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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인문계열 > 철학
· ISBN : 9788968498473
· 쪽수 : 442쪽
· 출판일 : 2022-02-18
책 소개
목차
일러두기 / 04
장자의 정독正讀을 위하여 / 06
소요유逍遙遊
해제 / 22
제1장 웅비하는 붕새처럼 / 25
제2장 천하를 준다 해도 / 39
제3장 막고야산의 신인들 / 43
제4장 쓸모 너머의 쓸모 / 50
제물론齊物論
해제 / 60
제1장 지뢰와 천뢰: 대지와 하늘의 소리 / 65
제2장 인뢰: 세상의 소리 / 71
제3장 보광: 어두운 빛 / 108
제4장 안다는 것 / 116
제5장 하나가 된다는 것 / 121
제6장 누가 시비를 정하랴 / 129
제7장 그림자와 나비 꿈 / 133
양생주養生主
해제 / 140
제1장 양생의 핵심: 독맥督脈 / 142
제2장 포정의 소 잡기(庖丁解牛) / 145
제3장 당당한 외다리 / 151
제4장 양생의 출발: 죽음 제대로 보기 / 155
인간세人間世
해제 / 162
제1장 유세遊說에 대하여 / 165
제2장 외교에 대하여 / 186
제3장 포악한 권력 길들이기 / 197
제4장 사당의 거목 / 203
제5장 상구商丘의 거목 / 209
제6장 망형忘形과 망덕忘德 / 214
제7장 광접여狂接輿의 노래 / 218
제8장 쓸모없음의 쓸모 / 221
덕충부德充符
해제 / 224
제1장 말없는 가르침: 왕태王駘 / 227
제2장 당당한 외다리: 신도가申徒嘉 / 236
제3장 공자를 질책한 전과자: 숙산무지叔山無趾 / 242
제4장 못생긴 멋쟁이: 애태타哀駘它 / 246
제5장 모든 장애를 이기는 덕 / 257
제6장 성인이 무정無情하다는 의미 / 261
대종사大宗師
해제 / 266
제1장 대중의 대종사: 진인眞人 / 269
제2장 대종사로서의 도 / 284
제3장 득도의 단계와 그 계보 / 294
제4장 죽음과 삶은 하나 / 301
제5장 물고기는 물에서 사람은 도에서 / 309
제6장 슬픔도 즐거움도 넘어서 / 318
제7장 나의 스승은 이런 분 / 323
제8장 좌망坐忘: 앉아서 잊는다는 것 / 327
제9장 당당한 빈곤 / 331
응제왕應帝王
해제 / 336
제1장 유우씨有虞氏와 태씨泰氏 / 339
제2장 내버려 두세요 / 343
제3장 천하를 다스린다고? / 346
제4장 명왕明王의 자질 / 349
제5장 호자壺子와 열자列子 / 353
제6장 지인至人 / 365
제7장 혼돈渾沌의 죽음 / 368
부록 1) 세계 3대 창세신화와 6대 종교 ᐨ노장 사상의 종교적 위치ᐨ / 372
부록 2) 巫에서 유가와 도가로 / 408
후기 / 437
책속에서
소요유逍 遙 遊
【해제】
‘소요’는 의태어로 유유자적하는 모습이고, ‘유’는 노닌다는 뜻이므로, ‘소요유’는 아무런 구속 없이 자유롭게 노닌다는 의미이다. 물론 단순히 평범한 놀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소요유는 현실을 초극하여 도의 세계에서 도와 하나가 되는 것으로서, 개인적으로는 ‘하늘’의 동반자가 되고 사회적으로는 ‘사람’의 동반자가 되어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서 노ㅤㄴㅣㄻ을 의미한다. 본 편은 장자 내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내편 7편을 총괄할 뿐만 아니라, 장자 전체 33편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우언과 살아 꿈틀대는 비유를 통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기발한 상상과 낭만적인 색채가 넘쳐나서 어느 문학작품에도 뒤지지 않는 매력을 갖고 있다. 또한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뛰어난 문학적 강성으로 성찰하고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철학적인 사변의 딱딱함에서 벗어나, 푸근한 공감을 느끼도록 해주고 있다.
본 편은 크게 4개의 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장은 구만 리 상공을 날아올라 북쪽 바다에서 남쪽 바다로 날아가는 붕새 이야기로 시작하므로, 〈웅비하는 붕새처럼〉이라고 부제를 달았다. 붕새의 웅비를 통해서 소요유를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아울러 소요유를 구현하는 사람이 바로 도가의 이상인 지인至人이고 신인神人이며 성인聖人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제2장 〈천하를 준다 해도〉는 천자의 자리를 양도하려는 요堯 임금과 이를 거절하는 허유許由의 이야기이다. 허유는 웅비하는 붕새, 다시 말해 소요유를 구현하고 있는 자이기에 천자라는 직책을 사양한다. 이는 소요유가 천자보다도 더 큰 일을 할 수 있고, 그렇기에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제3장 〈막고야산의 신인들〉은 막고야산에 있는 신인들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소요유를 거듭 설명하고 있다. 도의 세계에서 도와 함께 하는 신인들은 개인적으로 절대자유를 누리면서, 아울러 풍년을 들게 하는 커다란 능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소요유가 개인적 차원의 현실 도피가 결코 아님을 잘 보여준다.
제4장 〈쓸모 너머의 쓸모〉는 장자의 친구이자 당대 최고의 말꾼인 혜자惠子와의 대화를 통하여, 세속의 작은 쓸모를 넘어서는 도의 큰 쓸모를 설파하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이 생동감이 넘치는 비유를 들어가며 벌이는 논쟁은 매우 흥미롭다. 소요유의 쓸모가 바로 도의 쓸모이다.
