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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꿈 만들어진 화교

중국의 꿈 만들어진 화교

(중국 화교정책 역사)

최승현 (지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9-02-27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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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꿈 만들어진 화교

책 정보

· 제목 : 중국의 꿈 만들어진 화교 (중국 화교정책 역사)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사회과학계열 > 정치외교학 > 국제정치학
· ISBN : 9788968496158
· 쪽수 : 288쪽

책 소개

이 책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중국의 꿈에 의해 규정받고 동원되었던 화교의 삶이다. 중국의 화교정책 속에서 화교는 언제나 중국에 종속되어 있을 뿐, 독립되어 있지 못하다. 이 말인즉, 중국의 꿈에 따라 화교의 이용가치는 달라지며, 심지어 이 꿈에 따라 화교가 희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목차

일러두기 / 4
머리말 / 5

제1장 중국, 中國, China / 13
제2장 중국 해외 이민자의 여러 이름 / 35
제3장 만들어진 화교 / 69
제4장 통일전선을 위한 화교 / 91
제5장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화교 / 123
제6장 개혁개방을 위한 화교 / 149
제7장 화교경제의 특성과 화교네트워크 / 167
제8장 외교정책과 화교정책의 딜레마 / 183
제9장 귀교 교권 권익보호법 / 213
제10장 화교정책의 팽창과 조선족 / 237

부록
1. 대청국적조례 / 261
2. 이중국적문제에 관한 조약 / 265
3. 중화인민공화국 국적법 / 269
4. 귀교 교권 권익보호법 / 271
5. 귀교 교권 권익보호법 실시 시행령 /274

인명색인 / 278

저자소개

최승현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국제학부 한중문화학 전공 교수, 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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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제1장 중국, 中國, China

“중국”의 의미에 대한 질문

고유명사로서 “China”, 그리고 보통명사로서 “가운데 나라”라는 의미를 지닌 이 이름은 중국 전공자들에게 언제나 “中國”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던져왔다.

ㆍ 어떻게 수천 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중국”이라는 이름이 이어올 수 있었는가?
ㆍ 기후, 풍토뿐 아니라 언어, 인종마저도 다양한 저 광대한 땅이 어떻게 “중국”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질 수 있었는가?

저자는 유토피아의 개념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다. 유토피아, 이 매력적인 이름은 16세기 영국 사상가 토마스 모어가 창시한 것으로써 “이 세상에 없는 곳(Outopia)”과 “좋은 곳(Eutopia)”의 합성어, 즉 실재하지 않는 이상적 공간을 의미한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언제나 꿈을 꾸는 존재이다. 그러하기에 유토피아와 유사한 의미의 이름과 개념은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여러 시간대에 걸쳐 존재해왔고, 그래서 우리는 유토피아라는 보편화된 명칭을 마련해 준 토머스 모어에 감사할 뿐, 그의 유토피아를 다른 이상사회와 별개의 것으로 취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과거 중국에도 유토피아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 여러 모델이 있었다. 산해경(山海經)모델, 무릉도원(武陵桃源)모델, 삼신산(三神山)모델, 대동(大同)모델 등이 그것인데, 그 가운데 대동 모델은 인간적 유토피아라는 중국 이상사회의 전형을 보여준다. 대동의 가치아래 인간은 자연을 다듬어 가면서 온 세상이 평화롭게 번영하는 이상적인 삶을 영위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동은 실현가능한 유토피아였다.
이제 이 대동을 중국과 연결시켜보자. 중국은 이미 획정되어 있는(혹은 이미 획정되어 있다고 인식되어지는) 지정학적인 현실 공간인데 비해, 대동은 중국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 개방되어 있는 이상공간이다. 현재적 관점에서 보면, 즉 중국이라 명명된 지정학적 국가가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서 보면, 이 논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논의되어 왔던 모든 중국을 현실공간이라고 인정하기에는 꽤 근원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우리가 대동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이 사유체계가 동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중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주변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주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대동은 중국만의 것이 아닌 동아시아의 이상이며 또한 가치관이기도 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중국의 유토피아 문제에 대한 인식은 동아시아 각 국가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을 국가의 의미로 이해하면 조공(朝貢), 책봉(冊封), 정삭(正朔)의 내용을 가진 한중관계에서 한국 역사의 자주성은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하늘에 태양이 두 개일 수 없듯이, 백성에게도 왕이 둘일 수 없다”, 혹은 “하늘아래 왕의 땅이 아닌 것이 없다”라고 강조되는 중국의 모습은 지극히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다.
중국을 현실공간으로만 이해한다면, 이 질서에 참여했던 주변 역사공동체의 역사는 결국 종속적 역사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장구한 동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당시의 사람들이 이해했던 중국의 개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우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현실공간으로서의 그곳을 “중국”으로, 그리고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그것을 “中國”으로 나누어 표기하겠다.
“中國”, 혹은 “China”가 20세기 이후에 비로소 공식적인 국가의 명칭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점을 고려해 볼 때, 그 이전 한자를 공유했던 고대의 동아시아인들은 中國을 “中(가운데)”과 “國(나라)”, 즉 “가운데 나라”로 해석했다. 다음은 기원전 1세기 한(漢)나라 전국책(戰國策)에 언급된 “中國”에 대한 정의이다.

