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릴라 데르자빈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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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르자빈은 1743년 7월 14일(구력 7월 3일) 카잔 지방에서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1816년 7월 20일(구력 7월 8일) 노브고로드 지방의 즈반카에서 죽었다. 몰락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데르자빈은 카잔의 김나지움을 마치고 1762년 사병으로 입대했고, 1772년 장교로 임관되었다. 1773년 푸가초프의 난이 일어나자 그의 소속 부대는 반란군 진압 작전에 참여했다. 이 사건 이후 177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내무부 관리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공직 생활 26년 동안 올로네츠와 탐보프의 지방 장관과 상원 의원, 그리고 법무장관을 지냈다. 관리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데르자빈은 18세기 러시아 시인으로서 독창적인 서정시와 송시를 많이 남겼다. 그가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예카테리나 대제에게 바치는 송시 <펠리사>(1782)를 발표하면서부터다. <펠리사>는 전체가 260행으로 구성된 송시로서, 한편으로는 계몽 군주로서의 예카테리나 여제를 칭송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하들의 아첨과 위선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예카테리나 대제에게 그 송시를 바쳐 여황제의 총애를 받았고, 계관시인이 되는 명예를 얻기까지 하였다. 한동안 여황제의 개인 비서로 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적인 정치 성향 때문에 1803년 공직에서 물러나 노브고로드 지방의 즈반카에 있는 영지로 돌아와 생활했다. 이곳에서 그는 시와 산문, 드라마와 회고록을 쓰면서 만년을 조용히 지냈다.
데르자빈의 다양한 시들을 소재나 주제에 따라 그룹을 지어보면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의 시는 크게 송시와 아나크레온풍의 인생의 쾌락을 노래한 시로 구분된다. 데르자빈의 시 작품들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말년에 집중적으로 창작한 아나크레온풍의 시들이다. 그 시들은 즐겁고 감각적인 관능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삶에 대한 예찬과 사랑으로 고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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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관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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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입학해 러시아어문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오하이오 주립 대학(OSU) 대학원 슬라브어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 논문은 〈데르자빈의 시학에 나타난 시간 철학(Time Philosophy in Derzhavin’s Poetics)〉이다.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과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세계문학연구소 학술 위원을 지내고, 2000년 2월에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논문으로는 〈데르자빈의 시학에 나타난 바로크적 세계관과 토포이 문제〉(교과부장관상 수상)가 있고, 저서로 《러시아 시 강의》, 《러시아 문학의 하이퍼텍스트》, 《고대 러시아 문학의 시학》(문광부 우수학술도서), 《죄와 벌의 현대적 해석》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러시아 현대비평이론》, 《시의 이해와 분석》, 《주인공 없는 서사시》, 《말로 표현한 사상은 거짓말이다》, 《자살하고픈 슬픔》, 《오늘은 불쾌한 날이다》, 《루슬란과 류드밀라》,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검찰관》, 《타라스 불바》, 《보리스 고두노프/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아흐마둘리나 시선》, 《보즈네센스키 시선》, 《오쿠자바의 노래시》,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17세기 러시아 문학》, 《17세기 러시아 풍자문학》, 《16세기 러시아 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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