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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고전 > 우리나라 옛글 > 산문
· ISBN : 9788964066447
· 쪽수 : 597쪽
· 출판일 : 2011-03-04
책 소개
목차
해설 ····························21
지은이에 대해 ························51
서언(緖言) ·······················53
원감국사어록중간서(圓鑑國師語錄重刊序) ············56
조계원감국사어록서(曹溪圓鑑國師語錄序) ············60
시(詩)
1. 속세를 떠나 한적한 곳에 살다 ·················65
2. 우연히 씀 ·························66
3. 병인년(丙寅年, 1266) 여름 초에 감로사(甘露社)에 들어가서 동포(同袍)에게 보임 ··························66
4. 산에서 놀다 돌아오는 길에 삼랑루(三郞樓)를 지나면서 배 가운데서 짓다 ·····························67
5. 안렴사(按廉使) 박항(朴恒)이 밀성(密成: 밀양) 삼랑루(三郞樓)라 제(題)한 시의 운을 따라 ······················68
6. 한가로운 가운데 스스로 기뻐하면서 ···············69
7. 지원 9년 임신 3월 초에 정혜사(定慧寺)에 들어가 게(偈)를 지어 동범(同梵)에게 보임 ·························69
8. 자인화상(慈忍和尙)에게 올리는 시. 서문을 곁들임 ·········70
9. 여러 스님들[大衆]과 같이 고사리를 뜯고 돌아와 동범(同梵)에게 보임 ·71
10. 한가로운 가운데서 우연히 씀 ·················72
11. 여름날 규봉(圭峯) 인선백(印禪伯)을 생각하면서 ········73
12. 안렴사(按廉使) 박시랑(朴侍郞) 항(恒)에게 부침 ·········74
13. 가을날 일찍 조계산(曹溪山)을 출발해 계족산(溪足山)으로 돌아와서 지음 ····························75
14. 어저께 도자(道者) 혜초(惠超)가 돌아오는 편에 삼가 내려 주신 납의(衲衣) 한 벌을 받고 두려움과 감격을 참을 수 없어 삼가 거친 글귀를 지어 주실(籌室)에 바치오니 보시옵기를 바랍니다 ·············76
15. 한가한 가운데 시간을 보내면서 ················77
16. 감로장로(甘露長老)의 운을 따라 삼가 답함 ···········78
17. 산에 살면서 저물어 가는 봄을 읊음 ··············79
18. 봄을 아낌 ························80
19. 법형(法兄) 묵공(?公)이 나의 집안이 형제가 없고 고담(枯淡)하다는 것을 듣고 편지를 써서 위로하므로 농(弄)으로 단가(短歌)를 지어 답함 ··81
20. 규봉(圭峯) 인선백(印禪伯)의 운을 빌려 답함 ··········83
21. 난송선사(蘭松禪師) 인공(印公)의 운을 빌려 답함 ········84
22. 안렴(按廉) 김시어(金侍御)에게 보내는 시. 서문을 곁들임 ·····85
23. 다시 앞의 운을 사용해서 김제형(金提刑)에게 부침 ········86
24. 죄를 용서해 준 김시랑(金侍郞) 훤(?)에게 희롱으로 답함. 2수 ····87
25. 운흥법주(雲興法主) 대이(大怡)를 곡(哭)함 ··········88
26. 스스로 희롱함 ·······················91
27. 평양(平陽: 현 순천)에 부임하는 아우 수령 문개(文愷)가 주(州)를 다스리기 위해 이르렀다가 먼저 이 산중에 찾아왔다. 이날 저녁 마침 비가 내려 서로 10여 년간의 이별의 뜻을 나누느라 날이 새는 줄도 몰랐다. 그리하여 소설당(蘇雪堂)이 자유(子由)에게 준 시 가운데 인용한 위소주(韋蘇州)의 “어느 때 비바람 치는 밤에 다시 잠자리를 같이할까”라는 구를 기억하고 1절을 지어 그(문개)에게 주었다. ················91
28. 막내 동생 추원당후 선(璇)이 앞의 시에 관한 소문을 듣고 차운해 보냈으므로 다시 그 운을 따서 답함 ···················92
29. 전 동각사인(東閣舍人) 우공(于公)이 앞의 운을 따라 시를 지어 보내 주었으므로 그 운을 사용해 답함 ·················93
30. 한가로운 가운데서 우연히 씀. 2수 ···············95
31. 규봉(圭峯) 인공(印公)이 월헌(月軒) 강박사(康博士)에게 준 시의 운을 따라. 4수 ··························96
