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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이야기

선조 이야기

(일본인의 조상숭배)

야나기타 구니오 (지은이), 김용의 (옮긴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6-01-25
  |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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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이야기

책 정보

· 제목 : 선조 이야기 (일본인의 조상숭배)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인문계열 > 종교학
· ISBN : 9788968492686
· 쪽수 : 432쪽

책 소개

민속학자 야나기타 구니오의 대표적인 저작 중의 하나이다. 일본인의 영혼관, 타계관, 조상관, 그리고 신에 대한 관념을 체계적으로 이론화를 시도한 저서이다.

목차

1. 두 가지 해석 / 019
2. 한 가지 작은 실제 사례 / 023
3. 집안의 초대 선조 / 030
4. 선조가 되다 / 034
5. 상속제도와 두 종류의 분가 / 037
6. 은거와 방 / 040
7. 오늘날과 옛날의 차이 / 044
8. 선조의 배려 / 047
9. 무가가 번영한 실제 정황 / 050
10. 먼 지방으로의 분가 / 054
11. 가독의 중요성 / 059
12. 집안의 전통 / 062
13. 마키와 친척 / 065
14. 마키의 결합력 / 069
15. 경사스러운 날 / 072
16. 가도아케ㆍ가도비라키 / 075
17. 마키우치 연시의 기원 / 080
18. 새해의 신은 가택신 / 084
19. 새해 제단과 길한 방향 / 088
20. 신의 공양 / 093
21. 오본과 설의 유사성 / 097
22. 도시도쿠진의 모습 / 102
23. 선조제의 관념 / 110
24. 선조제의 기일 / 115
25. 선조의 설 / 119
26. 오야가미의 신사 / 124
27. 호토케의 설 / 129
28. 재일 / 135
29. 4월의 선조제 / 141
30. 논신과 산신 / 146
31. 연말의 영혼제 / 151
32. 선조제와 물 / 155
33. 영혼의 밥 / 160
34. 젓가락과 주먹밥의 생김새 / 164
35. 영혼에 대한 사상의 변천 / 169
36. 사람이 죽은 해와 그 영혼 / 173
37. 정령과 영혼 / 179
38. 유령과 망혼 / 185
39. 세 종류의 정령 / 189
40. 감잎과 연잎 / 194
41. 상설 영혼 제단 / 199
42. 부쓰단이라는 이름 / 203
43. 오본과 호카이 / 208
44. 호카이와 제사의 차이 / 214
45. 호토키도 호카이 / 222
46. ‘호토케’의 어원 / 226
47. 다양한 호토케 종류 / 231
48. 제구와 제식 / 235
49. 제사를 지내지 않는 영혼 / 241
50. 신식 오본의 특징 / 246
51. 33주기 / 250
52. 집안의 영혼 제단 / 256
53. 영신에 관해서 / 261
54. 제장의 점정 / 266
55. 마을의 씨족신 / 271
56. 묘소는 제장 / 276
57. 조상의 영혼을 고독하게 만들다 / 282
58. 무의식적인 전승 / 287
59. 영혼을 맞이하는 불 / 293
60. 어린아이의 언어로 / 296
61. 자연스러운 체험 / 304
62. 황천사상 / 306
63. 혼승백강설 / 312
64. 죽음에 대한 친숙함 / 317
65. 저승과 이승 / 321
66. 돌아가는 산 / 326
67. 4월 8일 / 332
68. 사이노가와라 / 337
69. 저승으로 가는 길 / 343
70. 장례의 목적 / 348
71. 두 세계의 경계 / 354
72. 강신가 / 358
73. 신을 업고 오는 사람 / 363
74. 영혼을 맞이하는 날 / 367
75. 최후의 일념 / 374
76. 소원풀이 / 379
77. 환생 / 385
78. 집안과 어린아이 / 390
79. 영혼의 회춘 / 395
80. 칠생보국 / 400
81. 두 가지 실제적 문제 / 404

