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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어문학계열 > 국어국문학 > 희곡론/비평론
· ISBN : 9788952113368
· 쪽수 : 612쪽
· 출판일 : 2012-08-31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ⅴ
일러두기
1부 1920~30년대 연극운동론 연구 _ 1
제1장 서론 _ 3
1. 문제의 제기_3 | 2. 한국연극사에서의 ‘신극’의 개념_12
제2장 1920년대의 연극운동론 _ 36
1. 학생극운동과 ‘신극’의 출발_36 | 2. 계몽주의적 연극운동론의 정립_47
제3장 프롤레타리아 연극운동론 _ 67
1. 프롤레타리아 연극운동의 전개 과정_67 | 2. 볼셰비키적 대중화론_85 | 3. 공연 방법의 모색_116
제4장 ‘극예술연구회’의 연극운동론 _ 155
1. ‘극예술연구회’의 성립과 활동_155 | 2. 극문화 수립론_177 | 3. 공연 현실의 극복 방안_206 | 4. 흥행극계의 대응 논리_232
제5장 1920~30년대 연극운동론의 성과와 한계 _ 257
제6장 결론_266
2부 한국 근대 연극 비평의 이론 _ 271
제1장 1920년대 연극 비평의 전개 양상과 그 의미 _ 273
1. 서론_273 | 2. 계몽주의적 연극관의 확대와 변모_273 | 3. 공연비평의 성립과 전개_280 | 4. 결론_295
제2장 1920년대 신파극신극논쟁 _ 297
1. 머리말_297 | 2. 논쟁의 배경_298 | 3. 논쟁의 전개_306 | 4. 논쟁의 문제점_315 | 5. 결론-논쟁의 의의_324
제3장 1920~30년대 이론비평 _ 329
1. 머리말_329 | 2. 희곡이론_330 | 3. 연극이론_362 | 4. 결론_414
제4장 1930년대 유치진의 연극 비평 _ 417
1. 머리말_417 | 2. 연극의 ‘대중성’과 민중연극론_420 | 3. 창작극 위주와 ‘관중본위론’_436 | 4. 기술에 대한 관심과 대극장론_445 | 5. 유치진 연극 비평의 의의와 한계_459 | 6. 결론_461
제5장 1940년대 국민연극론 _ 464
1. 머리말_464 | 2. 국민연극론의 연극사적 배경_465 | 3. 국민연극론의 전개와 구조_479 | 4. 국민연극론의 내용_494 | 5. 결론-국민연극론의 연극사적 위상_507
보론1: 한국 근대 연극 비평의 내용과 형식_509
보론2: The Development Process of Modern Korean Theatrical Theory_526
보론3: 韓?近代演劇論の展開過程_537
부록: 한국 근대 연극 비평 목록_547
참고문헌_580
찾아보기_587
저자소개
책속에서
연극이란 본질적으로 흥행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솔직한 시인은 오히려 비(非)연극인인 임화에게서 이처럼 뒤늦게야 제기된다. 즉, ‘돈벌이’가 신극과 신극 아닌 것의 구분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 그보다는 ‘돈벌이’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시 말하면 그러한 수익이 보다 높은 예술성의 추구를 위해서 쓰이느냐의 여부에 달린 것이라는 논리는 종래의 ‘순수’만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더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 논리는 ‘극예술연구회’가 ‘극연좌’로 개칭(1938.4)한 뒤 ‘전문극단’임을 표방하고 보여 준 일련의 공연에 대한 비판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임화의 그 뒤의 평론 '신극론'[<청색지>(靑色紙)3, 1938.12]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한국의 연극운동은 계몽주의적 연극관을 근거로 한 것이어서, 연극이 지닌 고유의 특성인 무대와 관객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점에서 볼 때, 하나의 연극을 완성시키는 요소로서의 관객에 대한 인식은 매우 미흡한 상태에서 출발한다.
특히, 한국의 근대극은 일본을 통한 서양의 연극을 수용하면서 성장한 관계로 일반 대중에게 뿌리를 두지 못한 채 소수의 지식인과 학생층을 주관객으로 하여, 그들 관객을 얼마나 많이 연극의 장내(場內)로 끌어들일 수 있느냐는 대중화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전개된다.
이는 연극이 관객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는 계몽적 가치에 따라 예술적 가치까지도 위치 지을 수 있다는 관점으로, 특히 1920년대 일본에서 귀국한 신진 연극인들이의주장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한국의 연극운동은 계몽주의적 관점에서 출발하였다. 이는 개화기에서부터의 현상으로, 1920년대는 3·1운동 이후 성장한 민중의식의 영향으로 연극의 문화운동·민족운동적 성격이 강화되면서 연극운동이 보다 활발히 전개된다.
이때, 일본에서 연극을 배우고 돌아온 현철은 이기세와의 논쟁을 통하여 기존의 신파극을 포함한 모든 연극적 전통을 부정하고, 서양의 근대극을 한국에 이식하고자 하는 ‘신극운동’을 주창하게 된다. 이후부터 ‘신극’은 ‘근대극’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이때에 제기된 연극 전통 부정의 논리는 이후의 한국연극사에 있어서 ‘신극’과 ‘신파극’[흥행극]을 단절시키는 상호부정의 모순을 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