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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해양학

새로운 해양학

이문옥 (지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7-08-30
  |  
28,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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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해양학

책 정보

· 제목 : 새로운 해양학 
· 분류 : 국내도서 > 과학 > 지구과학 > 해양과학
· ISBN : 9788968494291
· 쪽수 : 548쪽

책 소개

해양학은 물리, 화학, 생물, 지질 등 크게 4개 분야로 구성되어 있는 종합적인 학문으로, 일반해양학과 연안해양학으로 나누어져 있다. 학부 과정의 학생들에게는 일반해양학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되며, 연안해양학은 대학원 수준이나 해양관련 실무 종사자 등이 참고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목차

제1편 일반해양학
제1장 해양학의 정의와 발전 역사 / 14
제2장 물의 혹성 / 34
제3장 해분의 기원 / 50
제4장 해양의 퇴적작용 / 70
제5장 해수의 성질 / 113
제6장 대기와 해양간의 상호작용 / 150
제7장 해양 순환 / 168
제8장 바다의 파 / 203
제9장 조석 / 218
제10장 연안역 / 246
제11장 해양 생물과 해양 환경(해양생태학) / 289
제12장 생물 생산력과 에너지 전이(해양의 생물 생산성) / 316
제13장 바다의 생물 / 356
제14장 해양과 기후 변화 / 382
제15장 해양 자원과 해양에 있어서의 인간 활동 / 395

제2편 연안해양학
제1장 해양에서의 물질 순환과 수송 / 410
제2장 이류의 기초방정식 / 436
제3장 잔차류 및 조석 잔차류 / 441
제4장 밀도류 / 448
제5장 취송류 / 460
제6장 확산과 분산 / 470
제7장 해수 교환과 물질 수송 / 420
제8장 해양 생태계와 생태계 모델링 / 490

찾아보기 / 536

저자소개

이문옥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2년 10월 경남 사천에서 출생 1976년 2월 부산수산대학 어업학과 졸업 1982년 2월 부산수산대학 대학원 수산물리학과 수료(수산학석사) 1988년 3월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 공학연구과 박사과정 토목공학전공(수공학) 수료(공학박사) 1978년 4월~1981년 6월 부산해양고등학교 항해과 교사 1981년 6월~1983년 9월 부산수산대학 해양공학과 조교 1983년 10월~2006년 2월 여수대학교 해양토목공학과 및 해양공학과 교수 1991년 6월~1992년 7월 영국 University of Bradford(Water Engineering Laboratory Roger A. Falconer 교수) 방문교수 2002년 9월~2003년 9월 스코틀랜드 University of Strathclyde(Environmental Hydraulics Laboratory Graham A. Copeland 교수) 방문 교수 2006년 3월~2018년 8월 전남대학교 수산해양대학 해양기술학부 조선해양공학전공 교수 2018년 9월 현재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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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장 해양학의 정의와 발전 역사

1-1 해양학의 정의

해양학(海洋學, oceanography)이란 말은 그 단어의 전반은 그리스어의 Okeanos 또는 Oceanus로, 그리스 신화에 있어서의 Gaea와 Uranus의 아들 Titan족의 한 사람인 바다의 신의 이름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편, Okeanos는 바다의 요정 Oceanids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후 이 말은 Heracules의 기둥(Gibraltar 해협)을 넘은 바다, 즉 북대서양에 대해서도 사용되게 되었다. 또한, 해양학 oceanography라는 단어의 후반은 기록과 기술(記述)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graphia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oceanography라고 하는 단어는 바다의 과학을 나타내기에는 불충분하다. 왜냐 하면, 과학자는 바다에 대하여 단순히 물리적, 화학적, 지질학적, 생물학적인 특성을 기록하는 이상의 것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양학자는 가장 근대적이며 세련된 과학적, 수학적인 기술을 사용하여 조사하고, 해석하며, 해양의 과정에 대하여 여러 가지 모형(model)을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는 oceanology(여기서 ~ology는 ~의 과학이라고 하는 의미임)라고 하는 쪽이 어원적으로는 보다 정확하다. 이 oceanography와 oceanology와의 차이는 지리학 geography(세계의 물리학적 기록과 그 생물상의 설명)와 지질학 geology(지구와 그 과정의 과학적인 연구)와의 차이와 닮아 있다. 그러나 oceanography라고 하는 말은 서양에서는 과학자에게도 일반인들에게도 넓게 퍼져 있기 때문에 oceanology로 바꾸지는 않았다. 그래서 여기서는 관습에 따라 바다의 과학적인 연구를 의미하는 용어로서 친숙한 쪽의 말을 사용하기로 한다.
해양학에 대하여 자주 있는 오해 중의 하나는 이 학문이 특별히 조사 방법을 몸에 익히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순수한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 대부분의 해양학자는 우선 전통적인 과학(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질학) 중의 하나 또는 거기에 관련된 분야(공학, 기상학, 수학, 통계학, 컴퓨터 과학 등)를 습득하고, 그 전문적 지식을 바다의 연구에 사용한다. 학부 학생 때 전통적인 과학을 몸에 익힌 후 대학원이나 해양연구소에서 바다의 연구를 행한 경험을 쌓는 것이다. 최근에는 해양 정책 및 관리, 해양법규, 자원 및 환경조사 등 관련분야에서의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생겼다. 일반적으로 바다 연구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과학자, 수학자, 엔지니어, 기술자 그리고 정책입안자 사이에서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해양학은 보통 물리학, 지질학, 화학, 생물학의 네 가지 분야로 나누어진다. 이들 분야는 지구화학, 생화학, 지구물리학, 생물물리학 등 학제적 분야에 의해 서로 연관되어 있다.