32. 나는 출가하면서부터 서울은 가지 않겠다고 맹서했다. 그러나 금년 을해년(乙亥年, 1275) 3월에 조서를 받으니 서울에 오라는 것이었다. 일이 뜻하지 않은 데서 출발한 것이라 처음부터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관가(官家)의 독촉이 심해 사양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말을 타고 길을 떠나 웅천(熊川: 공주)에 이르러 항서(抗書)를 보내 병으로 굳이 사양하고 서원(西原)에 이르렀다. 서원목백(西原牧伯) 상서(尙書) 농서공(?西公)은 나의 평생 벗이었다. 보고 기뻐하면서 주리(州吏)에게 급히 명령해 주의 화정사(華井寺)를 깨끗이 청소하고 머물도록 권했다. 그 뜻이 간절하므로 어길 수 없어서 행장을 풀고 하안거(夏安居)를 시작했다. 아! 처음 계봉을 떠날 때는 서원 화정사에서 여름을 지낼 줄을 생각도 못했으나 이제 그렇게 되었으니, 범인(凡人)의 한 번 행하고 한 번 그치는 것이 자재(自裁)는 불가능하고 반드시 그렇게 시키는 무엇이 있는 것인가? 맹자가 “떠나고 머무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 이제 더욱 믿을 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1절(一絶)을 지어 천의(天意)에 답하려는 것이다. ········97
33. 원흥사(元興寺) 임정(林亭)에서 놀면서 ············99
34. 왕암사(王巖寺)에서 자면서 그 경지의 청유(淸幽)함을 사랑해 졸시(拙詩)를 씀 ··························100
35. 서원목백(西原牧伯)인 상서(尙書) 이공(李公)이 포천(布川)에 있는 자씨원(慈氏院)까지 전송했는데 이별할 때 슬픔을 견디지 못해 억지로 어설픈 말로 시를 지어 좌우에 바치다. 2수 ··············101
36. 서원(西原) 이상서(李尙書) 오(敖)에게 보냄 ··········102
37. 지원(至元) 13년(1276) 12월 요청을 받고 다시 서원에 도착해 현암난야(玄巖蘭若)에 우거하면서, 목백상서 이공에게 드림 ········102
38. 밤에 많은 눈이 내렸으나 아무도 몰랐다. 새벽에 일어나 성 가운데를 바라보면서 짓다 ························103
39. 전 서원(西原) 반자(半刺) 이직강(李直講) 행잉(行?)에게 보냄 ···103
40. 노교서(盧校書)의 운을 따라 답함 ··············104
41. 천안부(天安府)의 군수 한낭중(韓郎中) 규(珪)에게 보냄 ·····104
42. 낙화를 애석히 여겨 읊음 ··················105
43. 정축년(1277) 3월 13일 진각사(眞覺寺)에서 놀면서 ·······106
44. 현암사(玄巖寺)의 자리를 파(罷)하고 되돌아오려고 한 수 남김 ··107
45. 서원(西原) 지방의 도속(道俗)들이 성을 나와 울면서 전송하므로 느낌이 있어 시를 짓다 ······················108
46. 서원(西原)을 떠나 회덕(懷德)에 이르렀다가 서원성 밖의 이별을 기억하고 시를 지어 목백 영각(鈴閣)으로 보냄 ·············109
47. 회덕(懷德) 여관에서 비를 만나 ···············109
48. (1277) 3월 24일 천호산(天護山) 개태사(開泰寺)에서 자면서. 충남 연산군 ····························110
49. 우연히 진(晉)나라 사람 곽문(郭文)의 전기를 읽다가 그가 이 속세를 떠나 산수 사이에 정을 붙임을 사랑했으므로 내 견해를 서술해 28운을 짓다 110
50. 한가로운 가운데 우연히 씀 ·················114
51. 무인년(戊寅年, 1278) 11월 6일 대중을 거느리고 산으로 갔다가 다음 날 장경(藏經)을 지고 되돌아와 게를 짓다 ·············115
52. 조계산(曹溪山)의 누교(樓橋)를 지나다 원주(院主) 신공(信公)이 누각(樓閣)을 수리하는 것을 보고 감탄해 시를 지어 그를 칭찬함 ·····115
53. 정혜사 판상(板上)의 운을 따라. 순천군 북쪽 계족산에 있음 ······116
54. 채방사(採訪使) 김시랑(金侍郞) 훤(?)의 운을 따라 답함 ·····118
55. 벽자운(碧字韻)에 답한 시를 삼장장실(三藏丈室)에 부침 ·····118
56. 절구(絶句) ·······················123
57. 다시 앞의 운을 따라 채방사 김시랑 훤에게 답함 ·········124
58. 우중(雨中)에 혼자 앉아 ··················124
59. 한가로운 가운데서 우연히 씀. 2수 ··············125
60. 김녕(金寧) 최태수(崔太守) 알(謁)이 사임하려고 서울에 갔더니 임금이 고을 사람들의 바람이라면서 주치(州治)로 되돌아가도록 칙령을 내렸다는 소문을 듣고, 시를 지어 그에게 부침 ···············126
61. 채방사(採訪使) 김시랑(金侍郞)의 운을 따라 답함 ·······127
62. 규봉(圭峯) 인선백(印禪伯)을 생각하면서 ···········128
63. 굉소선인(宏紹禪人)이 산중을 방문해 준 시에 답함 ·······129
64. 운흥장실(雲興丈室)에 드림 ················130
