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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88965294382
· 쪽수 : 104쪽
· 출판일 : 2025-04-17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3분 소설’ 중에서
“어제 경이 준 정강은 전하와 함께 잘 살펴보았소. 하나하나 우국충정이 담겨있더군. 경도 알다시피 전하도 나도 늘 개혁을 바라왔소. 정강을 반포하려면 먼저 전하의 교지가 있어야 하는데… 경우궁에서 교지가 반포되면 아무래도 위엄이 서지 않을 것이오. 게다가 경우궁은 대책을 논하기에 너무 좁고 불편하니 창덕궁으로 가야겠소.”
부드러운 표정으로 조목조목 말하는 왕비를 보며 김옥균은 기이하게 소름이 돋았다. 그날, 고종과 왕비는 기어코 창덕궁으로 돌아갔고 불과 몇 시간 후 청나라 대군이 한양에 들어왔다. 청나라의 대군이 입성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일본군은 철수했다. 순식간에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된 김옥균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일본으로 망명했다. 만고의 역적으로 끝나버린 개화파의 삼일천하, 갑신정변이었다
‘한양에서의 새로운 삶’ 중에서
명성황후가 한양에 올라온 지 3년째 되던 1863년 12월, 철종이 승하했다. 대비 신정왕후는 흥선군의 차남 이재황을 남편 효명세자의 양자로 삼아 왕위에 올렸다. 1864년 1월, 이제 막 13살이 된 고종은 조선의 제26대 임금이 되었고, 흥선군은 흥선대원군으로 승격되었으며 부인 민씨도 여흥 부대부인으로 승격되었다. 살아있는 몸으로 임금의 아버지가 된 흥선대원군의 지위와 권세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영특함과 총명함이 남달랐던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의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권력을 꿈꾸기 시작했다.
‘강제 개화의 시작, 강화도조약’ 중에서
일본의 속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조선은 강화도조약의 내용이 불평등하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조약을 체결했다.
<일본 전권 대신(日本全權大臣)이 바친 글>
우리나라와 귀국은 아세아주 동양에 있어 강토가 가까이 이웃하고 해안이 맞서 있어 사신과 예물이 오간 지 300년이나 됩니다. 다만 중간에 의견이 맞지 않아 정의(情意)가 서로 화합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번에 우리 대신들이 황제의 명령을 받들고 귀국에 와서 귀 대신과 함께 모여 옛날의 우의를 중수하고 새로운 조약을 맺어 양국이 함께 지킬 신위(信威)를 밝히고 만대를 두고 변하지 않을 전범을 마련하였으니 참으로 국가의 끝없는 복이며, 본 대신들도 영예가 있게 되었습니다.
삼가 귀국의 군왕 및 여러 유사(有司)들의 강녕을 축원하며, 아울러 귀 대신들이 진심으로 합심하여 우리 대신들이 사명을 다하게 한 두터운 우의에 감사드립니다.
명치(明治) 9년 2월 27일
고종실록13권
고종 13년(1876년) 2월 3일
강화도조약 체결 두 달 후 고종과 왕비는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했다. 순조11년(1811년) 조선통신사가 파견된 후 65년 만의 공식 사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