맞대결| 첫 올스타전 출전|최고의 명승부 3_생애 첫 무사사구 완봉승|5년 연속 10승 달성|자신의 존재를 알린 ‘혼을 실은 역투’|LA 다저스에서의 마지막 승리

5장 혹독한 부상과 슬럼프
박찬호 5년 6,500만 달러에 텍사스로|부상 그리고 고난의 시작|가장 외로웠던 시절, 부진은 계속된다|부활의 불꽃을 당기다|이치로와의 첫 대결|2003 시즌의 유일한 승리, 결국 재활을 시작하다|1년여 만에 찾아온 승리|99일 만에 복귀, 106일 만에 승리|양키스와 레드삭스 연파|캔자스시티에서 이룬 센추리 마크, 100승|텍사스에서의 마지막 승리

6장 숨겨진 땀과 아픔의 기록, 124승의 신화
코리안특급의 샌디에이고 입성|화려한 컴백, 그리고 결혼|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맹활약|불펜에서 다시 선발로|내셔널리그 전 구단을 상대로 승리투수가 되다|장출혈로 조기 마감된 2006 시즌|마이너리그, 새로운 출발점|빅리그로 재입성하다|구원투수 박찬호의 첫 세이브|23개월 만에 다시 거둔 선발승|메이저리그 마지막 선발승|월드시리즈 첫 출전|뉴욕 양키스의 유니폼을 입다|메이저리그 마지막 승리로 대기록을 쓰다

에필로그|저는 약속을 지킨 사람입니까?

저자소개

민훈기 (지은이)    정보 더보기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CSUN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1986년부터 중앙일보 LA본사 사회부 기자로 4년간 일하다 스포츠조선 창간과 함께 어려서부터 즐기던 스포츠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스포츠 신문 최초의 미주특파원으로 박찬호와 박세리를 주로 담당하면서 MLB를 14년간 밀착 취재했다. 귀국한 뒤에는 네이버와 다음 등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MLB와 KBO 해설자로 활동 중이다. 『민훈기의 메이저리그 메이저리거』, 『나의 야구는 끝난 것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124승의 신화』 등의 저서와 『내 생애 최고의 골프』(공역), 『희망사전 365』, 『세계 4대 신문 성장사』 등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결국 팀이 3대1로 승리하며 두 번째 투수로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박찬호에게 첫 승이 안겨졌다. 그렇게 1996년 4월 7일의 LA 다저스와 시카고 커브스전은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승리 투수가 탄생한 경기로 기록에 남게 됐다. 경기가 끝난 후 리글리필드의 좁은 원정팀 클럽하우스는 축제분위기에 싸였다. 선수들은 모두 루키 투수의 첫 승리에 축하를 보냈고, 라소다 감독은 그날의 라인업 카드를 박찬호에게 넘겨주며 포옹하고 이마에 키스를 해주기도 했다. 나는 박찬호의 그날 인터뷰 내용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에게는 역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내 목표가 10단계라면 2단계 정도 올라선 기분이다. 이 작은 기쁨들이 자꾸 쌓여 큰 기쁨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경기가 끝나고 나는 박찬호와 함께 한국 식당에 가서 첫 승리를 자축했다. 이 첫 승리의 기억 덕분인지 박찬호는 그 후 커브스와의 대결을 유난히 즐겼고 시카고라는 도시도 무척 좋아하게 됐다.


당시 케빈 브라운은 최고의 투수였다. 이미 18승을 거두면서 사이영상의 강력한 후보이기도 했는데 그날도 역투했다. 그러나 박찬호도 밀리지 않았다. 힘이 들어갔는지 제구력이 조금 흔들렸지만 밀리지 않는 강력한 구위를 뽐내며 파드리스 타자들을 압박했다. 그날 콸컴 스타디움의 전광판 속도계는 계속해서 97, 98마일(156~158킬로미터)이 찍히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마치 속도 경쟁이라도 하듯 박찬호와 브라운은 강력한 광속구를 앞세우며 타자들과의 대결은 물론이고 치열한 자존심 대결을 벌였다. 두 투수가 뿜어내는 기싸움의 기운이 기자실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이날 박찬호는 7이닝 동안 10개의 삼진을 뽑았고, 브라운은 9이닝을 완투하며 11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21개의 삼진이 나왔으니 두 투수가 삼진으로만 7이닝을 끝낸 셈이다. 그러나 브라운이 볼넷 1개만 내주는 제구력을 과시한 반면, 박찬호는 볼넷 7개 등 데뷔 후 최다인 8개의 4사구를 내줬다. 관록의 차이가 보이는 대목이었다. 노장 브라운은 흔들리지 않는 냉철함으로 경기를 이끌었지만 신예 박찬호는 고비마다 힘이 들어가는 등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박찬호의 승리였다. 박찬호가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7이닝을 3실점으로 막은 반면, 다저스 타선을 압도하던 브라운은 7회에만 4점을 내주며 패전 투수가 되고 말았다. 7회까지 박찬호는 132개의 공을 던져 두 경기 연속으로 130개 이상의 투구 수를 기록했다. 이날 10개의 삼진을 보태며 시즌 170K를 기록, 전년도의 166K를 넘어 자신의 시즌 최다 기록을 세웠다. 또한 이날로 192.2이닝을 소화, 최초의 200이닝 시즌을 눈앞에 두었고, 두 시즌 연속 13승을 거뒀다. 이제 개인 최다인 한 시즌 14승에 바짝 다가서며 최초의 15승마저 노리게 됐다. 이날 경기가 케빈 브라운에게도 아주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시즌이 끝나고 브라운은 다저스와 투수 사상 최초로 1억 달러가 넘는 메가 계약을 맺었는데 박찬호와 드라이포트 등 막강한 투수들이 있어서 우승 가능성이 높아 다저스를 택했다고 했다.


지역 언론은 냉정했다. “박찬호는 승리를 거뒀지만 결코 깔끔하지 못했다”, “레인저스의 ‘에이스’ 박찬호가 궁지에 몰렸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박찬호의 부진을 질타했다. 지역 언론이 날을 세운 데는 이유가 있었다. 부진이 계속되자 박찬호는 한동안 언론과의 인터뷰를 아예 거부해버렸다. 난생처음 큰 부상이 온데다 거액의 다년 계약을 맺은 것에 대한 책임감,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력 등으로 박찬호는 심하게 자책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점점 현지 언론과의 관계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운동장으로 가다가 자동차 접촉 사고까지 나는 등 여러 악재가 겹치기도 했다. 게다가 이어진 인터리그 등판에서는 애틀랜타를 상대로 1.1이닝 9실점이라는 데뷔 후 최악의 피칭까지 나오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신시내티와 시카고 커브스전에서도 6이닝 4실점, 5이닝 3실점의 부진으로 승수를 쌓지 못했다. 노력이나 운동, 준비가 부족했던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애틀랜타전에서 난타당한 후 박찬호는 삭발까지 하면서 재기 의욕을 다졌다. 당시 국내 특파원들과의 사이도 많이 소원해졌다. 삭발 후 누가 머리를 잘라주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답을 회피한 적이 있다. 얼마 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미안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본인이 직접 거울을 보며 머리를 잘랐으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박찬호는 “늘 시작하려는 마음을 가지겠다는 각오였으나 실행이 부족했다”며, 다시 정상에 도전할 것이며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박찬호가 미국 생활을 하면서 가장 외로웠던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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