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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비평/이론
· ISBN : 9788957361733
· 쪽수 : 316쪽
책 소개
목차
1. 예술의 원천은 죽음에 대한 공포다
- 인간의 절규! 죽고 싶지 않아!
죽음을 향한 충동은 악을 낳는다
죄악의 대가, 죽음에 대한 공포
영원한 죽음이 계속되는 곳, 지옥
페스트, 죽음과 맞닥뜨린 전염병의 공포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2.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자연에서 보다
- 알 수 없음, 이해할 수 없음
자연,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
모든 것을 창조하고 삼키는 어머니, 바다
모든 것의 잔인한 파괴자, 폭풍
악마가 활개 치는 시간, 밤
불길하고 사악한 지구의 동반자, 달
겨울, 차디찬 세상의 종말
순환하는 자연, 영원히 풀리지 않아야 할 자연의 수수께끼
패닉을 불러오는 욕망하는 자연
3. 여성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다
- 여성과 자연은 통제되어야 한다
여성혐오는 남성혐오의 반대말일까?
여성은 보는가, 보이는가
죽음을 가져오는 팜 파탈, 여성은 지옥이다!
이브, 인간 원죄의 책임을 떠안다
릴리트, 반항하는 아내는 악마다
가부장을 살해한 여성, 결코 용서받지 못할 절대 악녀
가부장에 대해 가장 잔인한 복수를!
집단 광기의 음험함, 마녀사냥
생명을 잉태한 창조자의 서늘한 미소
바기나 덴타타로서의 메두사, 영원한 여성성의 공포
4.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읽다
- 광기는 인간성의 종말이다
욕망, 내 안의 낯선 타자
본능을 제압한 이성의 승리
우골리노, 생존 본능에 내재된 악마성
파우스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음울한 광기
악의 쾌락으로서의 도착
광기, 내 안의 낯선 악마
5. 전쟁에 정의의 존재를 묻다
- 전쟁의 본질은 광기와 살육이다
타자 배척은 전쟁의 기원이다
전쟁의 참화, 전쟁의 본질은 광기와 살육이다
사진의 기록성, 전쟁의 본질을 묻다
제1차 세계대전, 미술이 드러낸 서양의 몰락
홀로코스트, 집단 광기의 잔인함을 보여 주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서양은 이성과 합리성을 내세워 선악을 구분하여, 악의 대상을 찾아내고 배척해 온 역사가 있습니다. 그 역사가 바로 ‘휴머니즘humanism의 전통’입니다. 휴머니즘은 인간이 합리주의와 이성을 갖추었다는 전제에서 인간을 중심으로 만물에 질서를 세우려는 시도입니다. 합리적 이성이 진리와 동일시되며, 그 경계를 넘는 것은 악이 되었습니다. 휴머니즘의 세계관은 이분법에 기초해 인간과 자연, 정신과 육체, 남성과 여성, 이성과 감정, 우리와 이방인을 선과 악으로 분리했습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인간은 결코 아름답고 선하기만 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니 예술이 선악(善惡)과 미추(美醜)를 넘나드는 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예술은 사회 규범을 넘어서는 것을 망설이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술은 선보다는 악과 더 닮았습니다. 그래서 뛰어난 예술가들이 만들어 낸 이미지는 우리에게 인간은 어느 쪽이냐고 끈질기게 묻습니다. 악을 품은 이미지는 바로 그 질문 중 하나로, 우리를 인간성의 심연으로 이끌어 극한의 경험을 눈앞에 펼쳐놓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속한 종(種)에 대해 조금이나마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별이 빛나는 밤>은 악마가 날뛰는 시간인 밤을 그렸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반 고흐가 그린 생명력이 넘치는 밤 풍경을 보고 악마를 숭배하는 이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 2장.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자연에서 보다> 중에서
인간은 항상 인간에게 주어진 것 이상을 탐냅니다. 그래서 문명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고 자찬하고요. 하지만 스핑크스는 오늘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에 속한 존재임을 망각하는 것은, 오만이라는 죄에 빠지는 것임을 상기시키면서 말입니다. - 2장.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자연에서 보다> 중에서
서양미술에서는 전통적으로 관객과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남성이어야 했고, 여성은 보이는 대상이어야만 했습니다. 당당한 시선은 권력을 움켜쥔 남자들의 것이었으니까요. <올랭피아>가 19세기에 스캔들 메이커가 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여성은 더 이상 보이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언했으니 말입니다. - 3장. <여성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다> 중에서
<모나리자>가 끊임없이 화제가 되고 재생산되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가부장제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 문화에서 결핍이 없는 존재란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즉 공포의 대상입니다. 계속해서 두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지요. 그녀는 모든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를 굽어보며 미소 짓는 영원한 어머니입니다. - 3장. <여성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다> 중에서
로댕은 단테보다 더 인간의 본능에 대해 가혹합니다. 짐승의 모습을 한 우골리노에 연민이 깃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저 살고자 하는 본능이 결국 인간을 동물로 추락시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을 따름이지요. 배고픔 때문에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탐욕스러운 생의 의지가 갖는 잔혹한 측면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 4장.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읽다> 중에서
루이스 캐럴은 아이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면서 은밀한 즐거움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시각과 성욕이 갖는 밀접한 관계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어린아이라면? 그것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금해야 할 악의 쾌락입니다.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존재를 파괴함으로써 얻는, 그런 것이니까요. - 4장.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읽다> 중에서
고야는 전쟁이 인간을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추락시키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구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쟁은 모든 인간을 가해자면서 피해자로 만드는 주범이기 때문입니다. 고야 이후 비로소 전쟁은 인간을 가리지 않고 파멸시키는 절대 악으로 묘사되기 시작했습니다. 고야는 이미 200여 년 전에 ‘정의로운 전쟁 따위는 없다’는 선언을 한 반전주의자입니다. - 5장. <전쟁에 정의의 존재를 묻다> 중에서
이 그림을 통해 누스바움은 전쟁이 자신을 비롯해 인간의 삶을 얼마나 철저히 망가뜨렸는지를 보여 줍니다. 약 400년 전 피터 브뢰헬은 <죽음의 승리>를 통해, 페스트와 전쟁이 죽음이 판치는 세상을 가져왔음을 예리하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 누스바움의 <죽음의 승리> 역시 전쟁이 세계를 죽음과 파괴로 이끌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그 무엇도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를 부여받으려면, 살아 있어야 가능하니까요. - 5장. <전쟁에 정의의 존재를 묻다> 중에서
노르웨이 출신의 상징주의 작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가 그린 <절규>는 '공포를 그린 작품은?'이라고 물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