中國이라 하는 곳은 총명과 예지가 머무는 곳이요, 만물과 재물이 모이는 곳이며, 현자와 성인의 가르침이 있는 곳이요, 인의가 베풀어지는 곳이며, 시서예악이 쓰이는 곳이요, 기이하고 신령한 것과 기예가 시험되는 곳이며, 먼 지방이 우러러 찾아오는 곳이며, 오랑캐가 의를 따라 배우는 곳이다.

위의 정의에서 中國은 당시 한나라의 지정학적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유토피아 그 자체로 이해되고 있다. 중심, 즉 가운데라는 의미에서 출발한 中國은 중원왕조의 발전에 따라 더불어 팽창하였고, 그 공간은 현대인이 중화의식이라 이해하고 있는 유토피아적 이상으로 채워졌다. 역대 중원의 왕조는 정통이란 이름으로 이 中國을 계승코자 하였고, 문화적 수준을 달리 하고 있던 중원 바깥의 동아시아 각 왕조는 中國에 참여하거나 심지어 中國을 내재화함으로써 해당 왕조의 권위를 인정받고자 하였다.
태평천국(太平天國) 운동을 이끌었던 홍쉬추안의 중국인식은 유토피아로서의 中國에 대한 인식이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이다. 그는 태평천국이 바로 천조(天朝)이고, 이 천조가 통치하는 지역이 곧 中國이라 주장했다. 그에게 있어서 중국은 천하의 모든 나라가 함께 향유할 유토피아였음이 분명하다. 한편 조선을 포함하여 일본, 베트남이 때때로 스스로를 中國 혹은 中華라 칭했던 역사는 中國이 결코 지리적 중국에 제한되지 않고 동아시아 세계에 보편적으로 공유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될 것이다.
이번 장에서는 中國에 대한 근원적 의문에서 출발하여 그 개념이 가지고 있는 유토피아적 의미와 함께 고대 중국의 꿈이 무엇이었는가를 추적한다.

