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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 패션모델 1호

한국 남성 패션모델 1호

김광수 (지은이)
21세기북스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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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 패션모델 1호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한국 남성 패션모델 1호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0921804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10-01-07

책 소개

1960~1970년대 사회적 편견에 맞서 초창기 패션업계를 선도한 한국 남성 패션모델 1세대들의 이야기. 당시 양복점에는 직접 입고 판매 촉진 역할을 하는 직원이 있었다. 이들은 월급을 받으며 고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옷을 직접 입었고, 고객들에게 옷을 잘 입는 방법을 소개해주는 일을 했다. 신장이 175~180cm정도로 크고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들인 이들은 모델 겸 샵마스터(shop master) 역할을 동시에 했던 것이다.

목차

발문

01. 명동 거리-1969년 10월 서울 명동은 꽃 피는 봄날처럼 향기롭고 눈부셨다

02. 클럽 왕실-모델이란 직업으로 먹고살기는 어렵겠지만 머잖아 좋은 날이 올 겁니다

03. 이용화양복점-많은 양복점들이 현금을 긁어모았고 내게는 명동의 양복점 사장이 어느 은행장 부럽지 않아 보였다

04. 한국 양복업계-분명 원단 제조사의 잘못인데도 모든 책임을 양복점이 고스란히 져야만 했다. 그게 당시의 관례였다

05. 초년고생-이 무렵 나의 단골집은 삼각동 수제비 집이었다. 50환짜리 수제비 한 끼로 하루를 버텼고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06. 양복점 개업-찰스 김 테일러를 기반으로 하여 5년 후인 1975년까지 자수성가하겠다는 각오로 전화번호도 1975번으로 정했다

07. 찰스 김 테일러-당시 양복 한 벌 가격은 2만 원 내외로 웬만한 회사원 한 달 봉급에 맞먹는 적잖은 금액이었다

08. 새마을운동-<새마을노래>가 온 나라에 울려 퍼지던 이때, 섬유업계의 호황은 복장계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09. <복장계>-대부분의 수입을 숨 돌릴 틈 없이 <복장계> 만드는 일에 쏟아 부었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다는 게 어떤 건지 실감이 갔다

10. 검열-당장 배포된 잡지들을 몽땅 거둬들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였다. 이미 1000여 권 이상이 시중 양복점과 업체 등에 풀려 나간 상태였다

11. 자금난-사채를 끌어다가 원단을 사서 6개월 할부로 맞춤 양복을 팔고 할부 대금을 깔아놓은 상태라서 현금은 늘 모자랐다

12. 시대의 악몽-세상이란 게 나 혼자만 떳떳하다고 내 편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는 것도 당시에는 몰랐다

13. 구치소 생활-6개월 만에 구치소를 나와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내가 살던 세상은 없었다

14. 무대의상 제작-이 나라 연극사 이래 가장 큰 극장, 가장 큰 무대에서 가장 많은 물량과 인원의 투입으로 만들어진 엄청난 모험이 심판대에 올랐다

15. 마지막 대형 무대-마치 등대 없는 암흑 속 항해처럼 느껴지던 첫 공연이 성황리에 끝났다

저자의 말

저자소개

김광수 (지은이)    정보 더보기
돌이켜보면, 엉겁결에 패션모델이 되고 양복업계에 뛰어든 것 같지만 옷은 그에게 숙명이었다. 1959년 대전 보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혈혈단신으로 상경했다. 낮에는 우체국과 공원 벤치에서 잠자던 그는 인쇄소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면서부터 대학 진학의 꿈을 꾸었다. 50환짜리 수제비 한 끼로 하루를 연명하면서 일을 했고 인쇄공이 되면서부터 돈을 모았다. 미술 전공이 본래 자신의 뜻이었으나 환쟁이는 가난하다는 집안의 반대에 꺾여 성균관대 경제학과에 입학한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 삼아 양복점 영업사원으로 치수 재는 법만 배워 가지고 손님들의 양복 주문을 받아오는 일을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남인라사와 옥스퍼드양복점을 거쳐 이용화양복점에 취직한다. 이때가 1967년이었다. 당대 복장계의 거장인 이용화 선생 문하에 들어가게 되고 이기봉 재단사에게 일을 배우면서 양복 업계에 헌신할 뜻을 굳힌다. 양복 한 벌 값이 대기업 초봉과 맞먹던 시절, 그는 고객에게 옷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입었고, 옷을 잘 입는 방법을 설명해주는 일을 했다. 양복점의 판매촉진 사원, 지배인, 모델, 샵마스터의 역할을 동시에 했던 것이다. 이후 그는 본격적인 패션 무대에서 활동한 최초의 남성 패션모델이 되면서, 한국 남성 패션모델 1세대를 결집하고 육성시키는 일을 시작한다. 그가 주동이 되어 만든 남성 패션모델 클럽 ‘왕실’은 한국 최초의 모델 에이전시로서 한국 최초의 모델 포트폴리오를 제작하는 등 한국 복장계의 선구적인 일을 연이어 해낸다. 한국 복장계 공식 단체에서 주최한 최초의 패션쇼 ‘스타일 한국 디벨롭 라인’을 연출했고, 한국 남성 패션 잡지의 주류인 ??패션계?? 창간, 한국 최초의 기성복 패션쇼를 연출했다. 한국 최초의 뮤지컬인 <사운드 오브 뮤직>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대형무대의 무대의상을 책임졌으며,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때에는 조직위의 복식전문위원으로 근무하면서 유니폼 제작을 담당했다. 그리고 대한복장상공조합연합회 상근 부회장, 한국복장기술경영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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