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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과학 > 농업 > 농업일반
· ISBN : 9788965292418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20-06-30
책 소개
목차
추천사
들어가며 괭이를 장만할 때의 그 두근거림으로
여는 일기 산촌에서의 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제1장 밭이랑에 묻어보는 허튼 인생
살랑살랑 봄바람 속 밭을 일구다
전복양식장의 유혹
찌릿찌릿 아린 손가락을 주무르면서
애꿎은 마음에 비는 내리고
기적을 부른 고구마 혁명
마침내 고추농사로 돈맛을 보다
쌀농사를 버리며
결혼기념일에 날품을 팔러 나가버렸다
내 밭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제2장 가까이 산다고 이웃은 아니건만
무엇이 김장김치의 맛을 만드는가
겨울, 경로당 가는 길은 좀 녹았으려나
하나둘 떠나는 이웃들
화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폼 나게 살고 싶었던 내 꿈은
봄날, 다래 순을 따다
살아갈수록 미워해야 할 사람이 늘었다
김 씨를 만나러 요양원 가는 길
제3장 아내는 또 찹쌀을 담갔다
서로를 보배롭게 여기면서
새 주방가구를 장만하면서
아내는 또 찹쌀을 담갔다
쓸쓸한 외출,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
외갓집처럼 친정집처럼 그렇게
봄바람 맞으며 봄 소풍 갈거나
무심한 지아비, 무심한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장가 잘 든 사람
시아비의 품격이란 무엇일까
요즘에 시는 좀 쓰나
제4장 새가 되어 날아간 바둑이
이렇게 하루를 또 보내었다
꽃분이가 사라졌다
수탉이 우는 새벽이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 꽃이 피는 이유
저 생명들에 마음을 열어보시라
고구마밭에 남몰래 숨겨둔 애환
그들의 거룩하고 따뜻한 마음
제5장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시간에
다시, 기차여행을 꿈꾸다
이 가련한 일중독자야
버려진 전등 앞에 서서
좁쌀 한 톨에 담긴 피 땀 눈물, 그리고 사랑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시간에
그동안 나의 세상은 무정했네
나이와 함께 몸도 저물기 시작했다
다시 새 봄을 기다리며
나는 언제나 고향이 그립다
숨길 것 없는 가벼운 삶
대신 맺는 말 고향이 멀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나무처럼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글쎄요. 잃은 거는 별로 생각나는 게 없고, 얻은 것은 사람과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동지거나 상대방이거나 남으로 구분되는데 그렇게 구분할 수 없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지요. 시간도 마찬가지지요. 나만의 시간, 내가 내 시간을 관리할 수 있다는 거. 나에게 주어진 지간을 내 의지대로, 내 생각대로 쓸 수 있다는 거. 하루 스물네 시간이 다 내 것이라는 거. 따지고 보면 그동안 생각조차 못했던 아주 소중한 것들을 얻은 셈이죠.”
그랬다. 나는 비로소 사람과 시간을 얻었다. 환경운동이 비록 가치 있는 일이었다 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동지거나 대척점에 선 상대편이거나 전혀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남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이해관계가 없는 상태이면서 남도 아닌,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도시에서 살 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을 위한 시간이었을 뿐이었다. 일을 하기 위해 시간을 맞추는 생활이었다. 시간에 맞춰 맡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생활이었다.
올해도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사나흘 기차여행을 하려던 계획은 이월 말에서 삼월 초로 미루어졌고, 다시 삼월 말로 미루어졌고, 사월 중으로 미루었건만. 이처럼 농사가 시작됐으니 엄두를 내기 어려울 것이고, 게다가 드문드문 민박 예약도 잡혀 있어 마땅히 빈 일정을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 흔한 봄나들이 한번 못한 채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이하겠지. 마당 여기저기서 피는 꽃들의 잔치를 보며 봄내음이라도 맡으련만 화무십일홍이라 매화도 앵두꽃도 배꽃도 살구꽃도 복사꽃도 한 줄기 봄비에 사흘을 견디지 못하고 속절없이 져버리는구나.
하늘하늘 날갯짓으로 다가오던 나비도, 닝닝거리며 꽃가지 사이를 날던 벌떼도 지는 꽃잎 따라 떠나버리고 허심한 봄 가랑비만 스렁스렁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구나.
저 산 너머엔 천천히 흐르는 넓은 강과, 한때 옛 친구가 잠시 머물렀다는 강마을이 있고, 강 끝자락으로 흘러 내려가면 하루 서너 대 보급열차가 서는 조그만 기차역이 있다고 하는데 아, 이 봄에 나는 저 산을 넘어가 보지도 못하는구나. 기차를 타고 동해 바다까지 나가보려던 꿈을 앵두나무 꽃그늘 아래 묻고 말았네.
그러나 술을 마셔야 할 일은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생겼다. 마을 안에 살면서 술을 마시지 않으며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웃과 만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런저런 일로 이웃을 찾아가면 술병을 내놓는 것이 버릇이요 관례였다.
“안 돼, 안 돼. 나 오늘 술 못 마셔.”
손목을 뿌리치지만 무엇에 홀린 것처럼 손목에 힘이 전해지지가 않았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내가 속이 상해 죽겠는데.”
“앗따, 속상한 거는 그쪽 사정이고.”
시끄러비아지매는 속사포 같은 말투로 농협 퇴비를 내리다 이웃 노샌댁과 다투었다는 이야기를 내질렀고, 나는 슬그머니 그 이야기를 들으며 시끄러비아지매를 편들어야 했고, 언제 채웠는지 내 술잔엔 술이 넘치도록 찰랑거렸고, 부딪치는 술잔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그렇게 메마른 김부각을 씹으며 두어 병의 술을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