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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0218277
· 쪽수 : 152쪽
· 출판일 : 2025-10-24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술심부름 11
그날, 너는 16
복숭아나무 18
밤에 목욕하는 처녀들 21
도토마리 25
그 달이 시를 쓴다 28
그리고 우리는 돌아올 수 없었다 31
부표 34
갈대밭 36
물개바위 38
구중물 들다 41
원문이용원 43
원문상회 46
롯데 삼강사와 48
야반도주만이 유일한 답이었다 52
무학소주 열두 병에 잔은 한 개 54
제2부
숲이 있었다 59
그 집 62
동네 65
소년 68
밤이었다 70
멱을 딴다 72
공부방 75
바다 어는 날 76
기러기가 먹고 싶다 78
아우 먼저!80
늙은 암소를 타고 간다 81
소 한 마리 있어야겠다 84
오래 잊어버렸던 이름 한 마리 86
달이 훤했지! 88
똥개 90
다 죽었다 92
그해의 죽음들 93
J에게 94
무논 95
걸음마 배우는 봄바람이 97
초록 물감 방울 같은 100
여름이었다 103
이른 아침 하얀 고무신이 104
눈 오시는 날 106
제3부
새봄 111
고봉의 쌀밥 같은 신랑이 112
아재 다리가 113
아비 세 명이 낫을 들고 114
매일 밤 불침번을 115
젖을 먹이고 있다 116
닭을 잡고 있다 117
불알 두 쪽이 다 깨져 버린 아재가 118
돼지 꼬리만 한 지네가 119
목구멍을 넘어간다 120
바다로 던져 버린다 121
중송아지만 한 노루가 122
황새가 123
해바라기124
할머니의 유언125
아랫방 창문 126
해 설
차성환 - 영원한 고향의 꿈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 달이 시를 쓴다
그날 그 달의 살냄새에, 흙집에 고둥처럼 깃들여 사는 사람들이 모두 바닷가로 나왔다 이미 단풍이 든 늙은 살구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다 벌레 울음소리가 소낙비처럼 번졌다 우리를 부수고 나온 돼지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녔고 시집도 안 간 처녀들이 임신을 했다
장대로 높이뛰기를 하면 손에 닿을 거리까지 내려온 달이 거대한 술잔 속 바다에 달빛을 흩뿌리자 해저에서 검은 준마들이 천천히 움직였고 연안 구석구석에서 발기된 배들이 밧줄을 풀고 슬슬 나왔다
오직 팔의 힘으로 움직이는 순박한 목선들, 물고기와 조개를 싣고 다니는 중세 농노 같은 목선들이 머시마들을 가시내들을 태우고 달이 만들어 놓은 마당에 모여들었다
모인 배들은 얼마 동안 배다른 수캉아지들을 한곳에 몰아넣어 둔 것처럼 서먹서먹한 표정으로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가시내들의 노랫소리에, 가시내들 입을 통해 부르는 달의 노랫소리에 서열 가리지 않은 수컷들로 돌변했다 시키지도 않은 힘자랑이 시작되었다 멀리 시커멓게 웅크리고 있는 섬을 향해 경주가 시작되었다
달리는 배 하나하나가 튼실한 양물陽物들!
높아져 가는 노랫소리에 점점 더 싱싱해지는 양물들!
시거리 두른 양물들이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뿜을 때마다, 대가리로 파도를 부술 때마다 갯벌에 다리 박고 머리만 내놓은 하마들이 입을 크게 벌렸다 수면에 붙어 잠자던 고래들이 꼬리지느러미를 들어 올렸다
잘피 숲에 둥지 튼 붙박이들의 꿈을 박살 내며 먼저 닿은 배는 모닥불을 피워 승리를 자축했고 나머지 배들은 풀이 죽어 달 아래로 돌아왔다 하마들은 다시 피가 굳어졌고 고래들은 잠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러나 달빛!
넓게 쳐 놓은 그물에 걸린 억만 전어들이 물 위에 떠올라 파닥거리는 것처럼
물결에 부서지는 달빛에 저절로 점화되는 노래들
상수리나무 빽빽한 숲 기슭에 박혀 있는 하얀 이끼 두른 바위들을
허공에 밀어 올려 춤추게 하는 우리의 노래들
다시 죽순처럼 부풀어 오른 배들은 몸속의 노래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내보낼 때까지 달빛 마당을 돌고 또 돌았고 속을 깨끗이 비운 배들은 하나둘씩 둥둥 떠올라 달 속으로 사라졌다
배들이 다 사라진 후에야 달은 마당을 걷어 가며 만삭의 몸을 이끌고 서서히 서쪽 하늘로 떠났다……
떠나간 그 달이, 돌아올 수 없는 그 달이 시를 쓴다
텅 빈 달 아래 앉아 텅 빈 마을 바라보며
여자들의 꼿꼿한 뼈대들이 불알 까 버린 토끼들을 몰고 다니는 자전거도로를 걸어 다니며
그날 그 달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