해설 石井正己 / 409
역자 후기 / 414
색인 / 417

저자소개

야나기타 구니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75년 지금의 효고 현(兵庫縣) 후쿠사키 정(福崎町)에서 태어나 1962년 8월에 심장쇠약으로 사망하였다. 일본민속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민속학자뿐만이 아니라 고급행정관료, 문학자, 언론인으로서 다양한 삶을 살았다. 동경제국대학 법학대학 정치과를 졸업한 이후 1919년에 귀족원 서기관장을 사임하기 까지 법제국 참사관, 궁내 서기관, 내각서기관 기록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1920년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하여 후에 편집국 논설위원으로 사설을 담당하였다. 1921년에 국제연맹 위임통치위원에 취임하여 국제적인 활동을 하였다. 추밀원 고문관, 국립국어연구소 평의원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49년에 발족한 일본민속학회 초대회장을 맡았으며, 미국인류학협회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되었다. 민속학뿐만이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이들 대부분의 저작은 『定本 柳田國男集』(전31권, 별권 5권), 『新編 柳田國男集』(전12권), 『柳田國男全集』(문고판, 전32권), 『柳田國男全集』』(전36권, 별권 2권) 등의 전집에 집대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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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타 구니오의 다른 책 >
김용의 (옮긴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196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일본신화를 공부하였다. 일본의 오사카대학 대학원 석사 및 박사과정에서 일본문화학(민속학)을 전공하여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일설화의 비교, 오키나와문화, 일제강점기 문화변용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역서로 『일본의 민담』(역서), 『도노 모노가타리』(역서), 『유로설전』(역서), 『종교민속학』(공역), 『혹부리영감과 내선일체』(저서), 『일본설화의 민속세계』(저서), 『동중국해문화권』(공역), 『일본의 스모』(저서), 『오키나와 구전설화』(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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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머리말

이 책은 일본의 민속학자 야나기타 구니오가 저술한 『先祖の話』의 번역이다. 이제까지 나는 야나기타 구니오의 저작을 여러 차례 한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한 적이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그의 생애 및 학문적 업적에 대한 소개를 생략하기로 한다. 다음 번역본에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으므로 이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일본의 민담』(김용의 역, 2002, 전남대학교출판부), 『일본 명치ㆍ대정시대의 생활문화사』(김정례ㆍ김용의 공역, 2006, 소명출판), 『도노 모노가타리』(김용의 역, 2009, 전남대학교출판부). 이 중에서 특히 『도노 모노가타리』는 일본민속학의 출발을 알리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되며, 지금도 일본사회에서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설화집이다. 일본민속학이나 야나기타 구니오의 학문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선조 이야기』는 1946년 4월 15일 筑摩書房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판본이 간행되었다. 국내에서는 일찍이 최길성ㆍ노성환 교수의 공역으로 『선조 이야기』(1989, 광일문화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이번 번역에서는 주로 『定本 柳田?男集』第十卷(1962, 筑摩書房)에 수록된 텍스트를 저본으로 하여, 『新訂 先祖の話』(2012, 石文社), 『全文?破 柳田?男の先祖の話』(石井正己, 2015, 三?井書店)를 함께 참고하여 의미가 불분명한 문맥을 보완하였다.

『선조 이야기』는 모두 81장으로 구성되었다. 저자 야나기타 구니오가 일본인의 영혼관, 타계관, 조상관, 그리고 신에 대한 관념을 체계적으로 이론화를 시도한 대표적인 저작 중의 하나이다. 그에 따르면 일본인은 전통적으로 사후에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어 육신은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영구히 존속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혼이 언제까지고 특정한 개인의 영혼으로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선조의 영혼으로 융합하여 조령(祖靈)이라는 집단적 형태로 그 자손들과 교류하며 그들을 지켜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선조의 영혼 다시 말하자면 조령은 어디 먼 곳으로 가지 않고 자손들이 사는 마을 가까운 산속에 머무르며, 때로는 산신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논의 신이 되기도 하여 사후에도 자손들을 지켜주는 존재이다.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야나기타 구니오가 『선조 이야기』에서 전개한 조령 이론은 일종의 ‘야나기타 구니오의 신학’에 가까운 이론체계이다. 특히 그의 이론은 일본군국주의의 상징적 종교시설인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의 존립에 학술적ㆍ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위험성을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이는 내가 『선조 이야기』의 한국어 번역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이론에 내포된 ‘사상적 위험성’ 때문인지, 그의 이론에 대해서는 일본 국내에서도 연구자들 사이에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이 점에 관해서는 도쿄가쿠게이 대학(東京學藝大學) 이시이 마사미(石井正己) 교수의 해설 「한국어 역 『선조 이야기』의 발간에 즈음하여」를 이 책에 부록으로 수록하였으므로 함께 참고하기 바란다.