장자가 활동하던 당시, ‘유’는 사회적인 유행이었다. 이 때 ‘유’는 ‘유세遊說’로, 이른바 제자백가諸子百家가 모두 유세객이었다. 장자도 물론 여기에 속하지만, 그의 유세는 달랐다. 대부분이 부국강병으로 요약되는 현실적 목표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는 난데없이 웅비하는 붕새처럼 소요유하라고 외쳤던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장자의 외침이 현실을 외면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소요유만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절대자유를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평화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한다고 장자는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에서 장자는 소요유를 통하여 ‘도와 함께 하는 웅혼한 삶’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이하 장자 내편 6편은 모두 소요유를 실현하는 방안을 단계별로 제시하고 있다.
‘도와 함께 하는 웅혼한 삶’은 작은 쓸모를 넘어서는 큰 쓸모를 추구하는 삶이고, 이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붕새의 웅비이다. 그런데 붕새 이전에 곤鯤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원래 ‘새끼 물고기’에 불과한 것이 몇 천 리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게 성장한 것이 곤이다. 물론 여기에서 ‘성장’은 생물학적 크기보다는 정신적 크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는 맹자孟子가 잘 키운 호연지기浩然之氣는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운다고 말한 것과 똑같은 경지이다. 아무튼 ‘새끼 물고기’가 성장하여 거대한 곤이 되었을 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것이 바로 붕새로의 탈바꿈이다. 곤과 붕은 이후 전개되는 장자 내편 6편의 내용을 개괄한다. 〈제물론〉 〈양생주〉 〈인간세〉는 바로 곤의 단계에 상응하고, 〈덕충부〉 〈대종사〉 〈응제왕〉은 붕의 단계에 상응한다. 그러므로 장자, 특히 내편은 ‘소요유’에서 출발하여 ‘소요유’로 귀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장 웅비하는 붕새처럼
1-1 붕새가 높이 나는 이유
북녘 검푸른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이 몇 천 리里가 되는지 알지 못한다. (어느 날 이 물고기가) 변신을 해서 새가 되니 그 이름을 붕鵬이라고 한다. 이 붕새의 등짝은 그것이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성난 듯이 힘차게 날아오르면, (그 활짝 편) 날개가 마치 하늘 한 모퉁이를 (뒤덮은) 구름과 같다. 이 새는 (큰 바람에) 바다가 움직이면 장차 남쪽 검푸른 바다로 날아간다. 남쪽 검푸른 바다는 천지天池, 즉 하늘의 연못이다.
제해齊諧는 괴이한 일을 기록한 책이다. 이 제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붕새가 남쪽 바다로 날아 갈 때에는 물 위에서 (날개로 수면을) 삼천 리里나 치고, 회오리를 일으키면서 올라가는 것이 구만 리이며, 유월이 내쉬는 큰 바람을 이용하여 멀리 떠나가는 것이다.”
(대기 중의) 아른아른 아지랑이와 뿌연 티끌은 생물들이 호흡으로써 서로 불어 내뱉은 것이다. (이런 자욱한 대지와 달리) 하늘이 푸르고 푸른 것은 그 본래의 빛깔인가? 아니면 (깊고 깊어 검푸른 바다처럼) 멀어서 그 끝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일까? 붕새가 내려다 볼 때에도 역시 이와 같을 따름이리라.
대저 물이 쌓인 것이 두텁지 아니하면 큰 배를 짊어지는 데 그만한 힘이 없다. 한 잔의 물을 마루의 움푹 파인 자리에 부으면 겨자씨가 그 위에 뜨는 배가 되지만, 거기에 잔을 놓으면 (바닥에 착) 달라붙고 만다. 물이 얕고 배가 크기 때문이다. 바람을 축적함이 도탑지 않으면 큰 날개를 짊어지는 데 그럴만한 힘이 없다. 그러므로 구만 리 (높이 올라가면) 그만한 바람이 바로 아래에 있게 된다. 그런 뒤 이제야 (충분한) 바람을 쌓게 되는 것이다. 등에 푸른 하늘을 짊어지고 그 붕새를 가로막는 것이 없는 경우라야 그런 뒤 이제야 장차 남행을 도모한다. 매미나 작은 비둘기가 이것을 비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재빨리 일어서서 날아오르면 느릅나무나 박달나무 (끝)에 도달한다, 때로는 거기에도 이르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런데 저 붕새는) 구만 리를 올라가서 남행함으로써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어렴풋하게 (먼) 교외로 나가는 사람은 세 끼를 먹고 돌아와도 배가 여전히 든든하지만, 백 리 길을 가는 사람은 전날 밤새우며 식량을 절구질해야 하고, 천 리 길을 가는 사람은 석 달 동안 식량을 모아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 저 두 미물이 또한 무엇을 알겠는가?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은 수명은 긴 수명에 미치지 못한다. 어떻게 그것이 그러함을 알 수 있는가? 아침에 나서 저녁에 스러지는 버섯은 그믐과 초하루, 즉 달(月)을 알지 못하고, 매미는 봄과 가을, 즉 해(年)를 알지 못하나니, 이는 곧 짧은 수명들이다. 초楚 나라 남쪽에 신령한 거북(冥靈)이 있었는데, 오백 년을 봄 한 철로 삼고, 오백 년을 가을 한 철로 삼았다. 상고시대에 거대한 참죽나무(大椿)가 있었는데, 팔천 년을 봄 한 철로 삼았고, 팔천 년을 가을 한 철로 삼았다. 이는 곧 긴 수명들이다. 그런데 지금 (인간 세계에서는) 팽조彭祖가 바로 오래 산 것으로서 특별히 알려져서, 모든 사람들이 그와 나란히 하고자 하니, 또한 슬프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