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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8245247
· 쪽수 : 262쪽
· 출판일 : 2025-10-02
책 소개
목차
책을 내며 길승길(남방CNA 그룹 회장) 4
추천사 김태겸(수필가, 서초문인협회 명예회장) 9
평설 金宇鐘(문학평론가) 뿌리 깊은 나무들의 숲 244
제1부 ‘믿음’은 힘이다
이제 잔병은 없을 거다 25
광복절이 오면 28
고향 유정(有情) 32
경주고 유학기(遊學記) 37
두 마리 토끼몰이 43
‘믿음’은 힘이다 47
봄에 취하다 51
신의 한 수 54
서울 촌놈의 변(辯) 58
제2부 천사의 웃음
옥에도 티가 있다 67
천사의 웃음 71
아버지가 되는 것 76
미워할 수 있는 자격 81
J 전무의 퇴임 85
잊고 지냈던 초상화 90
오지 않는 비둘기 94
이면지 애용 99
김 과장의 책임감 102
제3부 장수기업의 꿈
사훈을 바꾸다 111
부자간의 대화 115
높았던 은행 문턱 119
반면교사(이웃이 흥해야 나도 흥한다) 124
기업의 숲 129
브랜드 효과 134
장수기업의 꿈 139
서울 사람으로 거듭나다 144
제4부 자녀교육에 왕도가 있을까
우리 할아버지 153
정원을 가꾸면서 158
납품실적증명서 유감(有感) 163
밥상머리 교육 168
자녀교육에 왕도가 있을까 173
핸드폰 분실 사고 178
현명한 판단 183
몽블랑 볼펜 188
제5부 대학 학사모
대학 학사모 197
입학 60주년 기념행사 203
L과의 추억 209
아홉수의 징크스 214
욕심에서 비롯된 일 218
자식들이 달아준 훈장 222
잔소리꾼 227
형수님 제삿날 231
만학의 기쁨 236
저자소개
책속에서
해마다 광복절이 오면 일본 나가사키에서 원폭에 희생되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돌아가실 때 연세가 서른셋이었다. 끝내 유해를 찾을 수 없었으나 그때 그곳에 계셨으니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아버지는 빈한한 우리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몇 해 전에 일본으로 건너가셨다. 나가사키에서 종이 관련 사업을 하셨다. 점차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자 삼촌도 일본으로 데려갔다. 아버지와 삼촌은 열심히 노력해 번 돈을 고향의 가족에게 보냈다. 그 덕분에 우리 4남매 중 장남인 형님은 서울의 보성중학교에 유학할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날 때 아버지는 일본에 계셨다. 나는 일생에 아버지와 마주해본 적이 단 한 번뿐이었다. 세 살 무렵 일본에서 잠시 귀국해서 나를 안아주었던 어렴풋한 기억이 전부이다.
해방 이듬해,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철이 들면서 아버지의 그늘이 늘 아쉬웠다. 홀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바라볼 때면 ‘아버지만 살아 계셨으면….’ 하는 원망과 서러움이 북받치곤 하였다.
남들처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큰 상실감이 되어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나의 아픔이 청상과부가 되신 어머니에 비할 수 있으랴. 어쩌다 몰래 어머니가 눈물짓는 모습을 볼 때면 너무도 가엾어서 따라 울곤 했다.
해방되고 난 후에도 수년이 지나도록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틈만 나면 읍내 쪽 먼 산을 바라보며 아버지와 삼촌의 소식을 기다렸다.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며칠에 한 번씩 다녀가는 우체부의 눈치를 멀찌감치 서 살피셨다. 막상 우체부가 다녀가고 나면 두 분은 더 심란해했다. 얼마나 애간장을 녹이셨을까?
할아버지는 해방 후에도 10년이 지나도록 아버지 제사를 모시지 못하게 하셨다.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그때까지 놓지 않으셨다. 보다 못한 집안 어른들이 설득에 나선 다음에야 겨우 허락하셨다. 기일(忌日)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8월 9일로 정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산소가 없어 늘 미안해하셨다. 87세에 돌아가시면서 그때 비로소 우리 형제에게 유언을 남기셨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유품으로 합장해다오.” 그 유언에서 오랜 세월 한을 삭인 어머니의 진심이 느껴졌다.
