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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다움의 속삭임

광주다움의 속삭임

김병인, 김승환, 김지수, 박건웅, 백형대, 오승주, 윤동현, 윤순상, 홍지웅 (지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9-11-05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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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다움의 속삭임

책 정보

· 제목 : 광주다움의 속삭임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인문계열 > 역사학
· ISBN : 9788968496660
· 쪽수 : 224쪽

책 소개

전남대 사학과 김병인 교수는 강의 방법과 내용에 변화를 주면서도 줄곧 유지된 기준이 하나 있었는데, 전공 글쓰기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책은 20대의 관점에서 광주의 본 모습을 찾아서 ‘광주다움’에 대해 속삭여 본다.

목차

책을 펴내며 / 5

5ㆍ18 광주정신과 헌법(전문)의 역사인식 / 김병인 / 13
불국토 이상국가를 꿈꿨던 무진주 / 오승주 / 17
‘同經異感’과 待春의 거리 충장로 / 김지수 / 45
열정과 낭만의 공간, 버들나무 숲(楊林) / 박건웅 / 57
거리를 휘감은 忠義의 기운 / 김승환 / 83
‘광주정신’을 탄생시킨 1929년의 청년들!!! / 홍지웅 / 107
지금 우리 안의 5ㆍ18 / 백형대 / 135
광주의 야구, 야구의 광주 / 윤순상 / 159
‘광주다움’의 미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윤동현 / 189

저자소개

김병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상시분속(傷時憤俗)의 정신과 청년의 열정으로’ 학생들과 동행(同行)ㆍ이감(異感)을 이루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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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사학과 학생. 앞으로 창대할 미래를 위해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있고, 최근에는 우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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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사학과 학생. 역사를 소재로 한 콘텐츠에 관심이 많으며,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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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웅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사학과 학생. ‘작은 것을 보더라도 자세히’, ‘당연한 것을 보더라도 새롭게’라는 인생철학으로 삶의 한 장면 한 장면을 후회 없는 순간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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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형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녹동고등학교 교사. ‘학생들의 삶과 연결되는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교육현장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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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사학과 학생. 학교를 벗어난 다양한 곳에서 지혜를 얻고자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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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현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사학과 학생. 사람들 놀래주는 재미로 역사학을 실천하고 있으며, 하는 일이 뚜렷하니 하다보면 뭐든 되겠지 편하게 마음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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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상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사학과 학생. 종목불문 스포츠 마니아, 그러나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는 대한민국 대다수 청년 중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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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웅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사학과 학생.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기 위해 역사를 배우고 있으며, 그동안 억새마냥 흔들리다가 드디어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첫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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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5ㆍ18 광주정신과 헌법(전문)의 역사인식

김병인
전남대 사학과 교수

‘5ㆍ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있다. ‘5ㆍ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새벽까지 열흘 동안,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당시 신군부 세력의 지휘를 받은 계엄군의 폭력적인 진압에 맞서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이 ‘비상계엄 철폐’, ‘유신세력 척결’ 등을 외치며 죽음을 무릅쓰고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항거한 역사적 사건”을 말한다. 이후 5ㆍ18 문제 해결을 위한 5대 과제 즉, 진상규명ㆍ책임자 처벌ㆍ명예회복ㆍ보상 및 배상ㆍ기념사업을 위한 기나긴 투쟁을 ‘5월운동’이라 부른다. ‘5ㆍ18민주화운동’은 통상적으로 전자와 후자를 합친 개념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5ㆍ18민주화운동’을 위한 투쟁, 기억, 기념, 실천하고자 하는 일련의 사유와 마음가짐을 ‘광주정신’ 혹은 ‘5월정신’이라고 명명한다.
현재 ‘5ㆍ18민주화운동’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망월묘역은 국립묘지로 운영되고 있다. 명실 공히 국가가 기념하고 국민이 추념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5월 18일 대통령이 참석하여 기념식을 거행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게 되면서 그 역사적 위상은 점차 커져가고 있다. 이제 5ㆍ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자는 주장도 과격하거나 어색해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5ㆍ18과 헌법 정신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우리 헌법 전문(前文)은 328글자로 이루어졌다. 쉼표는 여섯 개이지만 마침표가 하나이니까 한 문장임을 알 수 있다. 주부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이며, 술부는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이다. 그렇다. 우리 헌법의 제정과 개정 주체는 ‘우리 대한국민’이다. 우리 국민이 헌법을 개정하면서 계승하는 역사적 사건과 정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다. 다른 하나는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이다. 즉,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잊지 말고 계승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고 다짐하였다. 이러한 헌법 전문의 정신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친일이 뭐가 잘못이냐?’라거나, ‘식민지 경험 때문에 잘살게 되었다’는 망언은 나올 수가 없다. 모두 반헌법적 언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일파의 후손이 고위공직자가 되기 일상이고, 유수 국립대 교수가 식민지근대화론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현실은 부끄럽고 치욕적이기까지 하다. 여야와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입만 열면 헌법적 가치와 헌정질서를 운운하는데,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우리가 의외로 헌법 정신을 모르고 있거나 무신경한 것은 아닌지 저어할 뿐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매사에 극도로 분열되어 있고 곳곳에 갈등의 불편함과 어려움이 산재해 있다. 선거의 결과나 진영의 논리만으로는 결코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서로 인정하거나 공감하려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출구는 우리 모두가 동의하고 공유하는 헌법적 가치와 헌정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서로의 논리로 합쳐지기 어렵다면 헌법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헌법 정신으로 대화하고 해결하자.
5ㆍ18에 대한 추숭과 경외가 일반적이지만, 왜곡과 비난도 만만치 않다. 고발도 하고 재판도 하고 대응도 하지만 쉽게 멈출 것 같지 않다. 그래서 5ㆍ18의 정신을 헌법적 가치로 승화시키자는 논의는 다행스럽고 의미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모든 권력을 국민에게서 나오는 바, 그 국민의 생명을 손상하고 앗아가면서 권력을 찬탈하고자 하는 신군부에 맞서 ‘국민’과 ‘국가’를 지켜낸 것이 바로 ‘5ㆍ18민주화운동’이기 때문이다. 만약 1980년 5월 신군부의 쿠데타에 맞서 어느 국민도 저항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7년 단임으로 권력을 내놓았겠는가?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겠는가? 박정희 18년 독재정권이 반복되지 않았으리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때 광주시민이 분연히 일어나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다’고 외치며 항거하면서 목숨을 내놓고 ‘주인임을 행세했기’ 때문에 우리는 5월운동을 통해 6월항쟁을 승리로 이끌고 6ㆍ29선언과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1980년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은 ‘진정한 국민’이었던 것이다. 그 위대한 국민의 항쟁과 민주화운동을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데에서 뛰어넘어 헌법 정신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역사적 당위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헌법 전문에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4ㆍ19혁명, 부마항쟁, 5ㆍ18민주화운동, 6ㆍ10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선언함으로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5ㆍ18정신’을 보편적인 역사인식으로 사유하고 기념하고 계승하고 실천하는 위대한 ‘민주국민의 시대’가 펼쳐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불국토 이상국가를 꿈꿨던 무진주