유토피아 中國의 역사적 변용

고대 : 공유된 中國
고대의 中國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어 왔다. 우선 고유명사로서의 China인데, 이는 도자기인 china 혹은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秦-Qin)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며, 주로 고대 중국과 문화체계가 다른 지역에서 통용되어왔다. 다음으로는 보통명사로서의 “中”이다. 이는 대게 현대의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 교류가 빈번한 지역에서 통용되었는데,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각국은 근대 이전까지도 中國을 China가 아닌 한자 그대로의 의미인 “가운데 나라”로 이해하였다. 고대 중원의 역대 왕조가 中國의 정통이라 자부하면서도, 왜 스스로의 왕조이름을 中國이 아닌 진(秦), 한(漢), 수(隋), 당(唐), 송(宋), 원(元), 명(明), 청 등으로 명명하였을까? 이 문제는 적어도 中國이란 이름이 어느 한 왕조가 독점할 수 있는 고유명사가 아니었음을 설명할 근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中國은 언제 출현하였는가? 가운데라는 개념의 출현은 사방(四方), 사해(四海), 사이(四夷) 등 방위적 개념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혹자는 이를 근거로 中國을 포함한 천하(天下), 사방(四方), 사해(四海), 구주(九州), 사이(四夷) 등 개념이 이미 하(夏)나라 이전에 출현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곧바로 인정하기는 사료가 부족하다. 대신 1963년 샨시(陝西)에서 출토된 유물에 다음의 내용이 쓰여 있다. 이는 中國이란 이름의 최초 출현 시기를 암시하고 있다.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물리치고 하늘에 고하기를, 나는 이곳 中國에 살며 백성을 다스린다.

이 밖에도 상서(尙書)에는 “하늘이 중국의 백성과 강토를 선왕(先王)에게 주어 개척하게 하였다.”이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언급된 선왕 역시 주나라의 무왕을 가리킨다. 또한 은(殷)나라 시기 동방(方), 서방(西方), 북방(北方)에 관한 기록과 함께, 왕실분묘에서 사방(四方)과 중심개념을 내포하고 있는 “亞” 형상이 발견되었다. 이는 모두 中國의 초기 개념이 은나라 때 이미 출현하였고, 中國이란 단어는 최소 기원전 11세기 주나라 무왕 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음을 설명한다.
은나라와 주나라 시대, 가운데라는 개념으로 출현한 中國은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 빈번히 논의되던 천하와 한데 묶어지면서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성격을 부여받는다. 특히 시경(詩經)이 거론하고 있는 中國은 고대 중국의 의미를 추적케 하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시경에 “우리 中國을 사랑하여 사방을 편안하게 하다”의 뜻으로 이해될 수 있는 “惠此中國以綏四方”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연속적으로 4차례에 걸쳐 그 의미를 확대하고 있다.

惠此中國以爲民逑
우리 中國을 사랑하여 백성들 벗이 되고자 하다.
惠此京師以綏四國
우리 서울을 사랑하여 주변 나라를 편안하게 하다.
惠此中國民憂泄
우리 中國을 사랑하여 백성들 근심을 없게 하다.
惠此中國國無有殘
우리 中國을 사랑하여 나라를 해치는 일을 없게 하다.

