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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59139699
· 쪽수 : 518쪽
책 소개
목차
제1부 / 제2부 / 제3부 / 제4부 / 옮긴이의 말: 꿈의 서점에서
리뷰
책속에서
“전 당신 감각을 믿지만 메리벨 규모의 도시에서 이상적인 서점이 수익을 남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에요. 오로지 좋은 소설만을 판매하는 완벽한 서점은 런던이나 파리처럼 문화적 전통이 강한 대도시가 아니면 버티지 못할걸요. 그 정도 규모의 도시라면 우리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만 해도 5,000명에서 1만 명은 될 거예요. 서점에 책이 많아도 정작 원하는 걸작은 찾을 수 없다고 불만스러워하는 소설 애호가들이 잠재 고객이 되겠지요.”
방은 이 말에 크게 마음이 움직여 맞장구를 쳤다.
“저도 전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난 그 서점의 이름까지 생각해놓았어요. 오 봉 로망(좋은 소설이 있는 곳). 그 서점을 여는 데 필요한 돈은 내가 댈 수 있어요. 책 팔 사람만 있으면 돼요.”
프란체스카는 대답 대신 신문 꾸러미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방은 바로 알아차렸다. 일간지 광고란에서 오 봉 로망의 개점 광고가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면에는 그들이 고심했던 수많은 카피 중에서 가장 단순한 카피가 함께 실려 있었다. “오 봉 로망에는 좋은 소설들이 있습니다.” 그 밑에 설명이 단 세 줄 달렸다(위대한 문학, 오직 그뿐. 월요일. 파리 뒤퓌트랑 가街. 하지만 번지수도, 영업 시간도 나와 있지 않았다). 배경으로는 빅토르 위고가 손수 그렸다는 근사한 담채화─벼랑 위에 우뚝 솟은 전설의 성─가 깔려 있었다.
방은 괜히 놀란 척했다.
“축포는 월요일에 쏘아 올릴 줄 알았는데요.”
프란체스카는 의기양양했다.
“당신을 좀 놀라게 해주고 싶었어요. 우리 오 봉 로망의 개점이 이미 한 번 봤던 영화 같은 인상을 남겨선 안 되잖아요? 그 얘기는 이골이 나도록 했죠. 카피에 대해서는 당신이 좋은 아이디어를 열 가지나 냈기 때문에 하나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릴 수 없겠더라고요.”
“무슨 뜻이에요? ”
“두고 보면 알 거예요.”
방은 짐작이 갔다. 과연, 토요일에 두 번째 축포와 함께 두 번째 카피가 등장했다. 모든 일간지에 전면 광고가 실렸다. 이번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책들’이라는 카피가 한눈에도 유화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왕정복고 시대 그림을 배경으로 실렸다. 로마의 들판을 힘차게 달리는 2인용 마차. 글줄깨나 읽었다는 사람은 그 마차 차창으로 보이는 옆얼굴이 스탕달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프란체스카는 서점 전면에 거대한 패널로 가림막을 세웠다. 금요일에는 신문 광고에 실렸던 빅토르 위고 그림이, 토요일에는 스탕달 그림이 가림막에 등장했다. 서점의 문은 가려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간판도 아직 달지 않았다.
간판은 일요일 밤이 지나고 월요일이 밝을 때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좋은 소설 애호가들은 광고를 볼 줄 알았고 개점 시각인 10시부터 들이닥쳤다. 11시가 되자 매장이 제법 북적거렸고 저녁때까지도 손님은 줄지 않았다. 대부분은 어디 한 번 보자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오 봉 로망 같은 서점을 꿈꾸어왔다. 모두들 비슷비슷한 얘기를 했다. 자기는 소설책밖에 읽지 않는다고, 집에도 소설책은 넘쳐난다고, 대기 중인 책들이 쌓여 있다고 했다. 침대 밑에도, 머리맡에도, 사무실 책상 속에도, 거실 소파에도 소설책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서점에 가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나. 서점에 갔다가 괜히 울적한 기분에 빠져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올 때도 많았단다. 왠지 숨쉬기가 답답하고 심기가 편치 않든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책벌레들이 서점에서 이런 기분을 느낀다니 얼마나 희한한 일인가. 퇴근 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이나 실컷 읽는 낙으로 살아가는 그들, 발목에 골절을 입어 두 달간 꼼짝 못하고 누워만 있던 때를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하는 그들, 소설에서 모든 위안을 얻는 그들이 정작 서점에는 정을 못 붙였다니!
“나도 그랬어요. 우리는 우리가 간절히 원하던 서점을 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