오승주
전남대 사학과 4

무진주의 꿈을 찾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혹시 ‘광주’하면 떠오르는 종교가 뭐냐고 질문을 한 번 던져 보자.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림동의 기독교를 떠올릴 것이다. 물음을 바꿔 광주와 불교와의 상관성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 거릴 것이다. 얼핏 광주와 불교를 연결시키는 것은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광주와 불교를 연관시키기 어려운 까닭은 무엇일까? 크게 3가지의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관련 정보와 학습의 부재 혹은 부족을 들 수 있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딱히 광주지역의 불교문화유산에 대한 학습을 받아본 적이 없다. 만약 광주지역 불교문화에 대한 수업이 있었다면, 광주에 불교문화유산이 많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광주시민이 갖고 있는 불교와의 심리적 거리감도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2015년 종교 인구조사를 보면, 광주광역시 전체 인구에서 약 9.5%(139,030)만이 불교신자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개신교를 믿는 19.9%(292,140)와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다른 광역시와 비교한다면 그 차이는 더 커진다. 부산광역시는 약 28.5%(958,638명)가 불교 신자이고, 약 12.1%(407,659명)가 기독교 신자이다. 대구광역시는 23.7%(571,511명) : 12.0%(288,540명), 인천광역시는 8.7%(244,467명) : 23.0%%(642,515명), 대전광역시는 13.9%(209,450명) : 21.8% (327,421명), 울산광역시는 29.7%(333,441명) : 10.9%(122,159명)으로 각각 불교신자와 기독교신자의 비율 차이를 보인다. 기독교신자가 훨씬 많은 광주에 비해 부산, 대구, 울산에서는 불교신자가 기독교신자보다 수가 많다. 이로써 광주시민들이 종교적 감성 차원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증심사나 원효사 같은 사찰을 불교 문화유산이 아니라, 무등산에 속해있는 부속물로 인식한다는 점도 무시 못 할 특징이다. 광주사람들은 사찰을 갈 때, 절 방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무등산을 올라가다 만나는 장소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사찰을 종교공간으로서 신성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산행의 길목에 위치한 휴식처로서 친밀하게 여기고 있음을 뜻한다. 이로 인해 광주시내에 존재하는 불교문화의 중심 공간으로서 증심사나 원효사의 위상을 드러내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광주 고지도의 한 가운데 사각형으로 위치하고 있는 것이 광주읍성이다. 읍성 뒤로 우뚝 서있는 산은 광주를 대표하는 무등산이다. 무등산과 읍성 사이에 탑과 부도가 있는 곳이 원효사이다. 원효사뿐만 아니라 지도 곳곳에 탑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도에서 보듯이 과거에도 광주에는 많은 불교 문화유산이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절과 많은 불교 문화유산이 있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양림동 기독교와 관련 된 문화유산은 시도유형문화재 1점, 시도기념물 1점이 전부이다. 그러나 광주 소재 불교 관련 문화재는 국보 1점, 보물 6점, 시도유형 문화재 14점 등을 포함하여 그 수가 훨씬 압도적으로 많다. 물론 단순히 문화유산의 수가 많다고 해서 그 종교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독교 관련 문화유산은 국가지정 문화재가 한 점도 없다는 것에 반해, 불교 관련 문화유산은 7점 있다는 것은 광주와 불교를 좀 더 연관시켜 생각해볼 필요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광주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광주에 있는 불교유산을 살펴보는 것도 유효한 방법으로 여겨진다. 광주지역에 있는 불교 문화유산은 신라시대 9소경의 하나였던 무진주(武珍州)의 역사적 전통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무진주가 꿈꿨던 ‘불국토(佛國土) 이상국가’의 흔적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꿈꿔야 할 ‘이상’은 무엇인지 속삭여 보고자 한다.

