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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신앙생활일반
· ISBN : 9788953131699
· 쪽수 : 228쪽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
들어가면서
Part 1. 부르심 “내가 가겠습니다”
1. 농촌 목회자에서 선교사로
40일 금식 기도
가난해도 너무 가난한
누가 내 이웃인가
까마귀가 가져온 떡 한 덩이
“아마존에 가 주십시오”
상파울루에서의 훈련
2. 아마존의 이방인
선교지를 향하여
녹색의 지옥, 아마존
언어 차이로 생긴 오해와 갈등
차마 떨어지지 않는 걸음
겁쟁이를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
평생을 괴롭히던 무좀이 낫다
무엇이 우선순위인가?
3. 씨 뿌리는 시간
떠나야 할 때
한국에서 보낸 6개월
개인 전도로 씨를 뿌리다
Part 2. 종교적 야망이라는 전차를 타고
4. 여호와 이레 아마존
주님이 예비하신 선교지
여호와 이레
교회를 개척하다
옥합을 깨뜨리는 헌신
아름다운 사람, 방지일 목사님
실로암교회의 헌신
뜻밖의 고난
5.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검은강 상류 신학교
예배당을 새로 짓다
양철 지붕의 노래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자식을 떼어 놓고
투기와 분쟁으로도 복음이 전파된다
선의를 오해해서 생긴 스캔들
목숨을 건 의료 선교
인디오 형제들이 마음을 열다
분열의 위기를 넘긴 부족 교회
6. 아마존의 하나님 나라 영웅들
신학생들을 아마존의 지도자로
아마존 여성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교회에 대한 고민과 감사
도시에 전통을 만들다
비로소 아마존의 형제가 되다
허 선교사가 음악을 배운 이유
현숙한 여인, 허 선교사
주님을 위해 죽기 원한다면
회개운동이 뜨겁게 타오르다
기적의 망고
작지만 큰 사람들
아마존 사역을 알린 CGNTV
Part 3. 마침내 주와 연합하다
7. 가슴 찢는 회개
어리석은 발람처럼
나는 내가 가증스럽다
나는 위선적인 선교사였다
그릇된 회개
나는 삯군 목자였다
8. 아마존에서 맞은 겨울
아내의 폐암이 재발하다
아내에게 멍에를 지우다
통증이 사라지다
아마존에서 맞은 겨울
언더우드 선교상을 받다
내 아들 지훈이
나는 아내에게 욥의 친구처럼 굴었다
“나도 당신한테는 여자예요”
최고의 보상
9. 다시 태어나도 아마존 선교사가 되고 싶다
“허 선교사를 데려가셔도 좋습니다”
마지막 호흡까지도 ‘사랑’
허 선교사가 떠난 후
주님과 연합하다
24년 만의 기도 응답
다시 태어나도 아마존 선교사가 되고 싶다
글을 마치면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분명히 아마존은 우리가 살기 힘든 환경을 갖고 있다. 가끔 아마존이 아닌 다른 곳을 여행하자면 더위로 땀을 흘리거나 독충들에 물려서 긁지 않고 하루가 수월하게 지나간다. 그럴 때 '내가 이런 곳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하지만 수월한 하루를 지나면서 나는 오늘 주님을 몇 번이나 찾고 도움을 요청했는지 헤아려본다. 그제야 나는 다시 깨닫는다. '아마존이 비록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에게는 바로 은혜의 장소구나.' 그래서 우리 홈페이지의 이름을 '아마존 은혜의 강 선교회'(Grace River Amazon Ministries, GRAMIN)라고 붙였다. 아마존은 늘 새롭게 적응하는 곳이다. 환경에 결코 익숙해지지 않으므로 마음이 풀어지지 않는다. 그런 관계로 열심히 치열하게 살도록 주님께서 인도하신다. 주님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최고의 장소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축복하셨다.
허 선교사가 늘 말했다.
"김철기 선교사가 없으면 아마존이 무너지고 신학교가 문 닫겠는가?"
사역에 목숨을 걸다 보니 언제나 긴장했다. 일의 효율성을 위해 늘 머릿속으로 사역을 구상했다. 좀 더 완벽하게 잘하고 싶어서 24시간 사역만 생각했다. 밤에 잠을 자는 동안에도 사역만 생각했다. 그러므로 쉼이 전혀 없었다. 평안이 없었다. 허 선교사는 내게 일 중독에 걸렸다고 말했다.
주님이 은혜를 거두어 가지 않으시므로 주님이 주시는 영감으로 매 주일과 수요일은 물론 새벽기도에 나가 설교를 했다. 언젠가 내가 아마존을 떠나게 될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왜 그럴까? 처음엔 아마존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해서였겠지만 지금은 집착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날도 모터보트를 타고 부흥회 인도를 위해 머나먼 인디오 마을을 향했다. 그런데 수산나가 보트 안에서 읽으라며 편지를 주었다. 내용인즉 제발 좀 쉬라고, 엄마와 가족도 생각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코웃음 치며 '아이고 웃기네. 저나 잘하지 딸 주제에 주제넘기는' 하며 편지를 강물에 버렸다. 마치 발람이 유혹에 빠져 발락에게 갈 때 불순종하는 나귀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민 22:22-24) 당시 내가 그랬다. 어린 딸도 알아차린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나는 몰랐다.
나는 완벽주의자로 살았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고, 비록 내가 손해 보더라도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것이 주님보다 더 중요했다. 다른 사람이 더 중요했고 주님은 다음이었다. 사람 눈치를 많이 보았다는 말이다.
허 선교사가 이제 좀 쉬고 싶으니 사역을 좀 줄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역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나는 교회를 개척했다. 그런데 그 뒤에 숨은 진실은 무엇인가? 내가 오랫동안 기도하고 연구한 뒤 시작한 사역인 만큼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었다. 나의 확신을 하나님의 확신으로 착각한 것이다.
선교사로서 나는 선교 보고를 할 기회가 아주 많았다. 그런데 돌아보니 하나같이 위선적이었다. 왜 위선적인가? 사람을 기쁘게 하고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선교 보고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어서 자유함이 없었다. 얼마나 큰 위선인가? 주님이 행하신 일을 잘 설명해야 하는데 주님은 감추고 나를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내 선교 보고는 힘도 없고 주님의 은혜도 없었다. 반면 허 선교사의 선교 보고는 힘이 있고 은혜가 있었다.
설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모든 것을 조심했다. 주님만을 증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나의 약함과 십자가를 증거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 대하여 죽지 않고 세상도 내게 대하여 죽지 않은 까닭에 십자가 대신 교묘하게 나를 자랑했다. 내 자아는 속으로 말하기를 나는 훌륭한 목사다, 누구누구는 자기를 자랑하는데 나는 내 자랑을 절대 안 한다 하며 속이고 또 속였다. 그러면서 자기 자랑을 일삼는 설교자들을 마음속으로 비난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했는가? 내가 모든 것을 잃고 주님께서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주실 때까지 그랬다. 나는 주님의 종이 아니고 두려움의 종, 사람의 종으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