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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8243373
· 쪽수 : 281쪽
· 출판일 : 2017-07-27
책 소개
목차
서문
추천사 (김지연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무엇이 되어 만나리
마리는 누구인가
날으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
우화의 강
엎드린 산
연신의 노래
저자소개
책속에서
명수 씨는 더욱 영문을 알 수 없는 카니 박의 행태에 이제는 거의 알레르기를 일으킬 정도로 그녀를 의식하며 더욱 경원하게 되었다. 그날도 으레 일 삼아 K클리너를 들르게 되었다. 아내와 점심이라도 같이 할까 하는 생각으로. 프런트에 들어서다 갑자기 요의가 급해졌다. 화장실에 들러 넘치기 직전의 뱃속 물을 버리고 후련한 기분으로 나오는데 그 컴컴한 입구 복도에 누군가 서 있었다. 누군지 알아볼 틈도 없이 갑자기 느닷없이 덮쳐오는 포옹, 그리고 온몸을 빨아들일 듯 강렬한 키스, 그 깊은 키스의 아득한 몽환, 시공의 한계를 넘어 미지의 블랙홀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명수 씨도 은연 중 혀를 굴려 그 미지의 입 속을 탐닉했을까, 모르는 일이었다. 뜨거운 피가 펄떡이는 심장을 겨우 누르고 철없는 아랫도리의 반란을 민망해하며 상황 판단을 위해 정신을 추스르려는데, “죽이고 싶도록 미워. 죽여 버리겠어. 기다려.” 귓가에 뜨겁고 축축한 목소리를 남기며 뛰쳐나가는 실루엣. 그 모습은 틀림없이 카니 박, 그 불길한 여인의 뒷모습이 아닌가. (‘무엇이 되어 만나리’ 중에서)
얼굴로만 몰려드는 밝고 뜨거운 햇살에 와락 짜증을 내며 눈을 뜬 마리는 정신이 몽롱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강렬한 건 꽤나 늦은 아침이라는 것도 그녀는 몇 번이나 눈을 깜박인 후 알게 되었지만, 지난밤 언제 어떻게 누가 집에 데려다주었는지 도무지 깜깜했다.
‘아, 내가 또 무슨 실수를 한 거야.’
마리는 후딱 건너편 옆에 트윈베드를 본다. 남편 사이드는 사람이 누웠던 흔적조차 없이 말쑥하고 집 안은 적막하기만 했다. 마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말 이이가 떠나고 만 건가?
어제 아침에 남편이 그랬다.
“나 내일 떠날 거다. 언제 오느냐고 묻지 말고 기다리지도 말아라.”
마리는 언제부턴가 맨정신으로는 남편에게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 그렇다고 남편이 마리에게 많은 말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한 지붕 아래서 부부라는 관계로 엮여 덤덤하게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마리가 술을 한잔 걸쳤다 하면 그런 아슬아슬한 균형도 깨지고 만다. 마리는 평소 불만과 울화가 그대로 폭발하여 큰소리 욕설 폭행 행패 포악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끝내는 통곡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 (중략)
“절대 안 돼. 네버 에버 노우!”
마리는 벌떡 일어나 가운을 걸치고 거실로 나갔다. (‘마리는 누구인가’ 중에서)
“때르릉때르릉”
그때 마루 탁자 위에 전화기가 울렸다.
‘이 새벽에 대체 누굴꼬?’
노파는 의아해하며 마루로 나와 수화기를 집어 귀에 댄다.
“누구시요?”
저쪽에선 잠깐 가는 숨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아니 뉘시요? 전화를 했음 말을 하구려.”
재촉하자 상대 쪽에서 망설이듯 묻는다.
“엄, 선녀 씨 댁 맞습니까?”
낮게 가라앉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노파는 쿵쾅이는 가슴을 누르며 아득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어 침착하게 이름을 불러 본다.
“명호야, 명호!”
대답이 없자 다시 속삭이듯 묻는다.
“너 명호 맞지야?”
“네 명호입니다. 어머니는 저를 금방 알아보시는군요.”
“그럼, 이 어미가 널 어찌 잊겠느냐. 지금도 널 생각하고 있었어야, 이 무정한 눔.”
말끝으로 사설조의 울음이 묻어난다.
‘36년 전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날 죽은 자식으로 치라며 울부짖고 떠난 너지만 이 어미가 어찌 너를 잊는단 말이가.’
목울대를 아프게 비집고 북받치는 한숨 같은 넋두리를 지그시 누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게가 어디냐? 왜 어미에게 당장 오지 않고 전화인 게여?” (‘날으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