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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자기계발 > 성공 > 성공학
· ISBN : 9788967997373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23-01-04
책 소개
목차
Prologue
Part 1 잘못된 영어 공부법(학습법)
영문법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착각
전치사는 중요하지 않다는 착각
동사를 다 안다는 착각
가장 쉬운 게 기초라는 착각
원서 독서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야 한다는 착각
패턴식 영어 회화가 회화를 잘하게 해 줄 거라는 착각
리딩은 충분히 했다는 착각
단어는 암기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착각
소리 내지 않아도 된다는 착각
추론 능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착각
한국말은 잘한다는 착각
Part 2 잘못된 영어교육(시스템)
경제를 성장시킨 좋은 교육이라는 착각
한국의 학교는 원래 이렇다는 착각
국가가 교육을 해 주고 있다는 착각
공교육에 커리큘럼이 있다는 착각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착각
한국에 영어 선생님이 있다는 착각
대학 가서도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착각
레벨 테스트가 필요하다는 착각
영어 레벨 테스트가 영어 레벨을 테스트하는 것이라는 착각
영어를 배우는 순서에 대한 착각
바이링구얼이 되는 방법에 대한 착각
배우고 있다는 착각
상대평가가 아니라 평가방법(객관식 VS 서술식)이 문제라는 착각
아이들이 똑똑해지기를 바란다는 착각
Part 3 잘못된 영어에 대한 인식
영어의 깊이에 대한 착각
감각 언어가 인지 언어라는 착각
영어는 사유 능력과 아무 관계없다는 착각
인문학은 불필요하다는 착각
영어는 ‘남’과 아무 상관없다는 착각
문화가 중요하지 않다는 착각
영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있다는 착각
Part 4 잘못된 영어 환경
수학교육이 영어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착각
우리나라의 수치 문화가 교육과 아무 상관없다는 착각
세계사를 몰라도 된다는 착각
우리나라가 외국어를 장려하는 분위기라는 착각
사람한테 관심이 없어도 된다는 착각
경쟁 구도와 비교 문화에서 영어가 꽃피울 수 있다는 착각
우리나라가 영어와 함께 나아갈 방향
Epilogue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영어는 시험과목 이전에 언어이다. 영어 한마디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는 한국의 문화 환경에서 원서 읽기는 영어의 언어적 측면뿐만 아니라 영어권의 문화적・사회적 측면에 대한 이해까지 끌어올려 준다.
지나친 경쟁의 중고등학교 교육제도가 영어를 효과적으로 배우고 다른 학업의 효율성까지 높여줄 방법을 가리고 있다. 학생들의 영어 원서 읽기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까지 또 고등학교까지 계속 이어져야 하는 영어 학습 방법이다. 또한 영어 성적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어 기반을 강화함으로써 모든 분야에 대한 이해력을 높여주는 완전한 영어교육 방법이다
“Part 1 잘못된 영어 공부법(학습법)” 중에서
우리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 계속 문장으로 말을 걸고, 말을 하도록 유도한다. 말을 못 한다고 해서 말을 거는 것을 중단하지 않는다. 문장을 못 만든다고 해서 단어만 가지고 말을 걸지도 않는다. 아기가 하나도 못 알아듣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말을 하고 문장을 만들며 말하기 시작하는 원리와도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영어 학원의 레벨 테스트는 일반화되어 있다. 레벨 테스트를 받고 수준에 맞게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영어 학원은 이런 레벨 테스트를 통해 불필요한 열등의식을 갖게 하고 권위적인 태도로 교육하며,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가르치니, 이러한 방법이 좋다고까지 생각한다. 이것은 언어의 특징을 전혀 모르는 방식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부모들은 학원에 같은 돈을 내고 자신들의 아이가 낮은 레벨에 배정되어 교육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공교육이 존재하는데도 우리 아이들은 극단적으로 다른 영어 레벨을 갖고 있다. 그리고 공교육이나 사교육이나 그 차이 나는 레벨을 좁힐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레벨 테스트를 통해 아이들에게 열등의식을 키워주고 있다. 영어 레벨 테스트는 아이들의 인지발달을 고려하지 않는 영어교육의 편리만을 추구하는 잘못된 교육 방법이다.
“Part 2 잘못된 영어교육(시스템)” 중에서
언어는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는가? 소통을 위해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자기의 삶을 변화시키며, 주위 사람들을 움직이고, 관계를 만들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규정해 놓은 ‘남’으로 형성된 이웃과 어떤 소통을 할 수 있는가? 우리말로도 소통을 안 하는데. ‘남’과 어찌 솔직하고 정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남’과 내 생각을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두가 적이고 경쟁자인데…….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그저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남을 이기기 위해 점수를 받아내야 하는 과목일 뿐이다. 그래서 영어를 배운다고 해도 남과의 소통 능력을 상실한 영어로 남아 있을 뿐이다.
영어권 문화에서는 모르는 사람과도 좋은 하루를 빌어주는 인사를 할 수 있고, 오늘 만난 사람과 의견을 묻고 들어줄 수도 있으며, 개인적인 얘기도 나누며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들의 사회 속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남’이 아니라 내가 공감하고 소통해야 할 공동체를 이루며 돌봐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에 대한 경계선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영어는 여행으로 만난 사람과도, 길거리에서 길을 묻는 외국인과도 소통할 수 없는 내 안에 갇혀 있는 죽은 언어만 남아 있을 뿐이다
“Part 3 잘못된 영어에 대한 인식”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