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부버 (지은이)
정보 더보기
20세기 가장 위대한 종교 사상가 중 한 사람. 1878년 2월 8일,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빈·라이프치히·취리히·베를린 대학교에서 철학·문헌학·예술사를 공부하고, 1904년에 빈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젊은 시절부터 유대교 신비주의를 연구하고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프란츠 로젠츠바이크와 함께 히브리 성서를 현대 독일어로 번역했다. 『나와 너』를 발표한 1923년에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 초빙받아 종교철학과 윤리학을 가르쳤다. 이때 인간 존재를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대화철학’을 제시하며 학문적 명성을 얻었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한 후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추방되어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망명 생활을 했다. 1938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여 1951년까지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의 사회철학 교수로 재직했다. 은퇴 이후에도 왕성한 학문적·사회적 활동을 이어 갔다. 1965년 6월 13일, 예루살렘에서 ‘위대한 대화의 삶’을 마쳤다.
저서로는 대표작 『나와 너』『신의 일식』 외에 『예언자의 신앙』『열 계단』(대한기독교서회), 『인간의 문제』(길), 『하시디즘과 현대인』(현대사상사) 등이 있다.
펼치기
김천배 (옮긴이)
정보 더보기
울안 김천배
1916년 군산에서 김성은씨와 이성현 전도사의 늦동이 아들로 출생
1932년 배제학교 학생시절 일본으로 감. 기독교사회주의 공부
1935년 (오방선생이 사망통지서를 쓴 해) 귀국 후 광주 YMCA 지육부 간사로 활동 시작
1937년 광주 YMCA가 연합회의 신흥우 총무와 관련하여 복잡해지자 최흥종 총무가 사직, 김천배 선생도 사직 후 다시 일본 유학
1939년 폐결핵으로 귀국
1940년 미국 스파이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들어감
1942년 장숙희권사와 결혼
1944년 다시 검거를 피하여 강원도 회성으로 가 목탄 굽는 일을 하며 피신
1945년 해방 후 광주로 이주
1948년 Y 간사 사직 후(새 생명지 때문에 보수교단 목회자들로부터 문제 제기) 무등산 최흥종 목사 있는데로 감. 그 때 조선대 철학과장일도 맡음. 그리고 광주 고등국민학교에 재직, 그러나 1년 후 다시 광주 Y총무로 들어옴 그러다 50년 6월 서울 연합회 학생부 간사로 임명
1950년 6,25가 터짐과 동시 부산에 피난
1952년 미국예일대 사회학과에서 연수
1954년 귀국
1956년 서울YMCA총무서리로 발령
1957년 3월 기독교 사상의 주간으로 활동
1959년 가을 광주 Y에서 총무로 불러감
1971년 55세가 되어 은퇴
1980년 광주민중항쟁당시 재야수습위원으로 활동, 성서연구반조직, '한국YMCA운동사'집필
1988년 지병이던 폐결핵 증상 재발로 사망
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