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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65470045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10-08-26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 뜻밖의 시작
2. 뜻대로 되지 않아
3. 흔들리고 흔들려
4. 연극일 뿐
5. 가려진 시간 사이로
6. 감추지 못하는 마음이라서
7. 음모의 한가운데
8. 단 하나의 이유
9. 끝과 시작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정미는 불길을 다시 살릴 작정으로 현관에 떨어진 부지깽이를 가져다 잿더미를 들쑤셨다. 그러자 검은 티가 화라락 일며 감춰져 있던 불씨가 빨갛게 제빛을 드러내 보였다.
“그런다고 불이 일어나진 않아. 더 이상 태울 게 없는 재뿐이니까.”
민재는 벽난로 속에 굵기가 가는 장작 몇 개를 던져 넣었다. 그러자 그나마 살아나던 불기가 장작더미에 눌려 다시금 까맣게 죽어갔다. 정미는 불을 꺼트린 게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남아 있는 불기가 너무 약하면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시 불이 일어날 거야. 다만, 팔랑팔랑 얇은 종이쪽이 아니라서 금방 불이 옮겨 붙지는 않아. 옮겨 붙으려면 시간이 필요해. 그러니 얌전히 인내하면서 기다리라고, 나처럼.”
정미는 아는 척에 잘난 척까지 하는 민재를 불만스럽게 노려보다, 그의 말대로 불이 다시 일어나길 얌전히 기다렸다. 얼마 후. 잘 마른 장작 사이에서 아련하게 연기가 올랐고,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빨간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당신 마음이 저 장작 같으면 좋을 텐데. 사람 마음이 장작 같을 수야 없다는 건 잘 아는데,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까 나도 모르게 그냥 그런 바람이 들어.”
정미는 민재가 던진 말의 담긴 의미를 알 듯 모를 듯했지만, 왠지 알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에 그러려니 넘어갔다.
침묵 속에 한참이나 앉아 있던 정미는 갈수록 맹렬해지는 불꽃을 보다 무심코 민재에게로 눈을 돌렸다. 다음 순간, 불꽃의 열기가 비친 탓에 짙은 음영이 드리운 민재에게 오롯이 눈길을 빼앗겼다.
날렵하게 뻗어 내린 오뚝한 콧날과 유혹하듯 깜빡이는 긴 속눈썹과 색스럽게 붉어진 입술에서 도저히 눈을 돌릴 수 없었다. 그런데…… 왠지 슬프다, 이 남자.
정미는 어느 틈엔가 눈시울이 젖어들고 말 것 같은 창연한 슬픔의 기운이 민재를 장막처럼 에워싸고 있음을 깨달았다. 너울대는 불길만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어둡게 그늘진 표정은 물론이고 조용히 웅크려 앉은 침울한 몸짓에서도, 그의 등 뒤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에서도, 심지어 이마에 흘러내린 그의 검은 머리카락에서도, 말할 수 없이 외롭고 슬픈 기운이 느껴졌다. 바라보고 있는 정미 자신이 아프다고 느낄 만큼.
정미는 그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의 그늘진 뺨을 쓰다듬고 기운 없이 굽어진 등과 어깨를 쓸어주며,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매만져주고 싶었다. 정말이지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손을 뻗을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다른 이의 남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