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60498334
· 쪽수 : 380쪽
책 소개
목차
혼자만의 가을
혼자만의 겨울
혼자만의 봄
여름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나는 이때, 오랜만에 사람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야말로, 돗토리대학 학생 식당에서 비토 씨와 얘기를 나눈 후로 처음인지도 모른다.
말을 하겠다고 생각지 않으면 아무와도 얘기하지 않은 채 지낼 수 있다. 혼자라는 건, 요컨대 그런 것이다. 돈을 내는 손님으로서나 입을 연다. 아, 젓가락 부탁합니다, 특제 말고 그냥 싼 고기만두 주세요. 그런 말밖에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건 무서운 일이다. 그 무서움에 짓눌리고서야 겨우 앞을 조금씩 보게 되었다.
_혼자만의 가을
역시 이 베이스를 팔아 버릴까. 3,000엔이라도 있으면 보탬이 된다. 엿새치 식비가 될 수 있다. 아니, 과연. 엿새치 식비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할까.
자작곡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차곡차곡 쌓아 둔 프레이즈들을 반복해서 친다. 잊지 않았다. 아니, 치면 바로 떠오른다.
다만,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고 느낀다. 벌써 다섯 달이나 치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왼손의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과 약손가락과 새끼손가락, 그리고 오른손의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 딱딱하게 군살이 앉았던 손가락이 야들야들해졌다.
앞으로는 손가락 전체 피부가 두꺼워져야 한다. 어느 정도 열에 견딜 수 있으려면, 도쿠지 씨의 손가락처럼 되어야 한다. 베이시스트의 손가락을 요리인의 손가락으로 바꾸는 것이다.
앰프 없이 베이스를 붕붕 친다. 작심하고 치면, 이 붕붕거리는 소리도 커질 수 있다.
가장 굵은 네 번째 현의 저음부에서 가장 가는 첫 번째 현의 고음부로 휘리릭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 현의 E 음을 퉁긴다. 두둥우우우웅.
그 음에 덮어씌우듯, 후우우우 길게 숨을 내쉰다.
“끝.”
마지막 연주다.
_혼자만의 겨울
“너, 일할 마음이 있는 거야, 뭐야?”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냐고. 일할 마음이 있는지 묻고 있잖아.”
“네.”
“있는지 없는지 대답해 봐.”
“있습니다.”
손님이 보는 앞에서, 질책이 과하다는 기분이 든다. 라면 맛도 덩달아 떨어진다. 맛을 즐길 수 없다.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하고 생각하고 만다.
가령 라면이 아무리 맛있다 해도, 이런 가게에는 가지 않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맛있으면 그만이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환경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_혼자만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