65. 백운암(白雲菴)의 검선객(儉禪客)이 가타(伽陀) 3수를 보내 주었는데, 대개 근일(近日)에 고요한 가운데 얻은 바를 쓴 것으로 읽고 감탄했으므로 차운해서 답함. 4수 ·····················130
66. 이별할 때 김찰방(金察訪)의 운을 따라 답함 ··········132
67. 상국(相國) 농서공(?西公) 존비(尊庇)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한 사람은 숙위(宿衛)에 뽑혀 20세에 조정에 들어갔고 또 한 사람은 조계의 공문(空門: 불교)에 들어가 10세에 승려가 되었다. 상국(相國)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 시를 지어 보내 주었다. 나는 삼가 두세 번 읽어 보고 감탄해 본래 운을 따라 시 두 편을 지어 각하(閣下)에게 드림 ········133
68. 산속 봄날 ························137
69. 더위 속에서 사람들에게 보임 ················137
70. 안렴사(按廉使) 반공(潘公)이 산에 이르러 재(齋)를 설치하고자 죽청(竹靑)까지 왔으나 비가 많이 내려 냇물이 불어나 건너지 못하고 다시 평양(平陽)으로 향했다. 나는 그 소문을 듣고 안쓰럽게 생각해 시를 지어 그에게 부침 ···························137
71. 운을 따라 삼장장실(三藏丈室)에 드림 ············138
72. 삼장공(三藏公)이 지팡이를 옮겨 동쪽으로 간다는 소문을 듣고 거친 말로 삼절(三絶)을 지어 드림 ··················140
73. 안렴(按廉) 반공(潘公)이 다시 산속을 방문했으므로 산어(山語)를 지어 드림 ··························141
74. 날씨 갬을 기뻐함 ·····················142
75. 삼가 농서상국(?西相國) 존비(尊庇)가 아름다운 시 두 수와 노래 한 수 보내 준 것을 받았다. 하나는 동정군(東征軍)의 위용이 굳셈을 서술했고 또 하나는 군수품의 조달이 어려움을 서술했다. 시를 받들어 못남을 잊고 삼가 원래 운을 따라 억지로 산어(山語)로 지어 각하에게 드려 기분을 돋울까 함이다. 인(引) 풍진세상 길이 막혀 소식 드물고, 각하의 안부 몰라 한심스럽더니, 다행히 긴 강이 있어 두 곳을 통해 즐거이 두 잉어가 새로 편지를 보내 주나니 ·······142
76. 즉석에서 시를 지음 ····················144
77. 게송(偈頌)을 지어 여러 승려에게 보임 ············145
78. 산어(山語)로 회포를 서술해 단양상국(丹陽相國) 각하에게 드림 ··145
79. 영남 지방의 어려운 모습. 24운. 庚辰년(1280년 :충렬왕 6년) 동정(東征)의 전함을 만들 때 지음 ························147
80. 도통(都統) 홍상국(洪相國) 자번(子藩) 막하(幕下)께 드림 ·····149
81. 안집(安集) 권시어(權侍御) 의(宜)에게 보냄 ··········150
82. 9월 9일에 꽃을 대하고 느낌이 있어서 ·············151
83. 섣달 20일 하루 종일 강풍이 불고 눈이 간간이 휘날렸으므로 문을 닫고 들어앉아 스스로 즐거운 회포를 두 수의 시로 쓰다 ·········153
84. 초봄 열선백(悅禪伯)에게 드림 ···············154
85. 일본 정벌을 칭송함 ····················154
86. 도순문(都巡問) 이자추 행헌(李紫樞行軒)의 방문을 맞으면서 드림. 존비 ····························158
87. 보림사(寶林寺) 입공(立公)이 서울 간다는 소식을 듣고 시를 지어 보냄 ···························158
88. 병중에 홍상국(洪相國)이 깃발을 돌려 서울로 돌아간다는 것을 듣고 그리움에 북받쳐 억지로 악어(惡語)를 지어 행막(行幕)에 드림 ·····159
89. 사자수(師子岫) 공이 석장(錫杖)을 강동 백운암(白雲庵)으로 옮긴다는 것을 듣고 감탄해 지음 ····················159
90. 농민을 불쌍히 여겨 흑양(黑羊, 1283년) 4월 1일 빗속에서 지음 ··160
91. 한평양(韓平陽) 사기(謝奇)가 최선사(崔禪師)를 곡(哭)한 운을 따라 답함 ····························162
92. 재(齋)가 끝나고 우연히 희어(戱語) 한 편을 지어 인선백(印禪伯)에게 보임 ····························162
93. 우연히 씀. 1수 ······················166
94. 만연사(萬淵社)의 선로(禪老)에게 두 수의 시를 건네줌 ·····166
95. 김시랑 훤의 운을 따라 답함 ·················167
96. 선석암(禪石庵)에 우거하면서 대나무를 심어 놓고 봄 ······169
97. 암자 주인이 산을 내려간 후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므로 구를 지어 부침 ····························170
