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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요리/살림 > 술/음료/차 > 술
· ISBN : 9788967070175
· 쪽수 : 296쪽
책 소개
목차
프르미에 크뤼 클라세
1. 1등급 와인의 탄생
2. 보르도의 명성을 키우며
3. 프랑스 혁명과 보르도
4.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5. 1855년 파리 박람회와 등급 제정
6. 20세기의 1등급 와인
7. 세계 최고의 와인 만들기
8. 보르도의 축제 엉 프리뫼르
9. 1등급 샤토의 일상
10. 미래를 향하여
책속에서
햇살이 내리쬐는 나른한 한낮이지만 보르도의 9월은 긴장감이 흐른다. 선거를 앞둔 워싱턴이나 패션 주간 직전의 밀라노처럼 긴박한 분위기다. 주민들은 모두 보르도의 경제가 9월 며칠 간의 날씨에 달려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8월과 비교하면 갑자기 옷을 바꿔 입은 것 같다.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이지만 8월에는 상점들은 셔터를 내리고 레스토랑은 문을 닫고, 마치 다른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모두 해변으로 달려간다. 9월이 오면 주민들은 일상으로 돌아와 하늘을 바라본다. 9월의 햇빛은 계획대로 여유롭게 포도를 수확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한해 수확한 포도로 보르도에서만 매년 7억여 병의 와인이 만들어진다. 비가 오거나, 우박이 내리거나 폭풍이 불면 포도를 구하기 위해 모두 허둥대며 사투를 벌여야 한다.
보르도의 샤토들은 모두 다르지만, 특히 한해 중 수확 시기에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지역의 포도밭 분포는 피라미드 형태로 바닥은 넓고 단단하며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산과 같은 모양이다. 8천여 개의 샤토 중 6천여 개는 평평하고 견고한 바닥을 이룬다. 이 샤토들은 슈퍼마켓의 선반을 채우는 일상 와인을 만들며 모두 거의 같은 방법으로 수확을 한다. 9월이 되면 수확 기계가 포도밭을 가로지르며 포도밭이 완전히 텅 비도록 품종별로 포도를 딴다. 포도를 빠르게 수확하고 경비를 줄이기 위해 수확 기계를 한 곳에 모아두고 이웃들 간에 서로 교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이 보르도를 휩쓸었던 1789년 당시 1등급 샤토들은 이 지역의 와인 시장을 이끌어가는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소유주들은 18세기의 대부분을 부를 쌓으며 즐겼지만, 프랑스를 뒤흔든 거대한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귀족 신분인 그들은 직격탄을 피할 수 없었다. 혁명의 열기가 가라앉을 즈음에는 5대 샤토 중 3개 샤토의 소유주가 사라진 상태였다.
보르도는 혁명의 와중에서 프랑스 어떤 도시보다 심한 피해를 입었다. 주로 온건 부르주아지를 대변하는 지롱드 당Les Girondins이라는 정치 파벌에 관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1789년 혁명을 열렬히 지지했으나 1790년대 초에는 급진파들에 밀려 혁명 세력의 적으로 몰렸다. 보르도 시의 대부분 의회 의원들은 전혀 관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조자로 저주받았다. 19세기 초에는 8백여 개의 보르도 귀족 가문 중거의 절반이 사라지게 되었다. 의회 의원 36명을 포함한 79명의 보르도 귀족이 처형을 당했다. 408명이 망명길에 올랐고 대부분 스페인으로 향했다. 남은 사람들은 지위를 박탈당했으며, 높은 세금 때문에 남아있는 재산도 위태로운 처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