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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6390840
· 쪽수 : 209쪽
책 소개
목차
1장 가족으로 산다는 것
내 생애 최고의 이벤트
그녀의 이름은 야누스
비밀경찰
유년의 뜰
장가가고 싶어요
오 여사의 눈물
누나의 이름으로
2장 어머니로 산다는 것
인구조사
엽기적인 그녀
나도 컴퓨터세대
알뜰한 당신
공부는 평생 하는 것
너무합니다
어머니의 특별한 교육관
3장 아버지로 산다는 것
인생은 전쟁이다
자서전 쓰는 남자
아버지는 땅개
충청도 검법
아버지의 초상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
4장 부부로 산다는 것
헬로, 브라이언
내 인생의 봄날은 가고
독립군의 후예
쉰으로 산다는 것
또 하나의 가족
운수 좋은 날
책속에서
9년 전 시아버지가 세상을 뜨셨을 때도 시어머니는 덤덤했다. 대개는 한풀이 하느라 과장되게 곡을 하며 장례를 치르기 마련인데, 시어머니는 영정사진을 마주하고 앉아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넬 뿐이었다.
"쯪쯔... 거 가면 딴 짓도 못할 낀데 깝깝스러버서 우짜노?"
어찌 들으면 야유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내가 아는 한 그것은 진심어린 위로의 말이었다, 시어머니의 가슴은 여과지 같아서 그곳을 통과하고 나면 어떤 복장 터질 일도 별 일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 본문 77~78쪽에서
그날 밤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딸이 학교에 가는 걸 왜 그리 방해했는지에 대해서. 어머니는 한숨 한 번 길게 내쉬더니 회한이 깃든 얼굴로 말했다.
"낸들 공부 많이 시키고 싶지 않았겄냐? 그런들 뭘혀. 갤킬 능력이 없었는 걸. 공부에 재미 붙이면 자꾸 높은 핵교 가고 싶어 할 테니 아예 못허는 게 낫겠다 싶어 그랬지 뭐. 오빠는 장남이니께 안 가르칠 수 없고, 언니는 벌써 공부에 재미를 붙였으니 말릴 수 없잖여." - 본문 116쪽에서
이제 아버지는 팔십이 넘었다. 명절날 같은 때 손자놈 용돈이라도 주려고 깊은 주머니에서 돌돌 말린 천 원짜리를 꺼내는데 보면, 얼마나 오래 간직하고 있었는지 모서리가 다 닳았다. 소주 한 병 값에 불과한 그 천 원은, 그러나 아버지 평생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일생동안 당신을 위해서는 천 원짜리 한 장 마음대로 써보지 못한 분이 나의 아버지다. 아직도 나는 그런 아버지 앞에만 서면 부끄럽다. - 본문 165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