1-2 해양학의 발전 역사

해양학 역사는 언제나 서서히 계획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며, 과거의 지식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대담한 개념과 의견에 의해 이것이 해양연구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해양학 발전의 역사는 크게 세 가지로 그 시기를 나눌 수 있다. 우선 제 1기에는 지구의 바다와 대륙의 지리를 기록하려고 하는 선원들에 의한 초기의 시도가 있었다. 이 대항해시대에는 세계의 극히 한정된 장소만이 조사가 이루어졌다. 제 2기에는 바다를 자세히 조사하기 위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제 3기에는 최신기술의 폭넓은 이용과 과학자의 국제적인 협력에 의해 근대적인 해양학이 탄생하고 발전하였다. 여기서는 이들 시기에 있어서의 중요한 항해와 연구의 일부를 소개한다.

가. 해양탐사
몇 만 년 전부터, 인류는 바다로 노를 저어 나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오스트레일리아의 조상은 용기, 기술, 결단력을 필요로 하는 믿음이 굳은 위업에 의해 대략 4-6만 년 전에는 원양항해용의 배로 오스트레일리아를 건너갔다. 기원전 폴리네시아 사람들은 태평양의 크고 작은 섬들을 이동하는 방법을 터득하였다(그림 1-1). 이것은 많은 점에서 지금까지 가장 장대한 탐험의 하나로 평가받을 수 있다. 항해에 적합한 이들 배는 암석, 뼈, 산호 등의 단순한 도구로 만들어졌으며, 섬에서 섬으로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 선원들은 전해 내려오는 조선술이나 각지의 상세한 정보를 하나의 항해술로서 이용하였다.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서사시의 암창(暗唱)에 의해 말로서 전해졌다. 폴리네시아의 선원들은 몇 백 킬로, 때로는 수천 킬로 가까운 외양항해를 계획할 때 사용하는 별의 위치와 마찬가지로, 각지의 바람, 파, 흐름, 일기변화에 대하여 상세한 구전(口傳)을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한편, 범선의 기록보다 훨씬 이전인 기원전 4,000년경의 이집트 선원들의 능력을 알 수 있다. 당시 항해는 필시 지중해의 동쪽이나 나일강 부근으로서, 선원이 육지를 볼 수 있는 범위에 한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페니키아인은 이미 기원전 6세기에 지중해 전역과 상업을 하기 위해 항로를 만들고 또한 대서양까지 진출하여 훨씬 북쪽의 영국의 콘윌(Cornwall) 해안까지 항해하고 있었다. 역사가들은 기원전 600년경 페니키아인이 최초로 아프리카대륙을 일주하였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확한 항해는 힘들었을 것이다. 항해사는 별에 따라 배의 항로를 그림으로 나타내었고, 해안이 보일 때는 선원은 눈에 띄는 지형을 의지하면서 항로나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배를 몰았음에 틀림없다.
기원전 3세기경 그리스 문명에서는 무역을 위해 지중해를 왕래하고, 지중해 전역으로 그 위력과 지배력을 확립하였다. 이것은 해사(海事)의 뛰어난 능력에 의한 것이 컸다. 당시 유명한 해양탐험가는 Pytheas로서, 영국을 일주하여 해안선의 길이를 측정한 최초의 그리스인이다. 그의 손에 의한 항해기록은 현재 남아 있지는 않으나, 다수의 역사가들은 그가 북쪽의 노르웨이 주변이나 서쪽의 아이슬란드 주변까지 항해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역사가들은 또한 그리스 선원이 하루의 길이로부터 일년의 시간을 보정하여 위도를 예측한 것을 인정하고 있다. 