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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1043274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3-01-09
책 소개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모자와 불가사리
칼 11
여름 필름 12
모자와 불가사리 14
배교 16
박제사 Q 19
기념일 22
파적 24
레고 블록의 세계 26
평면과 큐브 28
바나나 동전 30
철학자의 나팔 32
제2부 노골적인 슬픔
회귀(回歸) 36
가족 Ⅰ 38
가족 Ⅱ 40
대한미니상회 42
노골적인 슬픔 44
사용법 46
축제 48
시인(詩人) 50
커튼콜 52
블랭크 54
총성과 튜닝 56
핑크시티 58
매일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 60
제3부 커서스(Cursus)
습관의 힘 62
세수의 형식 64
수강생 66
채식주의자 Ⅰ 68
봄밤 70
말리꽃 72
떨기나무 74
자세 76
몰약의 공동체 78
면역력 80
커서스(Cursus) 82
제4부 노매드
남해 호텔 86
젬베 88
표류하는 방 90
선샤인 시티 92
백야 94
정체 96
여름이니까 98
드로잉 100
노매드 102
오늘의 식단 104
핼러윈 축제를 지나는 밤에 106
행성에서 108
▨ 김춘리의 시세계 | 남승원 110
저자소개
책속에서
회귀(回歸)
부추들이 가난한 지붕처럼 자랐다 매일 부추를 뜯던 식구들의 입은 파래졌고 옥상에 세워둔 십자가는 밤에만 붉었다 목욕탕 이층에 있는 교회는 일요일마다 김이 가득했다
너는 파란 것을 믿니?
머리칼을 부추처럼 헝클어뜨리며 우리는 일요일마다 성내고 있었다 푸른 독을 내뿜으며 집요하게 바람의 속도와 창문의 개수를 기억했고 이불을 잡아당기다 실밥이 뜯겨도 자꾸 예배당에 방을 만들었다 개종한 엄마는 아들을 위해 굿을 열었고 파란 부채를 들고 뛰면 우리도 덩달아 뛰었다
신을 쫓아가고 있었다
명절을 앞둔 목욕탕 안은 뜨거운 김이 서려 있었다 머리를 감느라 숙인 가랑이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아버지는 거품을 씻어내고 때수건만 한 창문을 만들었다 생활이 창문 크기만큼 넓어졌을 때 집으로 돌아갔다 푸른 목덜미가 하얘질 때까지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꿈속에서 자주 부추밭을 헤매었고 목욕탕 이층에는 피트니스 클럽이 들어왔다
그 해 부추는 장판처럼 누렇게 죽어 갔다
더 이상 푸른 것을 믿지 않았다
평면과 큐브
모래밭에 엎드린 자세로 볼 거야
바닷바람은 멀리서 보면 오징어 같았어
희극적이었고
해변이라는 큐브를 맞추고 말 거야
(배가 올 거야)
4x4x4 퍼즐에서
5x5x5 퍼즐로 바꾸었을 때
SNS에 거짓을 연습하던 여자와
토끼 이빨 조각을 맞추던 남자의
독백을 받아 주던 물거품
해변은 창백한 목덜미 같아
목덜미를 내어주며 맹세했었지
맹세할수록
심장이 모래 같았지
타 오르거라!
타 오르거라!
개머리 능선을 밟고
모래밭에 엎드린 자세로 타 오르거라
사슴 똥을 주우며 타 오르거라
너는 여전히 엎드린 자세로 큐브를 돌리고
(배가 올 거야)
모래 위에 시간을 적고
평면을 만져 볼 수 있을까
해변이라는
비극은 아니니까
모래라는 큐브니까
행성에서
비둘기가 앉는 순간
창문이라는 거주가 시작되었다
배워본 적 없는 오토바이는
퀵서비스의 속도로 멀어지는 행성이어서
가스와 먼지로 둘러싸이고
포장된 우리는 흔들리고
황급히 달리며 인사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기상관측소에서 파도가 밀려온다는
경고문을 행성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주꾸미 먹물같이 관측이 불가능했던 일상들
비탈은 취향의 문제이므로
풍경을 자르면 취향이 사라졌다
옥탑방은 구글 지도에 없는 풍경이어서
굴러떨어진 적이 있다
방지 턱을 보지 못해
굴러떨어진 뼈를 주우며
우리는 이동하는 행성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스키드 마크가 희미해지기 전에
전파망원경 밖으로 멀어지기 전에
행성이라는 포장에서 나를 꺼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