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풀은 자란다

“비 오는 날, 놀이터는 재미없지?”

그 애였다.
같은 반 친구 중 키가 가장 커서 눈에 띄었지만
학기 초부터 내내 혼자서 앉아 있던 조용한 아이,
‘말 없는 그 애’라고 불리던 애. 그 애가 나에게 말을 걸다니.

“그럼 어디가 재밌는데?”
“나도 우산 없거든. 뛰어갈 건데 같이 갈래?
가는 길에 보여줄게.”

빗속을 뛰어가면 새로 산 흰옷에 흙탕물이 튈 텐데.
우산도 없이 빗속을 뛰다니, 그런 적은 없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가 한참은 더 올 것 같았다.
“그래…. 같이 가자.”

“왠지 그날, 번개로부터
나무가 나를 지켜주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그 나무를 영원히 친구로 기억할 거야.”

“애들은 네가 너무 수줍음이 많아서, 그래서 말이 없는 거라고 말했어.”
“내 말을 들어주는 친구 앞에서는 수다쟁이가 돼, 그런데 그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어째서?”
“내 이야기를 들을 때 두 눈이 반짝거렸으면 좋겠어. 그런데 그건, 나도 그 애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