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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6550739
· 쪽수 : 688쪽
책 소개
목차
발간사│노동자 시인 조영관 전집 발간위원회 6
발간사│장달수 10
발간사│조영선 12
조영관 詩
1부 세상 속으로 가다
2부 우리들의 밥
3부 시화공단 시첩
4부 물과 숲의 노래
5부 꽃을 던지며 울다
6부 노래의 징검다리
작품 해설
노동이라는 희망의 원리와 새로운 ‘노동시’ │김난희 365
조영관 散文
1부 평론(1980년-1983년)
2부 산문 1 (2000년-2006년 집필 날짜 기재 산문)
3부 산문 2 (집필 날짜 미확인 산문)
부록 편
1부 추모시
2부 추모 산문
3부 기타
편집 후기
작가 연보
저자소개
책속에서
[발간사]
조영관 시인은 무엇보다 폼을 잡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과 문학 앞에 누구보다 겸손했던 조영관 시인은 그러면서도 세상에 대해 하고픈 말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사석이나 술자리에서는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선한 웃음과 함께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흥이 오르면 덩실 어깨춤을 추기도 했지만, 가슴 속에는 언제나 세상을 향한 뜨거움이 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대부분 긴 호흡을 가지고 있고, 시로 다 풀어내지 못한 말들이 쌓여 소설로 옮겨가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시인답게 우리말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습니다. 그는 생전에 우리말과 각 지역의 사투리들을 모아서 파일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공부한 말들을 시와 소설 안에 적절하면서도 풍부하게 녹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98년 겨울, 영종도
모두 여기를
여름에는 사우디, 겨울에는 시베리아라고 했다
별을 보고 출근해서 별을 보고 퇴근하는
겨울, 영종도 공사장
갯벌 막아 지른 황막한 벌판 눈길을
덜컹덜컹 트럭은 잘도 달려간다
방한모 뒤집어쓴 채 졸다 깨다
언뜻 어스름 눈 비벼대면
차창으로 게릴라처럼 뛰어드는 새벽안개
바람이 불 때마다 눈 더미가
갈대 자빠진 갯고랑에 수북이 떠밀려 쌓여가는,
눈바람 피할 곳도 막을 것도 없는
돌 더미 눈길 위로
시린 발 동동 찍으며
우린 날쌘 노루처럼 작업장으로 달려간다
그리곤 바로 철근 뾰족뾰족 솟아오른
시멘트 담벼락 아래
각목과 합판을 분질러 깡통에 불을 지핀다
귀싸대기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한,
콧물 질질 흐르는 뺨을 문대며
불을 한 주먹씩 떠보지만
잡히는 것은
톱날처럼 파랗게 날선 바람뿐,
옹송그리며 둘러앉아
곱은 손을 비벼가며 피워 무는 담뱃불 위로
갈매기 울음소리 끼룩끼룩
풀도 없는 돌무덤
들판 위로 유배되어
우리는
그리고 곧, 아직 촉촉한 갯벌을 후비며
덤프트럭이 달려오면
철갑 공룡들의 트림이,
새벽 체조가 드디어 시작되고
집게발로 하늘 향해 별이라도 후벼 팔 듯
얼쭝얼쭝 포효하던 포클레인이
갯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돌자갈을 몸통으로 깔아뭉개며
냉기 절절 흐르는 새벽 공기를 마구 짓쪼아 나가고
우리도 언 손마디가 뚝뚝 소리 나게
펄쩍펄쩍 후려 뛰면서 몸을 푸는데
안개만이 낯선 친구처럼
스멀스멀 회백색의 하늘가를 어슬렁거리다가
눈 위에 찔끔찔끔 찍히는 오줌발에
숭숭 구멍이 뚫려 비칠비칠 뒷걸음질치는
아, 포근한 잠이,
부리에 떨어지는 부신 햇살이 그리운 새들의,
물고기의 가슴에 돌을 퍼 담는
겨울, 영종도
물새들은 참으로 멀리 쫓겨나고
겨울 안개는 정말 너무 깊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