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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으로 읽는 노자 도덕경

文으로 읽는 노자 도덕경

양회석 (지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8-12-25
  |  
1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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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으로 읽는 노자 도덕경

책 정보

· 제목 : 文으로 읽는 노자 도덕경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인문계열 > 철학
· ISBN : 9788968495748
· 쪽수 : 384쪽

책 소개

노자는 누구나 다 아는 도가를 대표하는 중국 고대의 철학적인 저술이다. 저자는 노자를 접하고는 먼저 그 종교적인 성격을 깨닫고 “철학보다는 종교에 오히려 더 가깝다.”고 말하고 있다.

목차

도경(道經)
제1장 상도(常道) / 19
제2장 유무상생(有無相生) / 27
제3장 위무위(爲無爲) / 33
제4장 만물지종(萬物之宗) / 38
제5장 천지불인(天地不仁) / 42
제6장 현빈(玄牝) / 46
제7장 천장지구(天長地久) / 50
제8장 상선약수(上善若水) / 53
제9장 공수신퇴(功遂身退) / 58
제10장 영백포일(營魄抱一) / 62
제11장 무지위용(無之爲用) / 66
제12장 오색목맹(五色目盲) / 70
제13장 총욕약경(寵辱若驚) / 75
제14장 무상지상(無狀之狀) / 81
제15장 선위도자(善爲道者) / 87
제16장 허정(虛靜) / 91
제17장 아자연(我自然) / 96
제18장 대도폐(大道廢) / 100
제19장 현소포박(見素抱樸) / 102
제20장 절학무우(絶學無憂) / 106
제21장 도지위물(道之爲物) / 112
제22장 곡즉전(曲則全) / 117
제23장 희언자연(希言自然) / 122
제24장 기자불립(企者不立) / 126
제25장 도법자연(道法自然) / 129
제26장 중위경근(重爲輕根) / 136
제27장 습명(襲明) / 139
제28장 대제불할(大制不割) / 143
제29장 천하신기(天下神器) / 147
제30장 부도조이(不道早已) / 151
제31장 병자불상(兵者不祥) / 155
제32장 도상무명(道常無名) / 160
제33장 사이불망(死而不亡) / 164
제34장 공성불유(功成不有) / 167
제35장 대상(大象) / 170
제36장 미명(微明) / 173
제37장 도상무위(道常無爲) / 177

덕경(德經)
제38장 상덕부덕(上德不德) / 183
제39장 득일자(得一者) / 190
제40장 유생어무(有生於無) / 195
제41장 도은무명(道隱無名) / 197
제42장 교부(敎父) / 202
제43장 무위유익(無爲有益) / 206
제44장 지족불욕(知足不辱) / 209
제45장 대교약졸(大巧若拙) / 213
제46장 지족상족(知足常足) / 217
제47장 불행이지(不行而知) / 220
제48장 위도일손(爲道日損) / 223
제49장 무상심(無常心) / 226
제50장 출생입사(出生入死) / 229
제51장 도생덕휵(道生德畜) / 235
제52장 습상(襲常) / 239
제53장 도우(盜竽) / 243
제54장 선건불발(善建不拔) / 247
제55장 함덕지후(含德之厚) / 251
제56장 화광동진(和光同塵) / 256
제57장 무위자화(無爲自化) / 260
제58장 화복(禍福) / 266
제59장 막약색(莫若嗇) / 270
제60장 약팽소선(若烹小鮮) / 273
제61장 대자의하(大者宜下) / 276
제62장 만물지오(萬物之奧) / 280
제63장 대소다소(大小多少) / 285
제64장 욕불욕(欲不欲) / 289
제65장 선위도자(善爲道者) / 294
제66장 백곡왕(百谷王) / 298
제67장 삼보(三寶) / 301
제68장 부쟁지덕(不爭之德) / 305
제69장 애자승(哀者勝) / 308
제70장 피갈회옥(被褐懷玉) / 311
제71장 지부지상(知不知上) / 315
제72장 민불외위(民不畏威) / 318
제73장 용어불감(勇於不敢) / 321
제74장 사살자(司殺者) / 326
제75장 식세지다(食稅之多) / 329
제76장 생사지도(生死之徒) / 332
제77장 유여손지(有餘損之) / 335
제78장 정언약반(正言若反) / 339
제79장 유덕사계(有德司契) / 343
제80장 소국과민(小國寡民) / 347
제81장 신언불미(信言不美) / 353

