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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1041744
· 쪽수 : 136쪽
책 소개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해저 스크린 12
별점을 치다 14
0에 관하여 15
플라스틱 탄알 16
달의 시그널 18
돈 후앙과의 대화 20
흰눈썹황금새 22
꽃게의 수도원 24
수월관음도 25
학란鶴蘭꽃들의 우파니샤드 26
사천왕 붉은 눈 28
반가사유상 30
고광나무에 달꽃이 피었다 지는 동안 32
제2부
수목장樹木葬 36
종이장판 위의 스텝 38
공놀이 40
물의 여행 42
피그말리온의 연인 44
변증법적 갈등 46
자전거 타기 47
끝나지 않을 48
활강 비행을 즐기다 49
생각하는 사람 50
머플러라고 부르는 새 52
모자 위의 밀잠자리 54
카페 르땅 56
날개를 펴기 위한 주문 57
제3부
안스리움 60
플라토닉러브 62
초은당招隱堂 64
매미 66
특이점 68
라이벌 70
뉘죠? 72
타짜 73
물왕리物旺里저수지 74
노래하는 사람 76
쿠마의 무녀처럼 78
여기가 거기 아닌가? 80
모과나무와 나 - 無 82
갈참나무 성전 83
시간 여행자의 통로 84
제4부
스윙스윙 88
빙하 협곡 90
147페이지 91
데카르트의 좌표 92
정체성 찾기 94
그대를 생각해 96
어슬렁어슬렁 98
신명옥의 휴가 100
수저 102
천원짜리 기획 104
육소기다 정묘체肉少氣多 精妙體 106
밍기뉴 귀환하다 108
돌멩이와 핀 110
예술가 히아신스 111
나 없고 영원 없고 순간 있는 날 112
신명옥의 시세계 | 전소영 117
저자소개
책속에서
해저 스크린 외 2편
저는 해저에 가라앉은 배올시다. 세상을 보이는 대로밖에 볼 줄 몰랐기 때문입지요. 이곳은 화산섬인 산살바도르 옆쪽이거나 사마나 산호초 섬 뒤편일지 모릅니다. 석회질이 하얀 이끼처럼 바위를 두껍게 둘러싸고 있습니다. 삼백오십 년 깨어나지 않는 코끼리거북이가 보입니다
보는 법 익히고 있습니다. 어른거리는 물그림자와 어둠이 반복됩니다. 붉은 게가 눈을 잠망경처럼 뽑고 달아납니다. 그 뒤를 다리 잘린 문어가 기어갑니다. 바라쿠다가 날카로운 이빨로 달려듭니다. 놀란 몸짓만큼 물의 지느러미도 출렁입니다. 물결 따라 바위가 움직입니다. 코끼리거북이가 바위를 올라갑니다
제가 일으킨 소용돌이 보입니다. 공기에도 지느러미가 있는 것을 알겠습니다. 빨갛고 파란 사슴뿔산호 사이로 열대어 떼, 둥글게 말리며 모여들다 흩어지고 어디론가 몰려갑니다. 물의 지느러미를 코끼리거북이가 따라갑니다
사유의 프로펠러 돌기 시작합니다. 제가 일으킨 파장을 보았습지요. 가야 할 곳 떠오릅니다. 백상어섬 살금살금 지나, 난파선 무덤을 돌아, 캄캄한 맹그로브 숲을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빛의 지느러미로 어둠의 안쪽을 읽는, 달의 마을 찬드라푸르에 닿을 것입니다
공놀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붉은 공 하나
강아지 밥을 주던 모자 쓴 까칠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줄담배 피는 눈두덩 검은 여자가
불콰한 얼굴로 부둥켜안은 중년 남녀가
철망에 기댄 국적 다른 연인이
길거리에 나온 횟집 주인이
둑 위에 길게 정지한 채
함께 바라보는 저편
바다에 떠 있는 탱탱한 볼 하나
그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
비행기 따라가는 물새 두 마리
어선 한 척
수평선 들어 올리며 다가오는 사이
능청스런 저녁이 공을 잡아 뒷주머니에 집어넣고
바다와 방파제와 철망을 가로질러 달아나는 저편
어둠 속으로 번지는 불빛
빛과 어둠이 공을 주고받는 동안
경계가 다른 生으로
수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얼굴들
안스리움
그녀가 출가出嫁했다. 함께 살아온 침대와 책상, 쓰던 것들 그대론데, 내 안에서 환한 기운 빠져나갔다
화원 앞 지나다 잎과 꽃이 하트형인 안스리움, 꽃잎이 싱싱해서 두 팔에 안고 왔다, 낯선 곳에서도 새록새록 나오는 잎, 윤기 흐르는 잎에 비친다, 홀로 두고 온 어머니
어머니에게 받은 낙원樂園 딸에게 건넸다, 출가란 또 하나의 낙원 이루는 일
그날 어머니도 내게서 출가했다. 출가란 불문不問의 세계에서 나를 비우고 타자와 하나 되는 일
잠시 세상에 머무는 목숨들, 본래 나 없고 내 것 없으니
지금 곁에 피어나는 안스리움, 이 아름다운 순간 즐겨야 하는 것이니
두루마리처럼 말린 잎 펼치는 하트 사인, 내 곁에 있는 그녀에게, 나도 두 팔 올려 응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