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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68178726
· 쪽수 : 220쪽
· 출판일 : 2020-04-30
목차
1부 그렇게 시동이 걸린다
공 구르듯이__11
소 타던 정승__14
서랍을 정리하며__19
만남, 길 열어가는__21
칡의 정상 오르기__24
수필집 교정을 보면서__28
책 한 권 아니 읽고 가을이 간다__32
쑥__35
길에서 읽는 공사 실명제__39
그렇게 시동이 걸린다__42
2부 마음 베란다 하나 둬야겠다
글 한 편의 힘__49
개나리의 봄, 나의 봄__53
관찰, 심안으로 깊게 넓게__55
나의 수필 쓰기__59
그 눈바람__63
정성, 헛꽃까지 피우는__66
인서록人瑞錄이 주는 교훈__69
은행나무의 분신 사랑__72
소확행小確幸__75
마음 베란다 하나 둬야겠다__78
3부 찔레꽃, 그 향기가 일깨운 소리
재능기부라도 해야지__83
어려운 날의 즐거움__86
땀 흘려 누리는 작은 행복__91
가볍게, 천천히__94
밥맛을 찾아준 선물__99
냉이와 어머니__103
김치찌개__105
고맙다, 백혈구야__107
버드나무 시 쓰듯__110
찔레꽃, 그 향기가 일깨운 소리__113
4부 봄의 언어들
고운 손__119
원천석, 그의 충절과 문학__122
이건 노욕인가, 위안인가__126
플라타너스 그 가로수 길__129
내게 주는 선물__131
길에서 만난 작은 행복들__134
고향 상실의 계절__138
즐거운 산책__141
파도 소리의 힘__144
봄의 언어들__147
5부 호박, 그도 타향 나도 타향
보리밥이 그립다__153
좋은 글을 모으면서__155
비 온 김에 숙제하다__158
물왕저수지에서__161
어떻게 생활화한 에티켓인데__164
손전화의 계절__167
북캉스__169
링링의 후광__173
고마운 대파__176
호박, 그도 타향 나도 타향__180
6부 단풍 앞에서
수박의 시간__187
인터넷에 물어볼 일이다__189
아, 임진강아__192
이언적, 그의 삶과 학문__195
전지와 회초리__202
인생길, 물길 같아야__204
조경수를 키우는 즐거움__207
낡은 바지, 그 헐렁하고 덤덤한__211
삿포로, 그 눈 눈 눈__213
단풍 앞에서__219
저자소개
책속에서
버드나무 시 쓰듯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연못가에 버드나무 십여 그루가 살고 있다.
수시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물가에 뿌리 내린 영리한 나무다. 봄이 오면 숲속의 다른 식물보다 먼저 눈을 뜬다. 일찍 깨는 부지런함에다 먹을거리가 늘 연못에 있으니 생장이 빠르다.
실처럼 가는 가지에 수많은 잎을 단다. 물 위에 가지를 쭉 내려뜨려 연못에 사는 동식물들과 함께한다. 천연기념물 황조롱이를 비롯하여 흰뺨검둥오리, 왜가리, 물거미, 버들치, 말즘 등과 어울린다. 버들가지도 마치 시상詩想을 떠올리는 시인 같다. 바람이 일면 물 위에 붓질을 하며 시를 짓는 듯하다.
무슨 시를 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람이 멈추면 조용히 제자리에 선다. 묵상하듯 사색한다. 그러면서 또 주위를 살핀다. 그런 삶을 되풀이한다. 하루에도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사색하다가 시를 쓴다. 이상희李相熙 전 산림청장이 <버드나무와 문학>에서 말하듯 시가詩歌에서 노래한 어구語句가 다른 어느 나무보다 많다. 시인처럼 시어詩語를 가슴에 품고 산다.
봄에 눈뜨는 버들을 신류新柳?눈류嫩柳라고 하고, 눈이 나온 버들을 청류靑柳?취류翠柳라고 칭한다. 또 버들잎의 산뜻한 색조를 유색柳色이라고 하고 선명한 푸르름을 유록柳綠?녹양綠楊이라고 부른다.
버드나무가 무성해서 주변이 어두운 모습을 띠면 유영柳影?유음柳陰이라고 하고, 버들에 안개가 자욱한 것을 유연柳煙이라고 한다. 버드나무가 늙으면 품위가 있다고 하여 고류枯柳?잔류殘柳라고 이른다. 버들가지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각별한 풍취를 자아낸다고 하여 유풍柳風?양풍楊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옛 선비들이 시어詩語나 노래 가사로 버드나무의 아름다움을 읊고 썼다. 그만한 미美가 있다고 공감한다. 어떻게 하면 저런 ‘미’를 가슴에 품고 살까. 또한, 감성이 예민하고 유연하여 시인의 마음을 닮은 것 같다.
그런 유연함으로 바람이나 외세에 춤추듯 흔들리다가 제자리에 멈춰 선다. 나는 어떤가? 세상의 미풍微風이나 닥치는 현실 불만에도 숯불처럼 반응한다. 의연하지 못하고 성급히 표출한다. 바람이 잠잠하거나 별일이 없어 조용하면 쓸데없이 바깥으로 나도는 나의 행보. 묵묵히 사색하는 버드나무에게 배워야 할 단점이요, 본받을 일인 듯싶다. 이른 아침마다 버드나무 앞에 서서 풍기는 시구의 향기를 음미하며, 유연하게 사는 그를 닮고 싶어 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봄이 오면 일찍 눈뜨는 버드나무의 부지런함, 온 힘을 다해 깊은 지하의 물을 뽑아 올려 제 식구에게 나눠주는 지극한 ‘효심과 자식 사랑’이 유별나다. 자연은 신통하다. 바람이 계속하여 불지 않는다. 간간이 불어오다가 멈추면 천연天然하게 시사詩思를 가다듬는다. 바람이 일면 득달같이 물 위에 시를 쓰는 저 천성을 닮고 싶다.
그처럼 선비 같은, 스승 같은 버드나무가 아침마다 내 산책길에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갈대와 물억새가 무성하게 자라는 생태숲에서 물 위에 드리운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수상 동식물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마치 정원 같고 정자 같은 곳에서 떠올리는 시상이 궁금하지만 알 도리가 없다.
오늘같이 무더운 날이면 버드나무가 10여 미터의 땅속에서 물관으로 물 뿜어 올리는 소리를 듣는다. 나무줄기의 마디나 껍질 틈새로 하얀 물거품을 툭툭 품어내는 소리를 들을 때면 저런 힘이 어디에서 나올까.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게 묻는다. ‘나는 저토록 열렬히 산 적이 있는지?’를.
내게 샛강생태공원은 마치 고향 같다. 그 마을 개천가에 자라던 찔레와 아까시나무가 여기에 있고, 쑥과 민들레가 자생하고, 물거미도 서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버드나무도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어서다. 고향 연못에 있던 버드나무같이 틈만 나면 시를 착상하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면서 시를 쓴다. 나도 저 버드나무같이 바람 따라 시를 쓰고 싶다.
또 바람이 인다. 버드나무 가지가 물 위에 붓질하듯 시를 쓴다. 나도 그랬으면 하고 몸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