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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영조

두 얼굴의 영조

(18세기 탕평군주상의 재검토)

김백철 (지은이)
태학사
25,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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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영조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두 얼굴의 영조 (18세기 탕평군주상의 재검토)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후기(영조~순종)
· ISBN : 9788959666539
· 쪽수 : 504쪽
· 출판일 : 2014-09-22

책 소개

'태학총서' 44권. 전율(戰慄)의 군주와 요순(堯舜)의 현신(現身) 사이, 황혼의 탕평군주 영조의 맨얼굴을 마주 본다. 1부 '전율戰慄의 군주', 2부 '요순堯舜의 현신現身', 3부 '탕평군주상 창출과 재평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목차

연구 서설

1장 조선시대 역사상과 공시성共時性 재검토
1. 조선은 ‘근세’ 사회인가?
2. 세계사 속의 조선
3. 조선과 중국의 사회 변동

2장 영조시대 탕평정치의 지향: 국왕, 국가, 백성의 삼중주
1. 18세기 왕정의 과제
2. 영조 전반 탕평정치의 성과
3. 영조 후반 새로운 군주상 모색

1부 전율戰慄의 군주: 탕평군주상의 전환

3장 영조 후반 전제화된 권력의 형성과‘건극建極’
1. 두 개의 논점: 탕평인가, 붕당인가
2. 을해옥사의 진행 경과
3. 『천의소감』 편찬과 정국 수습책
4. 붕당을 넘어

4장 영조 만년 초월적 권위의 추구와 ‘대탕평’
1. 김치인 사건의 발단
2. 역옥 치죄 과정
3. 국왕의 숨은 의도: 소론 대신 신원
4. 해법 모색

2부 요순堯舜의 현신現身: 군민君民 관계 재설정

5장 순문詢問과 위민정치爲民政治
1. 왕정의 의사소통
2. 순문 대상 확대
3. 임문순문臨門詢問
4. ‘위민’의 실상

6장 윤음綸音과 왕정 전통
1. 국가의 공표 수단: 다양한 교서 양식
2. 국왕의 의사 표현: 비망기의 복합적 성격
3. 매체 혼용 현상
4. 윤음 전통의 탄생

3부 탕평군주상 창출과 재평가

7장 존호尊號 가상加上과 정국 변화
1. 영조 전반 대타협의 상징
2. 영조 후반 대처분 합리화
3. 정조가 추진한 추존 사업

8장 묘호廟號 개상改上과 탕평군주상
1. 묘호의 전통
2. ‘영조’ 묘호의 등장
3. 고종대 탕평군주의 부활

9장 탕평학 시론試論
1. 조선시대 탕평의 위치
2. 탕평의 유래와 궤적
3. 탕평정치 연구의 역사

결론

부표
참고문헌
찾아보기
발문
원문 출전

저자소개

김백철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시대사 전공.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문학박사.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주요 저서: 『조선후기 영조의 탕평정치』(2010), 『두 얼굴의 영조』(2014), 『법치국가 조선의 탄생』(2016), 『탕평시대 법치주의 유산』(2016), 『왕정의 조건』(2021), 『17세기 군주와 신하의 소통방식』(2023), 『정조의 군주상』(2023), 『사법품보』가 그린 왕정과 인간』(2023) 등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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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른바 탕평군주로 일컬어지는 숙종(재위 1674~1720),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정조(正祖, 재위 1777~1800) 등은 학문 수양을 통해 성인군주론을 완전히 체득하였고, 군주이자 스승으로 불릴 수 있는 학자 군주〔군사(君師)〕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였다. 청과 조선의 제왕들은 유교의 이상적인 국가를 현실 세계에 구현하기 위해 통치 체제를 재정비하고 사회 전반의 개혁을 직접 주도하였다.
결국 군주가 학문을 연마하여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고 급기야 개혁에 성공하여 부강한 평화의 시대를 만들어 낸 동아시아와 달리, 새로운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 서구의 절대왕정은 백성의 이반(離叛)을 초래하고 급기야 구체제(ancien regime)로 낙인 찍혀 혁명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18세기 평화기의 동아시아는 서양에서 흠모해 마지않던 이상향이었다. 유교정치 문화는 서구 사회에서 새롭게 발굴한 또 하나의 이상화된 사회로 인식되었으며, 계몽주의시대에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과 더불어 새로운 근대 국가상을 꿈꾸는 데 활용되었다.


영조 치세 전반기에 거둔 성과만 평가한다면 아마 반대 정파에 이토록 관대한 군주는 없었을 것이며, 대경장에서 자신의 정책 지표를 제시하며 이처럼 신료들의 이견을 허물없이 받아들인 경우도 없을 듯하다. 영조는 반평생 인내하고 타협하면서 서로 다른 정치 세력을 모두 자신의 신하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제까지 영조시대에 대한 연구는 주로 황금기에 해당하는 영조 20년대 후반까지가 그 대상이었다.


영조는 즉위한 지 약 30년간 국정 운영에서 살얼음을 걷는 듯이 살았다. 당습일소(黨習一掃)를 내세웠지만 신료들은 어김없이 국왕의 탕평과 요순 입론 뒤에 보란 듯이 당론을 덧붙여 왔다. 영조는 때로는 단식 투쟁을 불사하는 고집으로, 때로는 자신의 분을 참지 못한 거친 표현도 함부로 하였지만 이내 사과하고 타협하였다. 상당한 인내로 신료들의 양보를 얻어 내어 소기의 성과를 내면서 본인의 정책 과제를 대부분 완결 지었다. 국왕의 정치 명분을 회복하여 국왕 주도의 정국 운영을 현실화하였으며, 문물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국가 체제를 일신하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제를 개편하여 국가 재정과 소민의 안정에 힘썼다. 왕위와 관련해서도 영조 25년(1749)에 일찌감치 왕세자에게 대리청정을 하도록 함으로써 후계 구도를 확립하였다. 그리하여 영조는 재위 20년대 후반까지 국제(國制)를 정비하고 균역법을 완성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사회 부문의 개혁을 마무리하였다. 그는 회갑을 맞이하여 왕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예를 향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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