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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6551118
· 쪽수 : 124쪽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4
제1부
공공근로의 위력 14
차별 15
착각 16
엉뚱한 상상 18
실업명세서 20
낡은 기차 22
어린 노동자에게 24
노동의 끝 27
세상이 바뀌었다니 28
가뭄 30
봄 32
어떤 시위 34
딱 하루치 36
아시나요 38
제2부
비산동 42
나팔꽃 44
순대 45
울기등대 46
유일한 변명 47
백일 동안 48
면회 49
이사 50
달 51
전지분유 52
훌라후프 53
똥개 유감 54
강철은 56
제3부
그녀가 무엇을 하거나 58
초짜 60
벚나무 아래 61
놀라운 노동의 가치 62
화석 64
메아리 66
육교 공포증 68
운부암 69
거미 70
독毒 72
풍경 73
만리포 갈릴리교회 74
야생 황기 76
제4부
밥값 80
한식구 82
바닥에 앉아 계십니다 84
반쪽 노동자 86
숨바꼭질 88
명인 89
사이 90
원격조종 91
선택 92
가장 힘든 시간 94
전주교도소 96
그때 내 시의 주제는 97
내가 깃발이다 우리가 진실이다 100
새로운 시작 102
발문_낡은 기차에 대하여 |박영희 105
저자소개
책속에서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을 하니
캄캄한 밤하늘 아무리 바라봐도
밤인지 새벽인지
같은 작업복을 입고 같은 안전화를 신고
같은 마스크를 끼고 같은 공구를 들고
현장 속으로 기계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사람들
아무리 찾아봐도 기계 사이 그 사람
김 씨인지 이 씨인지
기계와 함께
같은 시간에 일을 시작하고
같은 속도로 일을 마치고
같은 속도로 맞교대를 하는
뿌연 절삭유 기름 공기 속에서 웅웅 콤프레셔 소음 속에서
기계가 돌아가는지 사람이 돌아가는지
같은 하루를
같은 일 년을
같은 십 년을
같은 한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기계 같은 사람들
사람 같은 기계들
_「착각」 전문
낡은 것들이 가차 없이 폐기 처분되었다 어떤 가치도 낡았다는 혐의 앞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기차가 그랬다 거침없었던 과거의 속도 때문이었다 어제까지 안락하게 기차에 몸을 실었던 사람들이 기차를 청산하기 시작했다 억울하지만 낡은 것들에 치를 떨었던 세상에서 선의의 피해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사실 낡은 것의 잣대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임을 나는 안다 속도가 세상 헛된 관심이 되면서부터 만족스러운 속도를 증명하지 못한 많은 것들이 퇴출되었다 일방적인 질주 앞에서 평등한 관계란 부질없는 희망인지 모른다 선천적으로 속도에 적응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먼저 낡은 기차가 되었다 노동자 철학이 그랬다 노동자 문화가 그랬다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이 낡은 세상에 대한 혐의를 뒤집어쓰고 비극적인 과거를 감당해야 했다 이제 사람들은 기차를 버렸듯이 노동자를 버렸다 이 좋은 세상에 노동자라니! 사람들은 서둘러 과거 속에서 떠났다 이제 과거라고 불러줄 것이 남지 않은 세상이다 사람들이 떠난 작은 역에서 나는 오늘 낡은 기차에 몸을 싣는다 어차피 한쪽을 택해야 한다면 낡고 버려지는 편에 나는 서고 싶은 것이다 주목하지 않는 낡은 기차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분명 세상 한쪽을 지킬 것이다 그 한쪽 세상이야말로 유일한 과거임을 나는 안다
-「낡은 기차」 전문
어머니 평생소원은 근심 없는 하루였다
보름이면 먼바다 방생을 떠나
간절하게 극락정토를 부르셨다
질긴 목숨이 다해 삭은 몸뚱이 눕히면
자손들 찾아와 술 한 잔 치고 큰절 올릴
산비탈 귀퉁이 땅
부끄러운 기도 깊이 숨겨두셨다
놀라운 보시를 한 해도 거르지 않았건만
자식들은 어머니 기도처럼 되지 못했다
비우고 비우고 다시 비워내는
어머니 평생소원은 저 달처럼 욕심 없는 하루였다
_「달」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