이 기록은 가운데라는 의미로 시작된 中國이 춘추시대에 이르면서 아무런 근심 없이 평온함이 넘치는 유토피아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유토피아가 그러하듯이 中國 역시 그 반대의 개념인 디스토피아를 전제한다. 즉, 유토피아-中國은 언제나 오랑캐인 이적(夷狄)과의 비교를 통해 그 이상을 드러낸다. 예의가 없는 이적은 어떤 경우에도 中國을 따라잡을 수 없는 존재이며, 또한 中國에 대해 결코 능동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끊임없이 中國을 괴롭힌다. 그러하기에 中國 군자의 의무는 이적으로부터 中國을 수호해야 할 뿐 아니라 예의를 통해 이적을 교화시켜 中國에 참여케 할 의무를 갖게 된다.
중국의 역사는 중원지역과 그 주변을 둘러싼 역사공동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탄생한 융합의 결과이다. 즉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는 중원지역의 초기 역사공동체였고, 춘추전국,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오대십국(五代十國) 등은 각 역사공동체사이의 융합과정이었으며, 한(漢)나라, 당(唐)나라, 청(淸)나라는 그 융합의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전개되었던 화하(華夏)와 이적(夷狄)에 관한 논쟁, 즉 유토피아-中國과 디스토피아-이적의 대결에 관한 논쟁에서 이 양자를 구분하는 척도는 예의라 하는 문화(혹은 신념)적 조건이었지, 특정종족이나 특정지역을 뜻하는 절대적 조건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춘추전국시기 초(楚)나라는 스스로를 오랑캐인 만이(蠻夷)라 낮추었지만, 초나라가 보여준 예의로 인해 中國으로 인정받았고, 반대로 정(鄭)나라는 원래 中國에 속했지만 그 행위가 예의에 부합하지 않아 이적으로 내몰렸다.
민족융합의 시대인 춘추전국시대부터 예의를 기준으로 가해지던 中國에 대한 해석은 위진남북조시대와 송요금(宋遼金) 대치시대를 경과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위진남북조시대, 남과 북의 왕조는 각기 스스로를 中國이라 자부하면서 상대를 북방오랑캐, 섬 오랑캐 등으로 멸시하였는데, 이는 中國이라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정통을 둘러싼 쟁탈전이었다.
요나라에 이르면서 중국에 대한 해석은 더욱 확대되었다. 당초 태생은 거란이라고 불리는 오랑캐이지만 이미 중원을 차지하고 있던 요나라는 예의가 있다면 어디든 中國일 수 있다면서 中國을 다원화시켰다. 요나라는 스스로뿐만 아니라 경쟁 상대였던 송나라까지도 역시 中國이라 칭했다. 요나라의 경우와 같이 한족이 아닌 만주족 출신으로 중원을 통치한 청(淸)나라는 이 다원적 中國의 가치를 계승하였다. 청나라 옹정제(雍正帝)는 中國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한다.

과거 중국이 통일된 이래 그 강역은 넓지 않아, 그 가운데 중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는 이적으로 배척되었다. 그런데 요순삼대 이전 묘(苗), 형초(楚), 험윤은 현재의 후난(湖南), 후베이(湖北), 샨시(山西)지역인데, 오늘날 어찌 이적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청나라는 만주이며 역시 중국의 일원이다. 순(舜)임금은 동이(東夷)이고, 문황(文王)은 서이(西夷)이지만, 어찌 그 성스러운 덕을 폄하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예의를 기준으로 한 中國인식은 중국 땅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과거 조선, 일본, 베트남 또한 中國을 자처하였다는 사실은 中國이 갖는 보편적이고 다원적인 의미를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일본과 베트남의 각종 사료를 뒤져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ㆍ中國에 성(聖)이 있으면 곧 제후가 따른다.
ㆍ신라(新羅)가 中國을 모시지 않는다.
ㆍ中國을 편하게 하다.
ㆍ적들이 中國에 있어 민심이 불안하다.
ㆍ中國의 영웅호걸

흥미롭게도 위에서 언급된 모든 中國은 중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일본 혹은 베트남 스스로를 가리키고 있다. 조선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다음의 기록이 있다.

우리 동방은 기자(箕子)가 오신 이후 교화가 크게 행해져 남자에게는 열사의 기풍이, 여자에게는 정절의 풍속이 만들어져 역사적으로 “작은 중화-소중화(小中華)”라 칭했다.

조선 초기, 조선은 스스로를 “작은 중화”라 낮추었지만, 만주족이 중원을 장악한 이후부터는 아예 스스로를 中國이며 중화(中華)라 선언하면서 오히려 중원왕조인 청나라를 멸시하였다. 중원이라는 공간에 中國을 계승한다던 당나라, 명나라, 청나라가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일본, 베트남, 조선은 스스로를 中國이라 자부하고 있었고, 심지어 중원의 왕조를 오히려 “적(賊)”이나 오랑캐라고 멸시했던 것이다.
결국 고대 동아시아에서 이야기되던 中國은 예의만 있다면 어디에나 실현 될 수 있는 이상공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고대 중원의 모든 왕조는 스스로 中國의 정통을 잇고, 中國을 실현한다고 했을 뿐, 中國이라는 국호를 붙이지 못했다.
예의를 아는 자가 어찌 감히 스스로를 군자라 칭하고, 스스로의 공간을 中國이라 높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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