98. 참선하는 사이에 시를 지어 동지에게 보여 줌 ··········170
99. 가을날에 우연히 씀 ····················171
100. 졸다 일어남 ······················171
101. 오산(鼇山) 꼭대기에 좌선암(坐禪巖)과 행도석(行道石)이 있는데, 선각(先覺)·진각(眞覺) 두 국로(國老)가 편안히 앉아 수도하던 자취다. 근래 사내(社內)의 명승 노공(盧公)이 좌선암 아래에 자리를 정하고 잡목과 잡초를 베어 내고 절을 지어 살았는데, 그 경치가 뛰어남은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름을 회당화상(晦堂和尙)에게 청하니, 화상은 선석(禪石)이라 이름 짓고 게송을 지었다. 노공이 나에게 속초(續貂)를 권함이 간절하므로 사양할 수가 없어서 억지로 무사(蕪辭)를 엮어 법제(法製)를 우러러 받들어 노공의 장실(丈室)에게 드림 ···········172
102. 눈 속 추위에 괴로워하는 시를 지어 평양(平陽) 한사기(韓謝奇)에게 줌 174
103. 감정을 기록함 ······················174
104. 근래 벼슬을 그만둔 시중 하동영(河東令) 하(瑕)가 화전(花?) 한 폭(幅)을 보내면서 산어(山語)를 요구하므로 억지로 4절구를 지어 각하에게 드림 ···························175
105. 이사관(李史?) 원(源)이 임금을 호종(扈從)하고 조정에 되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서 시를 지어 부침 ··············177
106. 이상국(李相國)이 가산(柯山) 섭무실(葉茂實)이 만든 좋은 먹 한 개를 보내 준 데 대해 감사함 ···················178
107. 우러러 법제(法製)를 받들어 자인실(慈忍室)에 삼가 드림 ····180
108. 지병마(知兵馬) 상서 김석(金碩)에게 부침. 공은 그때 탐라에서 적(賊)을 치고 있었음 ··························181
109. 5월 15일 밤에 동루에 오르니 검은 구름이 전부 걷히고 달빛이 낮과 같았다. 소나무 소리 물소리가 서로 어울려 일어났다. 오랫동안 앉았으나 피곤함도 잊고 생각이 산뜻하고 산중의 즐거움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한평양(韓平陽)과 같이 있었으면 했으나 불가하므로 시로써 기록함 ·····182
110. 게(偈)를 지어 선석암(禪石庵) 선로(禪老)에게 보냄 ······183
111. 만연선로(萬淵禪老)의 운을 따라 받들어 답함. 2수 ·······184
112. 연곡선사(燕谷禪師)의 운을 따라 답함 ············185
113. 다시 운을 따라 연곡선사(燕谷禪師)에게 답함 ·········186
114. 능가산(楞伽山)에 놀다. 전북 부안군 소래사 ···········187
115. 김시랑(金侍郞) 훤(?)의 운을 따라 답함 ···········189
116. 한소향(韓小鄕)에게 보낸 3수. 공은 연도(燕都)에 있었음 ······190
117. 아픈 다리를 스스로 희롱함 ·················191
118. 아침 설법을 마친 후에 목을 움츠리고 단정히 앉았으나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으므로 이월고한시(二月苦寒詩)를 짓다 ··········192
119. 다시 규봉(圭峯) 인공(印公)이 월헌(月軒) 강박사(康博士)에게 준 시의 운을 따라서 ······················193
120. 한가로이 살면서 ·····················194
121. 우연히 씀 ·······················195
122. 나한율림(羅漢栗林) 항선객(恒禪客)에게 부침 ········195
123. 한사군(韓使君)의 운을 따라 부침 ··············196
124. 초봄에 한사군(韓使君)에게 부침 ··············197
125. 홍상국(洪相國) 막하(幕下)의 운을 따라 드림. 6수 ·······197
126. 김소경(金小卿) 훤(?)이 양주수(襄州守)로 좌천(左遷)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절구를 지어 부침 ··················199
127. 다시 앞의 운을 사용해 김양주(金襄州)가 새로 사업(司業)에 임명되고 부름을 받아 대궐에 다다름을 축하해 부침 ···········200
128. 김시랑(金侍郞)의 <송선객(松禪客)을 보냄>이라는 시를 보고 운을 따라 지어 부침 ······················201
129. 고양(高陽) 가는 길에 제호조(提壺鳥) 소식을 듣고 짓다. 그 때 금주령(禁酒令)이 있었음 ·······················201
130. 주상 폐하가 천조(天朝)를 뵙고 특별한 보살핌을 받아 편안히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로 기쁘고 즐거워 거꾸러지고 넘어지면서 삼가 성덕송(盛德頌) 18운을 지어 왕정의 무도회를 당해 하례함 ········202