이 책의 번역을 시작한 이래 여러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2015년 1학기 대학원 수업에서 일본어 원서를 함께 읽으며 토론에 참여했던 대학원생들에게 먼저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대학원생들과의 토론 덕분에 이 책의 논지를 더욱 분명하게 파악할 수가 있었다. 도쿄가쿠게이 대학의 이시이 마사미 교수에게 감사드린다. 이시이 마사미 교수는 일본에서 가장 활발하게 야나기타 구니오를 연구해온 연구자 중의 한 사람이다. 마침 2015년 12월에 『선조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풀이한 『全文?破 柳田?男の先祖の話』라는 해설서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이번에 내가 『선조 이야기』를 번역하여 출판하면서 그 「해설」을 써달라고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승낙하셨다. 교정단계에서 이번에도 대학원생 차주연씨의 도움을 받았다. 싫은 내색도 없이 꼼꼼하게 문장을 읽어준 그녀의 성실함이 고마울 따름이다. 인쇄 직전에 아내 강경희가 원고를 읽으며 오탈자를 교정해 주었다. 흰눈이 덮인 무등산 근처에서, 함께 원고를 읽으며 마신 커피 맛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끝으로 편집과정에서 필자의 미흡한 부분을 채우느라 애쓰신 전남대학교출판부의 편집부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16년 1월 무등산 기슭에서
김용의


1. 두 가지 해석

일본에서는 ‘선조’라는 말을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이해한다.
대체로 이를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한편으로, 우선 문자를 통해서 이 말을 알게 된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보통 맨 처음에 가문을 일으킨 한 사람만을 선조라고 생각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주 오래 전 시대에 활약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문자면에서는 조금도 무리가 없는 해석이며, 또 가끔 이야기에 등장하는 것도 그처럼 이름이 알려진 사람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가계도에 맨 처음으로 이름이 적힌 인물을 가리켜 ‘선조는 누구누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 어릴 때부터 이 말을 듣고 옛날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나중에 문자를 이해하고 그 용법을 배우게 되었더라도 결코 그러한 식으로 선조라는 말을 이해하지는 않는다.
양자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선조는 반드시 제사(祭)를 지내야 하는 존재, 그리고 자신들의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제사를 지내주지 않을 영혼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즉 선조는 반드시 각각의 집에 속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 점에 대해 명백히 단언한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 심정은 언제나 이 말을 사용할 때에 드러난다. 그 점을 나는 아주 오랫동안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다음의 사례는 내가 최근에 경험한 일이다. 이바라키 현(茨城縣) 우치하라(內原)라는 곳에 있는 농민도량(農民道場)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독농가(篤農家)들 중에서, 특히 구가(舊家)의 주인만을 각 현(縣)에서 십여 명씩 초대하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이 이십 몇 대째가 된다고 하는 사람의 경우가 오래된 편이고, 그 밖에는 대부분이 십오 대 또는 십팔 대가 고작이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만이 육십 몇 대째 내려오고 있다고 대답을 하였다. 깜짝 놀라 자세히 물어 보았더니 그 집안은 아주 상세히 기록된 가계도가 있어서, 간무 천황(桓武天皇) 때부터 세대를 계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헤이시(平氏)는 간무 천황에서 비롯되었다. 일본 전국에 흩어져 있는 다이라라는 성(姓)을 가진 집안은 모두 그 후예들이라는 사실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외람되게도 천황의 조상이기 때문에 천황가의 적통 이외에는 간무 천황을 세대에 넣어서 헤아리는 집안도 없거니와 제사를 지내는 집안도 없는 것이다.
간혹 이 같은 혼동이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서로 다른 두 가지의 해석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문자 교육이 진전됨에 따라 전자의 의미가 강하게 침투하였지만 사실 이 같은 해설은 새롭고 단순하다.
그 때문에 나는 주로 다수의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 어느 때부터라고 할 것도 없이 옛날부터 그렇게 정하고서 게다가 확실하게 그것을 기록하지도 않고, 따라서 세상이 변해감과 동시에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점차로 잘못 될 지도 모르는 옛날의 무학자들의 해석에 주력하여 쏟아 설명해보고자 한다.