1993년 양력 섣달그믐날, 어머니는 외롭게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그날따라 발목이 잠길 만큼 눈이 많이 내렸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위해 은백색 융단을 깔아 주신 것일까? 어머니 유언대로 두 분 산소를 고향에서 멀지 않은 안동 길안면 선영에 합장하여 드렸다.
우리 민족의 경축일인 광복절, 나는 그날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해방을 아버지의 죽음과 맞바꾸었으니까. 그날이 오면, 나무 속 옹이처럼 가슴 깊숙한 곳에 박혀있던 서러움이 하나하나 되살아나 잠을 설치게 한다.
- <광복절이 오면> 중에서
비 온 뒤라 공기가 향긋했다. 마포 나들목에서 신수 나들목으로 가고 있는데 무엇인가 내 시선을 끌어당겼다. 수양버들이었다. 볼 때마다 안쓰럽다는 생각이 드는 나무였다. 넓은 땅을 두고 어쩌다 저런 벼랑 끝에 매달려 힘겹게 살아갈까?
장마철에 어디선가 떠내려오다가 이곳 강둑에 달라붙어 더부살이하는 나무였다. 비스듬히 강 쪽으로 드러누운 모습이 언제 보아도 불안하고 금방이라도 쓸려가 버릴 듯하다. 강물이 불어나면 아래쪽 가지들은 물에 푹 잠긴다. 강물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저 모습이 흡사 서부영화에서 보았던 떠돌이 유랑자를 연상케 한다.
어느새 앙상하던 그 수양버들에 가지마다 파~란 움이 촘촘히 돋아나와 구름에 가린 달덩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갓 목욕을 마친 말간 아기의 얼굴 같기도 했다. 내가 이 수양버들과 인사를 나누며 지내는 세월이 스무 해가 넘었는데 그 질긴 생명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슬비가 그치지 않아 하늘은 뿌연 잿빛이다. 그 아래 갈 빛을 띤 한강 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 풍경을 배경으로 수양버들이 연둣빛으로 치장하고 나를 유혹하며 서 있다. 뒤쪽으로 저만큼 황포돛배, 어염선 한 척을 띄운다면 참으로 멋진 한 폭의 동양화가 되었을 법하다.
수양버들을 지나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길섶에 돋아난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눈길을 멈추게 한다. 엊그제 이곳을 지날 때만 해도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 그때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간밤에 내린 봄비가 깔끔하게 샤워해 준 덕분이리라.
-〈봄에 취하다〉 중에서
우리 회사는 본사와 23개 판매 대리점이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체제이다. 본사와 대리점, 대리점과 대리점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럴 때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같은 숲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태어난 의성 사촌마을에는 서북쪽으로 길게 뻗은 방풍림이 있다. 닭이 알을 품듯 동네를 포근하게 감싸안고 600년이라는 세월을 묵묵히 마을을 지켜 온 숲이다. 때로는 마을의 수호신이 되기도 하고, 더러는 아늑한 울타리가 되어주기도 하면서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가족 같은 숲이다.
기업 간에도 이러한 숲이 있어서 완충 역할은 물론 친목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욕심을 가져 보았다.
대리점과 뜻을 모으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각자 나름대로 이해관계가 앞서기 때문이다. 무엇부터 손을 대어야 좋을지 여러 방면으로 고심해 보았다. 다행히 우리 회사는 20여 년 쌓아온 현장 경험이 있기에 그 가운데서 몇 가지 추려서 미흡하고 부족한 점을 개선해 보기로 했다.
‘대리점에 갑질을 하지 않아야 하겠다.’
‘박리다매 전략으로 시장을 넓히자.’
‘대리점과 동반 성장을 꾀하자.’
경영방침을 위 4가지에 비중을 두었더니 인간관계는 물론 신뢰 관계가 눈에 보이게 우호적이었고 공동체 의식이 현격히 되살아났었다. 기업은 이윤추구가 우선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작은 이해보다는 서서히 상호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낙수효과를 거둘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본사와 대리점은 엄격한 의미에서는 각기 한 그루의 나무일 뿐이다. 홀로 선 나무는 힘이 약하다. 그러나 어깨동무하고 한곳으로 뜻을 모으면 거센 풍파에도 쓰러질 염려가 없다.
중소기업은 조직의 힘보다는 조직원의 상호 협력 의지와 의욕적인 업무 자세가 더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기업의 숲’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장수기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기업의 숲’을 만들어 가는 게 현명하리라 본다.
-〈기업의 숲〉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