131. 새 붓을 시험하기 위해 손 가는 대로 한 게송을 써서 시자(侍者)에게 주다 ···························205
132. 가을 산 ························205
133. 병중에 심정을 말함 ····················206
134. 겨울 자리를 시주한 광림선로(廣林禪老)에게 감사함 ······207
135. 우연히 씀 ·······················208
136. 원옥상인(圓玉上人)이 산중에 이르러 중국에 간다고 하기에 그 말을 기록해 한 편의 시를 지어 전별함 ················208
137. 우서(偶書)로 여러 선자(禪者)에게 묻다 ···········211
138. 어떤 선자(禪者)가 있어 답함 ················211
139. 스스로에게 줌. 동지 후에 씀 ·················212
140. 고산대선(孤山大禪)이 방문했으므로 시를 지어 보임 ······212
141. 한거 ·························213
142. 만연공(萬淵公)의 시에 답함. 서문을 곁들임 ··········213
143. 소(紹) 사제(師弟)의 방문을 사례함. 영소(靈紹) ·········216
144. 영소(靈紹)를 보낸 후 다시 앞의 운을 따라 보냄 ········216
145. 야우송(野牛頌)을 지어 뜻이 같은 사람들에게 보임 ·······217
146. 신사(信士) 박공(朴公)이 세운 방광촌(放光村)의 원소난야(圓炤蘭若)를 제(題)함 ······················218
147. 한시랑(韓侍郞) 사기(謝奇)에게 시를 부침. 서문을 곁들임 ······219
148. 12월 11일 눈보라 휘날리는데 김승(金昇)을 보내다. 공은 그때 탈상(脫喪)하고 형제와 이별했다 ···················220
149. 12월 18일 눈이 조금 내리는 가운데 ·············221
150. 새로이 월남(月南) 인공(印公)에게 부침. 공은 규봉사(圭峯寺) 조월암(祖月庵)에서 보월산(寶月山)의 월남사(月南寺)로 출세(出世)했음 ·221
151. 평양(平陽)의 한태수(韓太守) 단(旦)에게 부침 ········222
152. 지원(至元) 21년(1284, 충렬왕 10년) 5월 하순 진변원수(鎭邊元帥) 김상국(金相國)이 주정(周鼎)이 와서 변수(邊戍)를 순찰한다는 소문을 듣고 시 두 수를 지어 바침 ···················222
153. 또 김원수(金元帥: 김주정)에게 올리는 시. 서문 곁들임 ······224
154. 원수 상국(相國)이 특별히 속관(屬官)을 보내 방문하지 못한 까닭을 알리기에 다시 앞의 운을 사용해 시를 지어 드림 ··········225
155. 우연히 씀 ·······················226
156. 달밤에 동쪽 망루에 오름 ·················227
157. 사람들에게 보임 ·····················227
158. 달을 읊음. 한 자에서 일곱 자까지 ················228
159. 금장대선사(金藏大禪師)가 새 차를 보내 줌을 감사함 ······230
160. 소사제(紹師弟)의 운을 따라 답함 ··············230
161. 흠산(欽山)이 “노승은 평생에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매일매일 그 모양이다”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사랑해 게송을 지어 기록한다 ··231
162. 사람들에게 보임 ·····················232
163. 팔이 짧음을 노래하다 이어(俚語)를 써서 지음 ···········233
164. 졸어로 회포를 펴 표형선로(表兄禪老)에게 보임 ········234
165. 수재(睡齋) 홍상공(洪相公)에게 보내는 시. 서문을 곁들임 ·····235
166. 이공(李公) 행검(行儉)에게 답함 ··············240
167. 남원의 조태수(趙太守)가 방문하면서 시를 주기에 그 운을 따라 사례함. …정혜사에서 ·······················240
168. 청암(靑巖)에서 계봉으로 돌아가려 하면서 지음 ········242
169. 정을 읊음 ·······················242
170. 운을 따라 염상국(廉相國) 에게 답함. 승익(承益)에게 2수 ·····243
171. 한시랑(韓侍郞)이 내가 조계(曹溪)의 자리를 계승했다는 것을 듣고 시를 지어 하례하므로 운을 따라 답함 ··············244
172. 죽당(竹堂) 이중사(李中舍) 에게 답함. 혼混) 2수 ········245
173. 서울 가는 장륙선사(丈六禪師) 진공(璡公)을 전송하면서 ····246
174. 만연(萬淵) 신장로(新長老) 묵공(?公)을 전송하면서 ·····246
175. 운흥(雲興) 신장로(新長老) 열공(悅公)을 전송하면서 ·····247
