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루니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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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중세 문학을 전공한 후, 케임브리지대학교와 요크대학교에서 중세 영어와 프랑스 문학을 가르쳤다.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청소년을 위한 과학 입문서부터 성인을 위한 문학, 철학, 역사, 과학 관련 책까지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썼다. 아벤티스 과학상 후보(2004년), ALCS 교육 작가상 최종 후보(2015년), 영국 왕립 청소년 도서상 후보(2018년)로 선정되었다. 특히 2018년에는 영국 학교도서관협회 정보 도서상을 수상하며 정보 전달력을 갖춘 뛰어난 글쓰기로 주목받았다. 케임브리지대학교 뉴넘 칼리지에서 왕립 문학 기금 특별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스토리텔링을 통해 복잡한 개념을 쉽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수학의 발견 수학의 발명》,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과학 상식 사전》, 《10대를 위한 만만한 물리의 세계》, 《우주가 뭐예요?》, 《판타스틱 화학 7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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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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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을 전공했다. 단편 소설 로 근로자문화예술제 대상을 받았으며, 뮌헨 국제청소년도서관에서 펠로십으로 아동 및 청소년 문학을 연구했다. 현재 ‘한겨레 어린이책 번역 작가 과정’과 ‘김선희의 언택트 번역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공감하는 번역》, 《유연한 문장의 언어(근간)》 등의 책을 쓰고 , , , 시리즈와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 《경제는 어렵지만 부자가 되고 싶어》, 《킨포크 트래블》, 《문제아》 등 200여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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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램 스토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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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 11월에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센티미터 장신의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지만, 어린 시절에는 병치레가 잦았으며 침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병약한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어머니는 아일랜드의 동화나 민담, 전설과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이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의 문학적 상상력에도 불을 지폈다.
브램 스토커는 더블린 정부의 공무원으로 일하는 한편 바쁜 시간을 쪼개서 글을 썼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와 연극 평론가로 활동했다. 이때 그가 썼던 연극 평론 하나가 그의 운명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글을 우연히 읽은 당시 영국의 유명한 배우 헨리 어빙(Henry Irving)이 호기심에서 그를 식사에 초대했던 것이다. 1878년에 라이시엄(Lyceum) 극장의 감독으로 임명된 어빙이 스토커에게 극장 프로듀서 자리를 제안하자, 그는 추호의 미련도 없이 12년 근무했던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런던에서 그와 합류했다.
스토커는 극장을 경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897년 ≪드라큘라≫를 출간하기에 앞서, 그는 ≪뱀의 고갯길(The Snake’s Pass)≫이나 ≪샤스타의 어깨(The Shoulder of Shasta)≫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독자들의 별다른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더욱 창작에 박차를 가했다. ≪드라큘라≫는 그가 영국 국립도서관 등을 방문하면서 수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6년 이상의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완성한 작품이었다. 출간과 동시에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오늘날 그가 쓴 많은 작품 가운데 ≪드라큘라≫만이 유일하게 계속해서 독자에게 읽히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드라큘라≫의 출간 이후로 어빙과 스토커에게 여러 악재가 뒤따랐다. 1898년에 런던 외곽에 있던 거대한 무대장치가 화재로 전소되었으며, 극장은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어빙과 스토커의 건강도 악화되었다. 그럼에도 스토커는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어빙이 사망한 이후로도 그는 ≪칠성의 보석(The Jewel of Seven Stars)≫이나 ≪흰 벌레의 소굴(The Lair of the White Worm)≫과 같은 모험소설과 방대한 ≪헨리 어빙에 대한 개인적 회상(Personal Reminiscence of Henry Irving)≫을 비롯해서, 역사적 사실에 추측과 성찰이 가미된 ≪유명한 사기꾼들(Famous Imposters)≫을 발표했다. 이 마지막 책에서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실은 여장한 남자라는 대담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생전에 문필가나 소설가로서 그의 존재는 미미했다. 1912년에 그가 사망했을 때도 동시대인들은 그를 다만 헨리 어빙의 조력자로서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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