단, 기계식의 시계(정확한 시계)없이 위도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대서양의 조석이 달의 차고 기우는 것과 함께 규칙적으로 변화한다고 하는 Pytheas의 발견은 그가 해양 과정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한편, 기원전 450년 Herodotus에 의해 편집된 지도는 그리스인의 세계지리에 대한 이해의 범위를 나타내고 있다(그림 1-2). 큰 지중해가 지구의 중앙에 있고, 리비아(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의 세 개의 거대한 육지가 이를 둘러싸고 있다. 극지나 리비아 이외의 대륙의 해안선은 당시에는 아직 탐험하지 않아서, 지도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익숙한 모든 육지는 그리스인이 세계 끝까지 계속 이어져 있다고 믿었던 광대한 해양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중세(500-1450)에는 바이킹 이외의 유럽인에 의한 해양탐험은 거의 없었다. 9-12세기 사이에 고대 스칸디나비아인은 그들의 영향력을 유럽 중에 넓히고, 새로운 섬들을 획득하면서 대서양을 건넜다. 예를 들면,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바핀 섬(Baffin Islands)을 건넜고, 더욱이 북아메리카의 현재의 뉴펀들랜드에 해당하는 장소에 빈랜드(Vinland)라 불리는 북아메리카 정착지(settlement)를 만들었다. 바이킹에 의한 이러한 변경의 토지는 엄한 기후 때문에 나중에는 버려졌다. 또한, 소빙기(1430-1850) 초기에는 해빙의 대규모적인 증가가 스칸디나비아로부터 북쪽 항로를 절단하였다.
당시 서양에서 가장 숙련되고 경험이 풍부한 해양탐험가였던 그들 고대 스칸디나비아인은 미리 정해진 위도에 항로를 유지하고 서쪽으로 도는 배를 진출시킬 수 있었다. 그들은 노르웨이의 해안을 따라 진출하여, 북극성과의 고저각을 재는 것에 의해, 이 위업을 달성하였다. 그들은 한밤중 우현의 선량(船梁)을 같은 방위로 유지하고, 낮에는 연간의 태양 위치를 자세히 계산하였다. 북대서양에 대한 바이킹의 이와 같은 놀라운 지리적 지식은 1570년경 제작된 지도가 잘 보여준다.
15-16세기에는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인 동기가 서유럽인을 긴 해양탐사로 이끌었다. 그들은 대서양을 건너, 그리고 태평양으로 들어갔다. 이 무렵의 탐험에 특히 성공한 것은 포르투갈 선원들이다. 1487년과 1488년에 Bartholomew Diaz는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았고, 1498년에 마찬가지로 희망봉을 돈 Vasco daGama는 더 나아가 동방의 인도에 도달하였다. 아마 당시의 최고 업적은 Ferdinand Magellan에 의한 지구의 일주일 것이다. 1519년 9월 하순, 오래 사용한 다섯 척의 작은 선단과 함께 스페인을 출항한 마젤란은 브라질 북동부의 해안을 향해 남서방향으로 진출하였다(그림 1-3). 태평양으로의 항로를 찾는 도중 그는 한 척의 도망을 포함하여 두 척의 배를 잃었다. 스페인을 출발하여 거의 1년 후, 마젤란은 뒤에 그의 이름이 붙여진 폭 약 500km의 해협을 발견하였고, 남아메리카를 돌아서 태평양으로 들어섰다. 계속된 3개월은 기아와 병, 그리고 미지의 공포와 괴로움 등 마젤란과 그 승조원들에게 있어서는 절망적인 상황에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1521년 3월 6일에 괌(Guam)에 도착하였고, 월말에는 필리핀까지 진출하였다. 그러나 그 지방의 종족의 싸움에 휘말린 마젤란은 막탄 섬(Mactan island)이라고 하는 작은 섬에서 4월 27일 죽임을 당하였다. 나머지 승조원과 선장 Sebastian del Cano는 이러한 뜻하지 않은 고난 중에도 세계를 일주한 후, 원정대에 남겨진 최후의 한 척인 빅토리아호로 1522년 9월 8일 스페인에 도착하였다. 원정 출발 당시 230인의 승조원 중 단지 18인만이 세빌(Seville)에 귀환하였으며, 이로써 3년간의 지구일주항해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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