176. 계봉장로(鷄峯長老) 우공(友公)에게 답함 ··········248
177. 산에 살다 2수 ······················249
178. 장난삼아 씀 ······················250
179. 조백론(棗栢論)을 설명하던 차에 게송을 지어 동범(同梵) 제덕(諸德)에게 보임 ························251
180. 조백론(棗栢論)의 강(講)을 마치던 날 계봉에서 장구(長句) 4운을 주므로 차운해 답함 ······················252
181. 계봉(鷄峯)의 우공(友公)이 절을 떠나 진원(珍原)의 취봉난야(鷲峯蘭若)에 옮겨 살면서 시를 보내 주기에 운을 따라 그에게 답함 ···253
182. 더위의 고통스러움을 읊음 3수 ···············254
183. 한가한 가운데 이것저것 읊다 6수 ··············256
184. 도안장로(道安長老)에게 부침 ···············258
185. 평양(平陽)의 신태수(新太守) 이공(李公)에게 보냄 세기(世祺) ··259
186. 옛날을 생각해 두 수를 지어 계봉장로(鷄峯長老)에게 보냄 ····260
187. 조계산의 방장 동쪽 담 아래 산다(山茶) 한 그루가 있었다. 무자년(戊子年, 1288) 봄에 오래도록 꽃이 없었으나 4∼5월 사이에 비로소 활짝 피었다. 괴이하게도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시를 지어 기록함 ·······261
188. 선국사(先國師)가 원소암(圓炤庵)에 못을 파고 연꽃을 심으면서 지은 시에 받들어 답함 ·····················262
189. 산에 살다 ·······················263
190. 가을날 진락대(眞樂臺)에 오름. 진락대는 동쪽 방장(方丈) 뒤에 있음 ··264
191. 원소암(圓炤庵) 벽 위의 옛 시제를 보고 기록함 ········264
192. 자서 ·························265
193. 어버이를 뵈러 서울 가는 연숙선자(淵淑禪者)를 보내면서 ····266
194. 원각소(圓覺疏)를 강설(講說)하던 차에 짓다 ·········266
195. 새벽에 일어나 새소리를 듣고서 짓다 ·············267
196. 신묘년(辛卯年, 1291) 초여름에 난을 피해 불대사(佛臺寺)에 이르러 선국사(先國師)가 남긴 보게(寶偈)를 보고 감격을 참을 수 없어 삼가 재배하고 답함 ························267
197. 밤에 앉아서. 2수 ·····················268
198. 사군(使君) 윤해(尹諧)가 산중을 방문해 머물도록 했으나 하루도 자지 않고 갔으므로 보낸 뒤 시를 지어 부침 ·············269
199. 돌아오기를 재촉하는 말을 진행(眞行)·진경(眞?) 두 소사(小師)에게 보냄 ·························270
200. 소사(小師) 심선(心璇)이 취봉에서 되돌아오면서 취봉노인이 준 고조시(古調詩) 한 편을 갖고 와 보여주므로 읽고 감탄했다. 병중에도 억지로 그 운을 따라 노인 좌하에게 부침 ···············270
201. 취봉선로(鷲峯禪老)가 방문해 시 세 수를 주므로 운을 따라 답함 ·273
202. 한가한 가운데 회포를 읊음 ·················274
203. 네 명의 성인을 찬양하다 ·················274
204. 가을비 오는 원소탑원(圓炤塔院)에서 ············276
205. 감로장로(甘露長老)에게 답함 ···············277
206. 시자(侍者)가 게송을 청하므로 써서 주다 ···········277
207. 빗속에 졸다가 일어남 ···················278
208. 우연히 읊음 ······················278
209. 저무는 봄에 즉사(卽事) ··················279
210. 봄을 아쉬워하며 읊음 ···················279
211. 한가한 가운데 우연히 씀 ·················280
212. 큰 소나무. 설두사자봉(雪豆師子峯) 시를 본받아서 ··········281
213. 일찍이 옛 시를 본떠서 지은 것이 있으므로 다시 기록함 ·····281
214. 사람을 경계함. 2수 ····················282
215. 내가 평소에 풍악산(楓嶽山)의 뛰어난 경치를 듣고 목을 늘여 동쪽을 바라본 지 오래였다. 근래 사람들과 같이 갈 약속이 있었으나 불행히도 어느 날 저녁 실각해서 발을 다쳐 한 걸음도 걸을 수가 없어서 동쪽으로 놀러 갈 계획이 아득하게 되었다. 이것이 여러 생의 업장이 깊고 죄가 많아서 그렇게 된 것인가? 깊은 회한과 자책이 있어 한 편을 지어 스스로 위로함. 정혜사에서 지음 ··························283
