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예배/기도/묵상(QT)
· ISBN : 9788964476307
· 쪽수 : 154쪽
· 출판일 : 2020-11-18
책 소개
목차
먼저 읽는 글 1 나무와 숲 그리고 생태 시대
먼저 읽는 글 2 생태적 회개와 전환의 길
대림 1주
주일 묵상 하나님과 창조 세계(롬 11:36, 엡 4:6, 고전 15:28)
월요일 참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요 15:1-5)
화요일 새로 봄(잠 3:18)
수요일 ‘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롬 1:19-20)
목요일 숨어계신 하나님이 만유의 주재이시다(단 4:10-12)
금요일 볼품없는 쥐똥나무조차도(사 53:2)
토요일 뿌리를 내리고(골 2:6-7)
대림 2주
주일 묵상 예수 그리스도와 창조 세계(골 3:11, 1:17, 요 1:2-3)
월요일 나를 지탱하는 생명의 근원(롬 11:17-18)
화요일 십자가(갈 3:13)
수요일 쉼과 숨을 주는 은혜(창 18:1-2)
목요일 떨기나무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출 3:2-5)
금요일 자기 나눔(눅 19:1-4)
토요일 하나님 손길에 감촉된 사람(시 1:1-3)
대림 3주
주일 묵상 성령님과 창조 세계(창 1:2, 시 33:6, 104:30, 욥 26:13, 지혜 1:7)
월요일 종려나무와 백향목처럼(시 92:12-15)
화요일 살아있음의 생명력(렘 17:7-8)
수요일 잎새가 살아있으니, 여기, 인간도 살 수 있겠구나!(창 8:11)
목요일 샘 곁의 무성한 가지(창세기 49:22)
금요일 삼위일체 하나님의 팀플레이(사 60:13)
토요일 생명이 희망이다(욥 14:7-9)
대림 4주
주일 묵상 활동(나무 산책하기) 시로미의 선택
월요일 지구, 온 생명이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집(시 52:8-9)
화요일 의의 나무로 오신 예수님(사 61:3)
수요일 비자나무 같은 예수님(호세아 14:5-7)
목요일 더 높이, 더 깊이(왕상 16:31-34)
금요일 그들이 맺는 열매(마 7:16-18)
토요일 끝나지 않는 유혹(창 2:7-9)
성탄 후 1주
주일 묵상 활동(우리 동네 나무 지도 만들기)
월요일 모두가 더불어 사는 생명의 강(겔 47:12)
화요일 나무 속에 깃든 하나님의 현존(겔 17:22-24)
수요일 치유와 회복을 위한 내려놓기(계 22:1-2)
목요일 (나만의 정원[숲] 디자인 활동) 교회 숲으로 세상을 잇다
책속에서
언젠가 이런 글을 본 게 생각난다. ‘무엇이 없다는 것과 있다는 것 중 어느 것이 증명하기 쉬울까?’ 당연히 있다는 쪽이다.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지구의 모든 곳, 지구의 전 역사를 다 확인하고서야 가능하지만,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작은 것 하나, 증거가 조금만 있어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신이 어디에 있느냐고 항변하지만, 하나님이 계신 성경 속 나무로 느끼는 하나님의 현존 증거는 많아도 너무나 많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이고,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다고 한다. 특별히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누구도 핑계할 수 없다고 한다. 21세기 들어 산림청에서는 새천년 밀레니엄나무로 느티나무를 선정했다. 이유는 오래된 나무가 많고, 동네마다 가장 좋은 자리에 자리할 만큼 사랑받기 때문이다. 느티나무는 평균 500~600년은 보통이고 길게는 천년 목도 있다. 100년도 못 사는 사람 앞에 느티나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그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비바람과 긴 겨울을 견디며 살아왔을까. 아마도 자신 안에 담아주신 하나님의 은총과 생명을 노래하며 감사하지 않을까 그리고 짧은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은혜 안에 살라고 하리라.
느티나무는 그 오랜 시간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세대와 세대를 보았겠지. 3~4대가 함께 어울리도록 기꺼이 놀이터요, 쉼터요, 마을 사람들 화합의 장으로 나를 내놓듯, 세상을 그렇게 지으시고 돌보시며 희생하신 나무 중의 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로 오라고 할 것이다.
대림 1주 화요일 _ <새로 봄>(잠 3:18) 중에서
단신이었던 삭개오가 예수를 보기 위해서는 많은 인파를 뚫고 들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버거웠고, 삭개오를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유대인들이 손가락질하는 직업을 가진 탓이다. 식민지 백성들이 제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그런 사람들에게마저 유배당한 사람이었다. 이중으로 유배당한 삭개오는 예수를 보고 싶은 간절한 갈망으로 예수가 지나가는 길 근처의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간다.
성경 시대의 돌무화과나무는 사람을 배치해 돌볼 정도로(대상 27:28) 귀한 나무였다. 궁전과 성전 내부 장식을 하는 향백나무에 비해 가벼워 목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고대에는 열매도 많이 먹었다고 한다. 모양이나 맛이 무화과와 비슷하나 크기가 작고 당도가 낮아 돌무화과라 불렸다. 그리고 열매가 익기 전에 일일
이 구멍을 내주지 않으면 열매들이 떨어져 관리가 어려웠다. 돌무화과나무는 10~13m 정도로 크게 자라는 나무였지만, 나무밑에 쪽에서부터 가지가 나 있어서 키 작은 사람들도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대림 2주 금요일 _ <자기 나눔>(눅 19:1-4) 중에서
재난과 고통의 대명사 욥. 그는 하나님께 ‘의롭다’라고 여김을 받았지만 한 날에 들이닥친 재난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의 삶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던 3중 울타리 곧 재산과 자녀 그리고 건강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요. 이야기에서 사탄이라는 존재가 등장하지만, 욥이 당한 고통의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또 이미 알고 있는 결말처럼 잃어버린 자녀를 대신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고 하여, 또 하나님의 참 능력과 권능을 경험했다고 해서 그 모든 시간이 괜찮아지고, 좋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욥의 고통은 실재였고, 재난의 시간은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욥은 차라리 나무를 부러워합니다. 무거운 도끼질에 꺾여도 그루터기는 다시 새로운 움을 밀어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노쇠한 줄기가 지쳐 보여도 봄이면 어김없이 새잎을 밀어 올리는 나무에서 욥은 희망을 보았습니다. 마치 부활의 형상을 가리키고 있는 꺾꽂이 생명을 떠올리게 됩니다. 살아 있는 뿌리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다시 자란 가지가 끊임없이 자라가게 하는 생명. 살아 있다면, 그건 희망입니다. 다만, 다시 살리는 ‘물기운’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받아야 다시 살 수 있습니다. 땅과 나무를 벗 삼아 살아왔을 욥은 만물의 생명 원리를 꿰뚫어 보았고, 끝까지 그 사실을 붙잡아 마침내 하나님 안에서 단단한 가지를 뻗는 한 그루 나무와 같은 인생이 됩니다.
대림 3주 토요일 _ <생명이 희망이다>(욥 14:7-9)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