2. 한 가지 작은 실제 사례

일본에는 후지와라(藤原)라는 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헤이케(平家) 집안의 다이라(平) 성을 사용하는 사람들보다도 몇 배나 많다.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경우만도 몇 십만이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백만이 넘을지도 모른다. 예부터 후지와라 성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유력한 정치가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사례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나라(奈良)에 있는 가스가 대사(春大日社)와 가와치(河內)에 있는 히라오카 대사(枚岡大社) 이 두 곳의 관폐대사(官弊大社)를 비롯하여 이를 권청(勸請)하여 여러 지방의 신사(神社)에서 제사를 지내는 아마쓰고야네노미코토라는 신의 후예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신을 후지와라 집안의 선조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후지와라라는 성을 조정에서 하사받은 가마타리(鎌足)가 저명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후지와라씨도 그 후예가 아닌 사람은 없는데 가마타리를 선조로서 제사 지내고 있는 집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가마타리의 손자의 대에 남자가 네 명 있어서, 그 네 명이 집안을 사분하여 그 중 어느 쪽도 본가라고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북(北)의 후지와라에 후사사키(房前)라는 사람의 자손들이 특히 번창했다. 그래서 특히 많은 집안들이 북가(北家)의 가계로부터 분립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쪽이나 모두 그 집안을 일으킨 사람 이후를 선조로서 제사 지냈던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존비분맥(尊卑分脈)』이라는 책에 상세히 나와 있다. 간토(關東) 지방의 시골에서는 야마카케류(山蔭流) 또는 우오나류(魚名流)라는 계통의 집안이 특히 많았다.
나의 집안도 우오나류의 조그마한 분가이기 때문에 실제의 예를 말할 수가 있다. 우오나류 중에서도 특히 유력하고 수가 많았던 집안은 내가 속해 있는 히데사토류(秀鄕流)라는 일파이다. 일찍이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將門)를 공략하여 멸망시킨 다와라노도타 히데사토(田原藤太秀鄕)를 유파의 시조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그렇지만 본가가 어디에 있어서 히데사토(秀鄕)를 제사 지내고 있는지는 오랫동안 불확실하다.
오슈의 히라이즈미(平泉) 지방에서 삼대에 걸쳐 더 없는 영화를 누렸다는 사토(佐藤) 집안도 히데사토에서 갈라진 일파이다. 지금도 간토ㆍ도호쿠(東北)에는 이 성을 가진 구가(舊家)가 매우 많고, 그 때문에 이들을 또한 사토류(佐藤流)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물론 다와라노도타의 자손집안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체로 지금의 도치기 현 남부와 가나가와 현(神奈川縣) 서부에 이 집안사람들이 많다. 전자에는 아시카가(足利)[다하라(田原)]ㆍ사노(佐野)ㆍ오야마(小山)ㆍ유키(結城)ㆍ나가누마(長沼), 후자에는 하타노(波多野)씨가 있고 마쓰다(松田)ㆍ가와무라(河村) 등도 역시 이쪽에서 나왔으며 어느 쪽이고 본가는 가마쿠라(鎌倉)시대의 다이묘(大名)였다.
야나기타(柳田)라는 나의 일족은 이 가와무라(河村) 집안의 일파라고 한다.
게다가 결코 본가가 아니라 실제로 도치기 현 쪽으로 본거지를 옮긴 후에도 야나기타라는 성을 가진 집이 수십 채나 되었으며, 거기서 일부는 다시 갈라져 군마 현(群馬縣)의 여러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더욱 서쪽으로 진출하여 신슈(信州) 북부지역까지 이주했다. 그래서 나의 집에서 선조로 모시고 있는 것은 다와라노도타 히데사토(田原藤太秀鄕)가 아닌 것은 물론, 최초로 하타노(波多野)ㆍ마쓰다(松田)ㆍ가와무라(河村) 등의 가문을 일으킨 사람들도 아니다. 또한 그 가와무라에서 분가하여 야나기타 일문을 일으킨 제1대 조상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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