216. 상국(相國) 농서공(?西公)이 중국의 중사(中使)와 같이 영남 지방의 동정함(東征艦)을 감독하러 왔다가 밤중에 몸소 산속을 방문했으므로 그 은혜 너무도 감격스러워 악시(惡詩) 한 편을 지어 행막(行幕)에 부침 정혜사에 머물 때 지음 ·······················285
217. 사자수(師子岫) 공(公)이 조계(曹溪)에서 회강암(檜岡庵)으로 향하던 길에 내가 머물러 있던 곳을 방문하고 2일간 미을장(味乙莊)에 머물러 자면서 게송을 지어 부쳤다. 그 운을 따라 답함 정혜사에서 ······288
218. 우연히 2수를 씀 여섯 글자로 말함 ···············289
219. 둔재(鈍才) 김훤(金?)에게 희롱으로 답함. 2수 조계에 머물면서 지음 ·289
220. 삼가 보내 준 운을 따라 수재(睡齋) 홍상공(洪相公) 좌우(座右)에 드림 ···························290
221. 운을 따라 소경(小卿) 한사기(韓謝奇)가 연도(燕都)에 있으면서 보내 준 시에 답함 ·······················291
222. 평양(平陽)에 새로 부임한 수(守)가 시랑(侍郞)으로 있으면서부터 정치의 교화를 폈다는 것을 알고 지어 보냄 ·············292
223. 다시 앞의 운을 사용해 한국박(韓國博) 에게 보냄 사기(謝奇) ···292
224. 별동(別洞)에 놀면서 계족봉에 있을 때 지음 ···········293
225. 계봉(鷄峯)의 고통 정혜사에 있으면서 희롱으로 지음 ·········294
226. 병중에 혼자 앉아 회포를 서술함 ··············297
227. 우연히 설당(雪堂)의 운을 써서 인(印)·묵(?) 두 선인에게 보이다 이하 3수는 조계산에 있으면서 지음 ··················298
228. 앞의 운을 써서 희우(喜雨)에 답함 ·············299
229. 앞의 운을 써서 인선백(印禪伯)에게 답함 ···········300
230. 앞의 운을 써서 암자의 즐거움을 씀 ·············301
231. 앞의 운을 써서 인선백(印禪伯)에게 답함 ··········302
232. 삼현(三賢)을 애도하는 시 서문을 곁들임 ············304
233. 새로 부임한 승선(承宣) 이공(李公)혼(混)을 축하해 부침. 3수 공은 선열(禪悅)에 조예가 깊었음 ·····················306
234. 산속의 즐거움 처음 출가해 백련암(白蓮庵)에 있을 때 지음 ·······307
235. 다보사(多寶寺)에서 읊음 전남 해남(海南) 금강산(金剛山)에 있음 ····309
236. 흥룡사(興龍寺)에서 읊음 전남 나주군 금강진(錦江津) 북쪽에 있음 ···309
237. 최이(崔怡)가 보낸 다향에 감사하며 최이가 순천지주사가 되어 편지와 차와 능엄경을 보냈다. 사자가 돌아가면서 답장을 요청했다. 사(師)는 “나는 이미 속세를 떠났으니 편지 왕복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러나 사자가 굳이 권하므로 시를 써서 주었다 ···························310
238. 집의 아우 문개(文凱)가 벼슬에 나아감을 축하함 원개(元凱)의 아우 문개가 장원급제 하여 평양(平陽)군수가 되었으므로 원개가 시를 짓다 ·········311
239. 금강진(錦江津)에서 읊음 ·················312
240. 서울에 이르다 ······················312
제문(祭文)
1. 충경왕사 제문(?鏡王師祭文) 사주를 대신해 짓다 ·········317
2. 혜소국사 제문(慧炤國師祭文) ················320
3. 박량 최선사 제문(泊良崔禪師祭文) ··············322
4. 이오 상서 제문(李敖尙書祭文) ···············324
소(疏)
1. 단본대장경찬소(丹本大藏經讚疏) 원오국사행(圓悟國師行) ······329
2. 감로입원축법수소(甘露入院祝法壽疏) ············332
3. 정혜입원축법수소(定慧入院祝法壽疏) ············336
4. 법수재소(法壽齋疏) 위원오국사행(爲圓悟國師行) ··········338
5. 대원황제축수재소(大元皇帝祝壽齋疏) 사사복토전대본사작(謝賜復土田代本社作) ····························339
6. 우(又) 본사행(本社行) ····················341
7. 우(又) ·························343
8. 우(又) 국기조시랑행(國碁曹侍郞行) ················344
9. 축수소(祝壽疏) ······················346
10. 우(又) ·························348
11. 우(又) ·························349
12. 우(又) ·························350
13. 축성소(祝聖疏) 남행시본사작(南行時本社作) ···········351
14. 우(又) ·························353
15. 우(又) ·························355
16. 우(又) ·························356
