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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9595549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2-04-10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_ 4
제1부 유년의 회상(回想)
신당동에서 태어나다_ 15
피란 시절, 부산과 밀양_ 17
전후, 다시 돌아온 서울_ 19
다리를 절다_ 21
이승만 우상화_ 23
제2부 봄날은 간다
전쟁 직후의 국민학교_ 25
전학과 월반_ 28
곳곳에 볼거리, 구경거리_ 31
봇물 터진 교육열_ 34
5·16 쿠데타와 체력장 시험_ 38
효자동 중학교_ 41
5·16 기념 산업박람회_ 44
서울 전찻길 풍경_ 45
혼분식 장려, 쌀 배급_ 48
만화가게, 단체 영화 관람_ 50
6·3 사태 현장_ 55
힘들었던 음악 시간_ 57
제3부 짧은 고교 생활
바뀐 친구들, 다양해진 구성_ 59
경주로 무전여행_ 60
다리 수술, 병상에서의 1년_ 62
검정고시 수석합격_ 64
꿈같은 만남_ 66
막바지 입시 준비_ 67
제4부 민주화 학생운동
유배된 교양과정부_ 69
3선 개헌 반대운동_ 71
후진국사회연구회_ 73
서울의 빈민촌 실태조사_ 75
전태일 분신, 노동운동_ 77
교련반대운동_ 79
선거참관운동_ 81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_ 83
광주대단지 사건_ 87
10·15 위수령_ 90
서울대생 내란 예비음모 사건_ 93
사회여론조사_ 95
동기생과 졸업 여행_ 98
대학로의 추억_ 99
제적 시절_ 103
복학, 다시 돌아온 학교_ 104
민청학련 사건_ 106
긴급조치 9호 위반, 구속_ 110
막걸리 반공법_ 115
지하신문 ‘타도’_ 117
구속자가족협의회_ 118
제5부 사회에 나오다
중앙일보 입사_ 121
결혼-9년여의 연애_ 122
서울 올라와 23차례 이사_ 124
중앙매스컴 언론자유운동_ 126
사건기자 시절_ 129
동양방송(TBC) 외신부_ 131
언관사관(言官史官)_ 133
YH 농성 사건_ 136
제6부 잃어버린 80년의 봄
언론검열, 통제된 진실_ 141
기지개 켠 언론자유운동_ 143
동명목재 파산_ 147
언론인 대량학살_ 149
언론계 숙정, 언론 통폐합_ 152
TBC 고별 방송_ 154
제7부 방송에서 신문으로
방송에서 신문으로_ 156
아이들 태어나다_ 157
나의 집 마련_ 159
명성그룹 탈세 사건_ 162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_ 164
휴가 여행_ 166
국제그룹 해체_ 168
쌀 생산량, 이중곡가제_ 171
리비아 해외건설 현장_ 173
보도지침의 민낯_ 175
평화의 댐 사기극_ 177
언론에 대한 특혜_ 179
제8부 정론(正論)을 찾아서
중앙일보 노조 결성_ 182
분당, 일산 신도시 건설_ 185
세계의 명품, 해외기업 취재_ 188
해외연수, 미시간대에서 1년_ 190
1992년 14대 대선_ 193
김일성 사망_ 195
중앙경제 폐간- 어떻게 신문사가 문 닫는가_ 197
중앙일보 조간 전환_ 199
시사지 WIN 혁신_ 202
덩샤오핑 사망 특종_ 204
신문사에서 다시 만난 학생운동 동료들_ 206
IMF 언론사 구조조정_ 207
시민사회연구소_ 211
글을 쓴다는 일_ 213
중앙일보 영어신문_ 216
기자 사회의 촌지문화_ 219
중앙일보 퇴직_ 221
제9부 퇴직 이후
여론조사 회사 디오피니언_ 223
민주화운동 유공자_ 225
한국 언론의 어두운 현실_ 227
산이 좋았다_ 232
노년의 건강_ 235
너는 무엇인가_ 238
제10부 나의 가족들
며느리를 맞다_ 241
덕수 장씨(德水張氏)_ 243
나의 부친_ 245
어머니와의 여행_ 248
나의 어머니_ 250
노년의 형제들_ 254
나의 아내_ 255
제11부 한국 사회의 무거운 과제들
남북문제와 통일_ 258
인구 감소_ 260
지방 소멸_ 263
각주(註)_ 267
백과사전_ 268
참고 문헌_ 269
연보_ 270
저자소개
책속에서