<부록 1> 음운과 원문 / 359
<부록 2> 노자 열전 / 381

저자소개

양회석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으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명예교수이다. 중국 복단대학과 양주대학, 일본 교토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다. 저술로≪장자 내편-도와 함께 하는 웅혼한 삶≫, ≪장자 외편-젊은철인의길찾기≫, ≪노자 도덕경-아름다운 말 성스러운 길≫, ≪도연명 전집 1ㆍ2≫(공저), ≪고시원-한시의 근원을 찾아서 1ㆍ2ㆍ3≫(공저), ≪인문에게 삶의 길을 묻다≫, ≪서상기≫(역서), ≪소리없는 시, 소리 있는 그림≫, ≪어느 동양학자의 산띠아고 까미노≫ 등, 다수의 저ㆍ역서와 논문이 있다. 한국중국희곡학회 회장, 중국인문 학회 회장, 전남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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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제1장 상도(常道)

道, 可道, 非常道; (흔히) 도라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지.
도 가도 비상도
名, 可名, 非常名.1) (흔히)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 아니지.
명 가명 비상명

無, 名天地之始; ‘무’는 천지의 시초를 이르네.
무 명천지지시
有, 名萬物之母.2) ‘유’는 만물의 어미를 이르네.
유 명만물지모(미)

故 그러므로

常無, 欲以觀其妙; 영원한 무, 이로써 그 오묘함을 보리라.
상무 욕이관기묘
常有, 欲以觀其요.3) 영원한 유, 이로써 그 운행함을 보리라.
상유 욕이관기요

此兩者, 이 두 가지는,
차양자
同出而異名, 같이 나와 달리 부르니,
동출이이명,
同謂之玄. 함께 그걸 가마득함이라 하네.
동위지현,
玄之又玄, 가마득하고 또 가마득하니,
현지우현,
衆妙之門.4) 갖가지 오묘함의 문이라네.
중묘지문(면).

【문장 구성】
네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단락은 구중운(句中韻)으로 道와 名이 각각 세 번 반복하여 압운하고 있다(重韻). 또 두 구가 대구를 이루고 있다. 두 번째 단락도 역시 대구로 이루어지고, 始와 母(母婢切)로 압운하고 있다. 세 번째 단락 역시 대구이고, 妙와 요로 압운하고 있다. “常○, 欲以觀其△”의 형식으로 대부분 글자가 반복되고 있으니, 두운(頭韻)과 구중운(句中韻)으로 보아도 좋다. 네 번째 단락은 전체적으로는 산문이나, 玄과 門(民堅切, 音眠)은 각운(脚韻)이다.