17. 우(又) 와룡입원영선사행(臥龍入院英禪師行) ············358
18. 우(又) 대가남행시(大駕南行時) ·················359
19. 우(又) ·························361
20. 우(又)) ·························362
21. 우(又) 재청주행(在淸州行) ··················363
22. 우(又) 용지선사참일행(龍池禪師?日行) ··············365
23. 우(又) 본사행(本社行) ····················366
24. 우(又) 노안부행(盧按部行) ··················368
25. 우(又) 연곡인선사행(?谷?禪師行) ···············369
26. 우(又) 본사행(本社行) ····················371
27. 우(又) 정단(正旦) ·····················372
28. 대가환국축수소(大駕還國祝壽疏) ··············373
29. 미타재소(彌陀齋疏) 이오상서행(李敖尙書行) ···········375
30. 도원수김시중축수소(都元帥金侍中祝壽疏) ··········377
31. 천충경왕사소(薦?鏡王師疏) 대연지사주작(代淵之社主作) ······379
32. 충경왕사소상재소(?鏡王師小祥齋疏) 원오국사행(圓悟國師行) ···380
33. 천최사주소(薦崔社主疏) ·················381
34. 천박량최선사소(薦泊良崔禪師疏) ··············382
35. 천망우이오상서소(薦亡友李敖尙書疏) ············384
36. 사사어제서족축성소(謝賜御製書簇祝聖疏) 본사행(本社行) ····386
37. 축영수소(祝令壽疏) 감로입원행(甘露入院行) ···········387
38. 은문이상허축수소(恩門二相許祝壽疏) 선종선별감김승행(禪宗選別監金昇行) ····························389
39. 청상당소(請上堂疏) 승평수행(昇平守行) ············390
40. 축성동안거기시소(祝聖冬安居起始疏) 한사기행(韓謝奇行) ·····391
41. 우(又) ·························393
42. 대원황제절일재소(大元皇帝節日齋疏) ············394
43. 정혜입원축성하안거기시소(定慧入院祝聖夏安居起始疏) ····395
44. 하신등보위축성소(賀新登寶位祝聖疏) ············397
45. 우(又)(하신등보위축성소) ·················400
46. 축대가소재인왕천수지론사종법석소(祝大駕消災仁王千手智論四種法席疏) ··························402
표(表)
1. 상대원황제표(上大元皇帝表) 조계산수선사복전표 대본사작 ······407
2. 상대원황제사사복토전표(上大元皇帝謝賜復土田表) 상동 ·····409
3. 우(又)(상대원황제사사복토전표) 상동 ·············411
4. 하신등보위표(賀新登寶位表) 본사 ··············413
5. 하대가환조표(賀大駕還朝表) ················415
서(書)
1. 재청주현암사기충청도지휘사곽상서서(在靑州玄巖寺寄忠淸道指揮使郭尙書書) ························419
2. 기진정통오대선서(寄眞靜通奧大禪書) ············422
3. 기대조요동로안찰부사홍공혁서(寄大朝遼東路按察副使洪公革書) 426
4. 답선월서(答禪月書) 연지(衍之) ················428
5. 답김소감윤부서(答金少監允富書) ··············430
6. 답정판추가신서(答鄭判樞可臣書) ··············431
원문(願文)
1. 감로사 기사년 동안거 원문(甘露社己巳年冬安居願文) ······435
2. 규봉암 갑술년 동안거 원문(圭峯庵甲戌年冬安居願文) ······438
3. 조사 예참 겸 발원문(祖師禮懺兼發願文) ···········440
발(跋)
1. 발문(跋文) ························445
2. 발(跋) ··························446
3. 원감록인사발문(圓鑑錄印寫跋文) ··············447
부록(附錄)
1. 원감국사비명 원본(圓鑑國師碑銘原本) ············453
2. 조계산제6세증시원감국사비명 병서(曹溪山第六世贈諡圓鑑國師碑銘 幷序) ··························460
원문(原文) ························465
찾아보기 ··························565
옮긴이에 대해 ························597
책속에서
밤낮으로 벌목해
전함 만들다 힘은 다했고,
척지(尺地)도 개간하지 못했으니
백성은 무엇으로 연명하랴
가구마다 묵은 양식 없고
태반은 벌써 굶어서 우노라
하물며 다시 농업을 잃었으니
당연히 다 죽음만 보겠네
슬프다! 나란 무엇 하는 사람인가?
눈물만 공연히 흘러내리네
-<농민을 불쌍히 여겨 1283년 4월 1일 빗속에서 지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