5)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이 터진 1983년 10월 9일, 편집국은 물론 회사 전체가 긴장과 혼돈에 휩싸였다. 한글날 휴일이었지만 모든 기자에게 출근 명령이 떨어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폭파 사건과 관련해서 편집국에 불확실한 내용의 1보가 전해진 것은 오후 1시 반 무렵이었다. “버마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일행에게 경호상의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취재가 불가능한 해외에서 터진 이 초대형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사회부 데스크를 중심으로 버마 현지의 대사관과 상사들, 국내 정보기관 등 가능한 모든 곳과 접촉을 시도했다. 정보를 모아본 결과 버마에서 큰 사고로 대통령 일행 중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대통령의 서남아·대양주 6개국 순방길에는 삼성 이건희 부회장이 수행단의 일원으로, 또한 중앙일보의 송진혁 청와대 출입기자가 취재차 동행하고 있었다. 오후 4시 이진희 문공부 장관이 사건을 공식 확인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중앙일보는 ‘전 대통령 수행원 15명 참사’라는 제목으로 첫 호외를 발행했다. 중앙일보의 이 사건 취재에는 당시 회사를 퇴직하고 기업에 가 있었던 김재혁 전 기자가 큰 활약을 했다. 그때 김 선배는 (주)한양 비서실장이었는데 대통령을 수행한 배종렬 한양 회장에 하루 앞서 현지에 도착해 있었다. 밤 10시 무렵 취재진이 김재혁 선배와 통화가 되면서 그의 도움으로 현장 상황과 사건 발생 과정, 부상자의 용태 등을 담아 생동감 있는 기사를 만들 수 있었다.
중앙일보는 이날 세 차례 호외를 발행했다. 밤 11시에 현장의 상보(詳報)를 담은 2차 호외를, 다음 날인 10월 10일 오전 10시에는 전 대통령 일행이 서남아시아 및 대양주 6개국 공식순방계획을 취소하고 귀국길에 올라 새벽 3시에 김포공항에 도착했다는 내용의 3차 호외를 냈다. 부상당한 수행자들도 후송기 편으로 10일 밤 서울에 도착했고, 부상한 송 기자는 국립의료원에 입원해 한 달여 동안 치료를 받았다. (중앙일보, 동양방송 사사편찬위원회《중앙일보 20년사, 附동양방송 17년사》, 1985.9.)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각료들 모두가 대통령보다 앞서서 랑군(현재의 양곤) 아웅산 국립묘소에 도착했는데, 천병득 청와대 경호처장이 묘소를 지키고 있던 버마군 장병들한테 “나팔 불 준비는 됐느냐?”며 손으로 나팔 부는 흉내를 냈다고 한다. 그런데 버마 장병들이 이걸 잘못 알아듣고 진혼나팔을 불었다. 근처에 잠복해 있던 북한 테러범들이 이 나팔 소리를 듣고 ‘전 대통령 일행의 참배가 시작되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미리 설치해 둔 폭발물의 원격조종장치를 누른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들보다 늦게 현장에 온 대통령이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웅산 사건 희생자 17명 가운데는 경제기획원, 재무부, 상공부, 농림수산부 등 경제부처의 장·차관들이 많아 과천 경제부처들의 분위기는 한동안 어둡고 우울했다. 특히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은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리며 신군부 집권 전반기에 물가 안정, 수입 자유화, 금융 자율화 등을 잘 처리해 와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북한은 1980년대 초반 남한에 이처럼 거칠게 나왔다. 사건 이후 군 등에서 북한에 대한 보복을 강하게 주장했으나 전두환 대통령이 이를 막았다고 한다. 북한에 대한 보복을 전 대통령이 막았다는 게 맞는 말인지, 맞는다면 그 배경은 무엇인지, 여전한 의문 속에 그는 2021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이하 생략>
- <본문> 중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