‘무진주’의 명칭 유래

광주지역에 국가 단위의 사회가 등장한 시기는 삼국시대일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한조의 기록과 출토된 유물 등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마한지역 중 광주와 관련된 마한 내의 소국은 구사오단국(臼斯烏旦國)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제의 근초고왕 대에 와서는 광주지역에 터를 잡았던 마한 세력이 완전히 백제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행정구역 단위로서 광주가 역사기록에 처음 나타난 것은 백제 동성왕 20년(498) 때의 일이다. 백제시대 광주는 무진주라 불렸고, 호남 지역 및 제주도 지역의 조공을 거두어들이는 경로로서 유력한 군사적ㆍ경제적 요충지였다.
광주는 통일 이후에는 주로 무진군(武珍郡), 무진주(武珍州), 무주(武州) 등으로 불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문왕 6년(686)에 무진군을 무진주로 바꾸었으며, 이후 경덕왕이 무주로 고쳤다. 당시 무주가 거느린 현은 3개였는데, 현웅현(玄雄縣: 지금의 남평)ㆍ용산현(龍山縣: 지금의 광산구 복룡동)ㆍ기양현(祈陽縣: 지금의 창평)을 말한다. 광주가 무주로 칭해진 것은 “신라가 그 땅을 모두 합병하여 웅주, 전주, 무주 및 여러 군현을 설치하고 고구려의 남쪽경계 및 신라의 옛 땅을 합하여 9주를 만들었다”는 『삼국사기』 무진주 조항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즉,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다음 경덕왕 16년(757)에 전국을 9주로 나누고 그 아래에 군현을 두었는데, 이때 무주로 바뀐 것이었다.
통일신라가 쇠퇴할 무렵 견훤은 무진주를 중심으로 후백제 건국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무진주는 후백제의 전략적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된다. 고려의 건국을 전후한 시기에 기존 무주 혹은 무진주라 불리던 이 지역은 ‘광주(光州)’라는 지명으로 불리기 시작하여, 고려 태조 23년(940)에는 광주가 공식적인 명칭으로 확정된다. 이후 여러 차례의 행정변화를 겪었지만, ‘광주’라는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는 경향을 보인다. 조선 건국 이후 광주는 농업지대에 위치한 큰 읍으로 존재하였으나, 정치적으로는 그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하였다. 광주는 전남지방의 한 중심 도시로서 성장해 왔지만, 나주의 역할에 비해서는 크게 두드러지지 못하였고, 또 이 지역 출신 인사가 중앙 정계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한 경우도 드물었다. 다만 임진왜란의 와중에서 고경명과 김덕령 등 이 지역 출신의 의병활동이 두드려졌던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들의 활약으로 전라도 지역이 온전하게 보전됨으로써, 식량의 산출 및 이순신 수군 활동의 기지로서 역할을 담당해 궁극적으로 국난 타개의 견인차 노릇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무등산에 안긴 천년 고찰의 풍모

‘무등산’은 불교적 사유를 내포한 산 이름이다. 『佛說十地經』(1권)에 의하면 ‘무등’(無等, asama)은 “대등한 것이 없을 만큼 뛰어난 부처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등산 정상인 천왕봉은 물론 지왕봉, 인왕봉, 비로봉, 반야봉도 불교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사찰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사천왕상과 금강문, 비로자나불과 반야심경 등을 생각하면 된다. 이외 법화대, 설법대, 능엄대 등 십대석(十臺石)에도 불교식 이름을 붙인 경우가 많아서, 무등산은 불교와 인연이 깊은 산이라 할 수 있다. 최남선의 ?심춘순례?에서는 “무등산에 절이 많아서 열 걸음마다 하나씩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무등산의 핵심이 불교임을 알려주는 언급이라고 할 수 있다.
무등산은 『삼국사기』에 무진악(武珍岳)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등장하는데, 소사(小祀)를 지내는 23곳 중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 『고려사』 잡지 제사 중 해양현(海陽縣) 조항에서 무등산에 대해서 “무진악(武珍岳)이라고도 하고, 서석산(瑞石山)이라고도 하며 신라에서 소사(小祀)로 하였고, 고려에서는 나라의 제사[國祭]를 지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지 악 조항에서는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鎭山)이다. 광주는 전라도의 큰 읍인데, 이 산에 성을 쌓으니 백성들이 의지하여 안전하게 지내게 되어 즐거워하며 노래를 불렀다.”고 하여 진산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조선의 건국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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