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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라이트 노벨 > 앨리스 노벨
· ISBN : 9788960523401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14-04-30
책 소개
목차
서장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최종장
작가 후기
역자 후기
리뷰
책속에서
“……하아, 하아!”
―도망쳐야만 한다.
먼 곳으로, 더욱 더 멀리.
“하아, 하아.”
얼마나 뛰어왔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발걸음은 제대로 앞을 향하고 있는 걸까?
아직도 모자라다. 더 먼 곳으로 도망쳐야만 한다.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설령 그곳이 이 세상의 끝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나는―,
“……아.”
문득 주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 울창하게 우거진 어둑어둑한 숲 속, 앞쪽을 응시하자 장신의 그림자가 보였다. 시원스러운 눈매와는 대조적으로 사악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짓는 모습이 마치 악마처럼 잔혹했다. 앞으로 달려 나가던 다리가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더는 두 다리를 움직이는 건 무의미하다.
“숨바꼭질을 할 셈이었나? 넌 도망치는 게 서투르구나.”
억양 없는 목소리. 숨결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눈앞의 남자로부터 더욱 도망치기 위해 한 발 한 발 뒷걸음질했다. 남자는 자신의 행동에 한쪽 눈썹을 치켜들며 불쾌감을 표하면서도, 더욱 입꼬리를 올려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
“싫어, 싫…… 엇, 도와줘……!”
“어째서 그런 말을 하지? 상처받는군.”
사내의 팔이 소녀의 팔을 너무나도 손쉽게 움켜쥐었다. 이미 오래전에 말라붙었다고 생각한 눈물이 흘러넘쳤다.
“싫어. 놔줘! 이제 그만둬!”
“미노, 쓸데없는 짓이야. 내게서 도망칠 수는 없어.”
사내는 소녀를 강제로 자신의 가슴에 가두었다. 그리고는 곧장 어깨에 들쳐 메고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미노라 불린 소녀는 아연실색하며 자신이 가려던 길을 향해 말없이 손을 뻗었다.
닿지 않는다……. 그 무엇도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는다.
소중한 건 모두 잃었다.
가족도, 나라도, 사랑도, 모든 걸 전부―.
“으흑, ……아버지, 어머니……, 모두들……, 타츠미……. 흐윽.”
흐느끼며 작게 중얼거린 말이 남자의 귀에도 들린 모양이다. 미노를 어깨에 들쳐 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벌을 받아야겠군.”
“―!!”
남자의 눈이 냉혹하게 빛났다. 미노는 자신의 말실수를 뒤늦게 깨닫고서 온몸이 굳었다. 앞으로 자신의 몸에 닥쳐올 일들을 생각하고는, 겁에 질려 움츠렸다.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지? 나만을 생각하면 돼. 너도 즐기고 있잖아? 순순히 쾌락에 몸을 맡기면 이보다 더 상냥한 벌은 없을 텐데.”
절망이 밀려왔다. 누구보다도 증오스러운 이 남자의 품속에 있다는 현실에. 모든 걸 이 남자에게 빼앗겼는데도, 앞으로도 살아가야만 한다는 현실에.
“미노, 너는 나에게서 영원히 도망칠 수 없어.”
그런 건 누구보다도 잘 안다. 울어도, 소리 내어 외쳐도, 그 누구도 도와줄 사람 따위는 없다.
―왜냐면 이 나라에는…… 이제 우리밖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