【자구 풀이】
1) 첫 번째와 세 번째 ‘道’는 명사이고, 두 번째의 ‘道’는 동사이다. ‘常’은 형용사로 변치 않고 영원하다는 의미이므로, ‘常道’는 영원한 도, 즉 노자가 생각하는 참된 도(우주의 본원이자 규율)를 가리킨다(제16장 復命曰常, 知常曰明. 제55장 知和曰常, 知常曰明. 참조). ‘可道’ 앞에 의미상 생략된 주어는 세상 사람들이다. 세상 사람들이 도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라는 의미다. “名, 可名” 이하 역시 앞의 문구와 동일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명사 ‘名’은 道에 대한 이름 즉 각종 설명이나 형용을 가리킨다. 세상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도에 대한 설명이나 이름은 참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2) 이 문구는 위와는 다르게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라고 끊어 읽기도 한다. 이는 천지가 시작되기 전에는 사물이 없었으므로 당연히 이름이 없고, 만물이 형성된 뒤에 이름이 있게 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이지만, 뒤의 문구 “此兩者, 同出而異名”과의 맥락을 감안하면 타당하지 않다. 즉 ‘異名(달리 이름 한다)’라 하였으니. ‘이름이 있다 없다’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기서 ‘有’와 ‘無’는 【해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도의 양면성을 가리킨다.
3) 이 문구 역시 “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 以觀其요.”로 끊어 읽기도 하지만, 2)와 마찬가지 이유에서 타당하지 않다. ‘常無’와 ‘常有’는 2)에서 이미 제시한 ‘無’와 ‘有’에 ‘常’을 첨가함으로써, 그것이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도의 양면을 지칭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妙’는 ‘정미(精微)’ 또는 ‘오묘(奧妙)’로 인간의 감각으로는 쉽게 인지할 수 없지만 영원히 변치 않고 존재하는 도의 특성을 가리킨다(제25장 寂兮寥兮, 獨立而不改. 설명 참조). ‘요’는 ‘순행(巡行)’의 뜻으로 삼라만상에 두루 작용하는 도의 특성을 가리킨다(제25장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설명 참조).
4) ‘此兩者’는 無(즉 常無)와 有(즉 常有) 두 가지. 이것들은 비록 각각 다르게 부르지만 사실은 도의 양면에 불과하다. 마치 우리가 ‘손바닥’과 ‘손등’으로 나누어 말하지만, ‘손’의 양면일 뿐 절대로 나눌 수 없는 것과 같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검으면서 붉은 빛을 띤 것이 玄이다(黑而有赤色者爲玄).” 라 하고, ≪천자문(千字文)≫에서는 “하늘과 땅은 玄하고 누렇다(天地玄黃).” 라 하였으니, ‘현(玄)’은 하늘의 빛깔(아마도 저물녘 노을과 함께 저물어 가는 하늘빛)과 관련됨을 알 수 있다. 장자에 의하면 하늘은 너무 멀어서 다함이 없기에(함께 읽을 자료 참조), ‘현’은 나아가 가물가물하여 헤아릴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게 된다. 한편 ‘현’의 갑골문은 호리병박을 본뜬 글자로 여성의 생식기를 상징한다는 설, 여울목을 본뜬 글자라는 설 등이 있다. 아무튼 갑골문 속 ‘현’은 무언가 두 가닥이 꼬여 하나가 되는 모양을 하고 있다. ‘현지(玄之)’의 지(‘之)’는 형용사나 동사의 어미로 의미가 없다.

