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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66551736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3-12-15
책 소개
목차
사진 밖으로 뜬 가족 · 007
죽음의 시 · 037
마지막 동창회 · 063
같은 시간 속의 사람들 · 095
시인과 소녀 · 123
퇴근길 · 149
계양산기 · 179
환각의 도시, 그리고 섬 · 205
해설 | 내몰린 사람들을 향한 소설의 윤리(이병국) · 234
작가의 말 · 254
저자소개
책속에서
쉬엄쉬엄 요령껏 하겠다고 엄마를 설득한 종기는 출근 시간이 다가오자 물류센터로 가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목적지까지 이십 분가량 남았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이름이 떴다. 구윤재였다. 전화를 받았다. 여자였다. 구윤재 엄마라고 했다. 박종기 사원이냐고 물었다. 회사 동료인지, 윤재를 잘 아는지 물었다. 지난번 문자를 받았는데 이제야 연락드려서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한동안 한숨 소리만 이어졌다. 한숨이라니. 구윤재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윤재 엄마는 “윤재가, 우리 윤재가, 그제 새벽 두 시쯤에 내 아들 윤재가, 그쪽 물류센터 2층 화장실 바닥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서….” 더듬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던 구윤재 엄마는 윤재가 죽었다고 했다. 빈소도 없이 병원 냉동고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누워 있다고 말했다. 회사가 산업재해로 인정하지도 않고 여러 가지로 불리한 상황이라며, 그날 윤재에 대한 동선을 아는 만큼만 증언해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_「죽음의 시」
액자 안에는 사진이 있었다. 늙은 여인이었다. 막내 또래는 뭉툭한 보자기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남주가 영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유하는?”
“왔다네.”
“왔구먼, 죽음을 왜 숨겼는가?”
“유하가 저세상으로 갔다고 말하먼 자네가 안 올 것 같응께…. 그라고 유하가 이 시상에 있다고 했을 때 자네 맘하고, 저 시상으로 떴을 때 맘도 알고 싶었네. 오늘 아침에는 말하 고 싶었는디 참말로 입이 안 떨어지등마.”
영미가 치마 끝단을 잡고 눈을 훔쳤다.
“유하가 우리 집에 온 지 십 년도 넘었는디, 그때 자석들 데리고 내 집에 와갖고 나한테 부탁하고 갔네. 보리장나무숲에도 가서 자네 이야기도 함시롱. 죽으먼 여그다 뼛가루를 뿌려 달라고. 여그가 자네하고 유하가 만난디 앵인가?”
“….”
영미 아들과 며느리가 돗자리를 펴고 제상을 차렸다. 젊은 남자가 영정 사진을 제상에 올렸다. 막내 또래의 남자는 제상에 보자기를 올려놓고 풀었다. 유하의 항아리였다.
_「마지막 동창회」
잠시 후였다. 굴뚝 난간을 향해 연이 솟아올랐다. 가오리연이었다. 소녀의 연이었다. 소녀가 뉴셀 담장에 올라 가오리 연을 날리고 있었다. 소녀는 얼레를 붙잡고 실타래를 풀며 더 높이 더 멀리 날려 보냈다.
루리!
시인이 소리쳤다.
“동규 씨! 보이죠? 따님이 연을 날리고 있어요.”
동규는 몸을 일으켰다. 하늘을 가르는 연과 소녀를 바라보았다. 연은 꼬리와 귀에 글자를 달고 솟구쳐 올랐다. 좌우로 비행하다 바람에 밀려 멀어지며 곤두박질치는가 싶더니 땅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연은 ‘아빠 빨리 내려오세요’를 꼬리에 달고, 두 귀는 ‘함께 밥 먹어요’를 단 채 날갯짓을 했다. 오 작가가 확성기를 들고 소녀에게 다가갔다. 확성기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빠, 빨리 내려오세요’.
‘아빠, 함께 밥 먹어요’.
_「시인과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