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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1042758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0-10-30
책 소개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문설주에 외등이 깨어나고
장마 ----- 12
두통의 밤 ----- 13
설화雪花문자 ----- 14
확찐자의 서간 ----- 15
벽 ----- 16
벽 2 ----- 17
통의산방 ----- 18
석조보살좌상 ----- 20
기억의 실족 ----- 22
뉴욕의 화석 ----- 24
율법의 고뇌 ----- 26
섭취의 진화 ----- 28
두 얼굴 ----- 29
낡은 자전거 ----- 30
무당거미 ----- 32
제2부 남은 울음의 편린을 목에 걸고
대설경보 ----- 34
新파초열전 ----- 35
허드슨 강의 내력 ----- 36
소시론小市論 ----- 38
때죽나무꽃 ----- 39
할미꽃 실록 ----- 40
장마가 지나가다 ----- 42
포인세티아 ----- 44
논골담길의 소묘 ----- 45
폭염비 ----- 46
유월 감자 ----- 48
봄내[春川] 연가 ----- 49
봄날, 흔들리다 ----- 50
껍데기 모모 ----- 52
수국水菊 전상서 ----- 53
제3부 집어등이 잠든 밤바다의 고독
404번 버스 ----- 56
사과의 역린 ----- 57
강릉 소묘 ----- 58
오래된 우물 ----- 60
영정, 혹은 숨 쉬는 초희 ----- 62
강설개론 ----- 64
강릉페이 ----- 65
속실리 소묘 ----- 66
월아천의 달 ----- 68
베드로의 딸 ----- 70
독천獨天 ----- 71
논골담길 벽화 ----- 72
난전의 여인 ----- 74
금붕어의 비가 ----- 76
13월의 유다 ----- 78
제4부 또 하얗게 소멸되어 간다
휴대폰 ----- 82
수국 ----- 83
유기견 ----- 84
사물 A와 C ----- 86
달리의 풍경화 ----- 87
진통제, 혹은 봄밤 ----- 88
아날로그 교신 ----- 90
사물 A의 초상 ----- 91
고인돌 자판기 ----- 92
강가Ganga ----- 93
7252호 지하철 ----- 94
선택품목사양 ----- 96
블랙박스 ----- 98
욕망을 살해해요 ----- 99
코로나19 ----- 100
▨ 홍경희의 시세계 | 심은섭 ----- 102
저자소개
책속에서
두통의 밤
유통기한이 사라진 사춘기의 밤, 뒷골목 가로등이 타이레놀을 먹는 밤, 취준생이 절망하는 밤, 노숙자의 소주병이 빈 그림자를 베고 누운 밤, 허기진 길고양이의 울음이 그치지 않는 밤, 어둠에 기억이 실종되어 기도문조차 떠오르지 않는 밤, 붉은 압류딱지가 월급봉투에 달라붙는 밤, 닻을 잃어버린 폐선이 항구에서 머뭇거리는 밤, 사금파리로 살갗을 그으며 혼자 깨어있는 밤, 적막을 한입 물고 그믐달이 사라진 밤, 0시가 눈송이처럼 소멸하는 밤, 흩어진 종소리로 두통이 걸어오는 밤, 내가 지금 그림자를 반쯤 벗고 있는 밤
통의산방
통의동 효자로7길 14번지 골목길
한 평의 뜰 안에 온순한 가족들이 모여 있다
무쇠 자물통을 통과한 북서풍이
허수아비처럼 담벼락에 기대어 잠을 자는 곳
그곳 담벼락을 기어오르며 수행하는 담쟁이들,
만장동굴만큼 제 속을 비우며 살고 있다
‘순정’을 따르겠다며 터를 잡은 며느리밥풀꽃
지금은 지천명의 강을 건넌다
법문의 활자들을 음복하는 동자승 비둘기 떼들이
햇살로 운명을 짜고 있다
남동풍이 1달러로 거래되는 뜨락,
덩굴장미들은 순정소설을 읽으며
유년의 기억을 마신다
아프리카 원시림의 바람으로 집을 짓는 제비들
부리가 분주하다
동전만 한 마당에서 뿌리를 내리는 산수국
여름의 행간으로 걸어간다
통창문은 까치발로 탕자가 돌아오길
가슴을 열어두고 있다
늦은 오후 협궤열차가 개미걸음으로 지나간다
낮은 자들의 공화국, 그 가족들이 손을 흔든다
국화빵 영혼으로 살아가는 골목의 바람소리들
숨소리 한 땀 한 땀 모두 경전이다
오래된 우물
시집살이가 엄동설한일 때, 그녀가 녹슨
우물 속으로 사라졌어
생전, 예수의 손바닥에 대못을 박듯이
누군가 그녀의 가슴에 망치질을 했어
진실의 암막커튼에 가려진 생이
그믐달로 야위어 갔어
입술에 묻혀보지도 못한 아메리카노,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불고기버거,
허무의 원을 그리는 드럼세탁기였어
전깃줄에 내려앉은 흰 달빛처럼 떨었어
우울의 관절은 더욱 단단해지고
그 뼛속을 후비는 면도날의 언어들이
수런거리던 날,
부도난 수표처럼 그녀의 코스피200이 폭락했어
마흔의 꽃이 마당 끝 우물 속으로 사라졌어
우물에 부리 박고 살던 수양버드나무가
침묵했어
도시의 빌딩들이 초원의 누gnu떼처럼 몰려와
벽화 없는 고분이 된 우물,
무명의 어린 병사처럼 그녀가 사라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