【해설】
제1장은 노자의 총론이다.
도는 원래 사람들이 다니는 물리적인 길(참고 자료 참조)을 가리키는 평범한 의미에서 시작하여, 점차 ‘방법’ ‘도리’ ‘원리’ 등 추상적인 뜻으로 확대되었다. 아래 참고 자료를 보면, 갑골문에서 원래 ‘人’과 ‘行’으로 이루어진 것에서 훗날 금문과 소전에서는 ‘首’와 ‘착’로 바뀌고 있는데, 이러한 자형의 변화는 바로 글자의 뜻이 인신(引伸)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세상 사람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도를 들먹인다. 그러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도는 일정한 시간과 공간이라는 범주 안에서만 타당할 뿐,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 ≪論語ㆍ里仁≫)라 하였던 공자(孔子)의 도도, 그것이 충(忠)과 서(恕)일 따름(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論語ㆍ里仁≫)이라면, 사람의 도 즉 ‘人道’에 지나지 않으니, 노자가 말하는 상도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름 ‘名’은 ‘夕’과 ‘口’의 합자로, 어두워져 몸짓이 보이지 않자 입으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뜻이니(참고 자료 참조) 곧 언어이다. 우리는 흔히 언어가 곧 진리라는 착각을 하고 산다. 그렇지만 우리가 쓰는 언어는 제한된 시공간 안에서 통행되는 방편에 불과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꽃’이라고 부르는 것을, 영어로는 flower, 스페인어로는 flor라고 하고, 중국어로는 ‘후아(花)’, 일본어로는 ‘하나(はな)’라고 하는데, 이처럼 언어는 우선 공간의 제한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꽃’을 ‘곶’이라 불렀듯이 시간의 제한도 받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름들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상명(常名)’이 될 수 없다. 한편 여기서 이름은 道에 대한 이름, 즉 각종 설명이나 형용을 가리키므로, 세상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도에 대한 설명이나 형용은 영원불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도 된다. 예컨대 공자가 그토록 중시했던 ‘정명(正名)’도 마찬가지이다(함께 읽을 자료 참조). 이상이 첫 단락의 내용이다.
노자가 말하는 도는 우주의 본원이자 규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도는 영원하다. 다시 말해 상도(常道)이다. 상도는 본래 언어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로 설명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아이러니이다. 노자는 어쩔 수 없이 말로 설명을 시도한다. 도를 설명하는 방편으로서 이름을 짓는데, ‘천지의 시초’를 ‘무’라 하고, ‘만물의 어미’를 ‘유’라 명명한다. 노자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출발이다. 차츰 알게 되겠지만, ‘천지의 시초’는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의 ‘혼돈’을 지칭한다. 여기에서 삼라만상이 나오므로 그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는 가능태로서 ‘무’이다. 갑골문자 ‘무(無)’는 양손에 깃털 막대기 같은 도구를 들고 있는 사람을 본떴고, ‘유(有)’는 손으로 고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본떴다(참고 자료 참조). 사냥을 나가기 전에 기원의 춤을 추고 또 짐승을 잡은 뒤 고기를 들고서 기뻐 춤을 추고 있는 태곳적 인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들은 원래 ‘사냥’이란 삶을 구성하는 행위의 양면이었다. 그들에겐 고기를 들고 있는 ‘유’ 못지않게, 소원과 성취를 나타내는 ‘무’도 중요했으리라. 이상 둘째 단락이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무와 유는 양립할 수 없다. 현실 생활 속에서 있고 없음은 엄연히 구별된다. 그러나 상도의 차원에서 보면 무와 유는 하나이다. 즉 도의 양면일 뿐이다. 그래서 그것을 ‘상무’와 ‘상유’라 부른다. 도는 감각기관으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보면 도는 상무이다. 그러나 도의 구현인 삼라만상 속에서 그것이 본원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것이 상유이다. 그러므로 상무라는 관점에서 도의 오묘한 이치를 보고자하고, 상유라는 관점에서 도가 두루 운행함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상 셋째 단락이다.
상유로서의 ‘유’와 상무로서의 ‘무’는 도의 양면이다. 그 본원은 하나이나 이름을 달리 할 뿐이다. ‘없으면서 있다’ 또는 ‘다르면서 같다’는 식의 인식은 현실적인 차원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오직 도의 차원에서 보면 성립한다. 전혀 다른 것이 가마득한 거리에서 보면 같은 것으로 보이듯이 말이다. 그래서 그것을 ‘현’이라 한다. 현(玄)이란 글자의 원의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지만, 갑골문을 보면 무언가 두 가지가 하나로 꼬여 있는 모습이어서, 둘이면서 하나라는 느낌을 준다. 앞면과 뒷면의 구별이 없고 좌우의 방향을 정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킨다(참고자료 참조). 없음과 있음, 안과 밖이 하나인 ‘무엇’이 바로 도이다. 그 도에서 온갖 오묘한 현상이 나오는 법이다. 이상 넷째 단락이다.
가장 핵심적인 장이나 아직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터이지만 서두를 필요 없다. 읽다보면 차츰 머리가 끄덕여 질 것이다. 특히 제25장과 겹쳐서 읽어보면 노자가 설정하는 도가 무엇인지가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질 것이다. 이상 논의된 바를 도표로 간단히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함께 읽을 자료】
≪장자ㆍ소요유≫ 아지랑이나 뿌연 먼지는 생물들이 숨으로 서로 불어대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은 푸르고 푸를 따름이니 그것이 원래 빛깔일까? 너무 멀어서 다하는 바가 없기 때문일까? 붕(鵬)새가 아래를 내려다본다면 역시 그러하고 말리라.

≪논어ㆍ자로≫ 자로가 여쭈었다.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모셔 정치를 맡기면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선생님이 대답하셨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 잡아야지(正名)!” 자로가 말했다. “이러셨군요. 선생님의 답답하심이! 어째서 그것부터 바로잡습니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촌스럽구나, 유 너란 놈은! 군자는 자신이 모르는 바에 대해서는 잠자코 있는 법이야.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지 않고, 예악이 일지 않으면 형벌이 맞지 않게 되지. 형벌이 맞지 않으면 대중은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되지.”

≪시자ㆍ신명≫ 공자가 승모(勝母)에 이르렀는데 해가 저물었으나 숙박하지 않았고, 도천(盜泉)을 지나가는데 목마르나 마시지 않았으니, 그 이름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道(갑골문) 道(금문) 道(소전)
名(갑골문) 名(금문) 名(소전)
無(갑골문) 無(금문) 無(소전)
有(금문) 有(소전) 有(해서)
玄(갑골) 玄(소전) 뫼비우스의 띠

【스스로 써보기】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요.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제2장 유무상생(有無相生)

天下 천하 사람들이
천하
皆知美之爲美, 모두 예쁨을 예쁘다 할 줄 알자,
개지미지위미
斯惡已; 이에 미워지고 말았다.
사악이
皆知善之爲善, 모두 잘함을 잘한다 할 줄 알자,
개지선지위선
斯不善已.1) 이에 못하게 되고 말았다.
사불선이

故 그러니까

有無相生; ‘유’와 ‘무’는 서로 생기고,
유무상생
難易相成; ‘난’과 ‘이’는 서로 이루네.
난이상성
長短相形; ‘장’과 ‘단’은 서로 나타내고,
장단상형
高下相傾; ‘고’와 ‘하’는 서로 기우네.
고하상경
音聲相和; ‘음’과 ‘성’은 서로 어울리고,
음성상화
前後相隨.2) ‘전’과 ‘후’는 서로 따르네.
전후상수(솨)

是以聖人 이로써 성인은
시이성인
處無爲之事. ‘무위’의 일을 처리하지.
처무위지사(시)
行不言之敎, ‘불언’의 가르침을 행하나니,
행불언지교
萬物作焉而不辭. 만물이 예서 일어나되 말하지 않지.
만물작언이불사(시)
生而不有; 낳으나 갖지 않으며,
생이불유
爲而不恃.3) 하면서도 뻐기지 않지.
위이불시

功成而不居. 공이 이루어지나 차지하지 않는다네.
공성이불거
夫唯不居, 무릇 오직 차지하지 않으니,
부유불거
是以不去.4) 이 때문에 떠나지 않는다네.
시이불거

【문장 구성】
네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단락은 대구이고 已로 중운(重韻)하고 있다. 또 ‘皆’와 ‘斯’를 반복함으로써 두운 효과를 내고 있다. 두 번째는 6구가 모두 대구이고, 生, 成, 形, 傾로 압운하다가 和, 隨(徐禾反)로 환운하고 있다. 세 번째 단락에서 生而不有와 爲而不恃가 대구를 이루고, 事(詩紙切), 辭(去聲), 恃로 압운하고 있다. 청대 유명한 음성학자인 강유고(江有誥)는 敎(音記), 有(音以)도 운으로 보고 있다(≪老子韻讀≫). 네 번째 단락은 居, 居, 去(平聲)로 압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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