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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68970344
· 쪽수 : 316쪽
· 출판일 : 2017-04-20
책 소개
목차
음모의 시작
첫 출근
재회
가능할지도 모를 음모
혼자만의 계산
책속에서
“일어나!”
세진이 흠칫 놀라며 뒤돌아보았다. 이경이 병실 문 앞에 서서 냉랭한 눈빛을 날리고 있었다.
“꼴사납게 뭐하는 짓이야? 어서 일어나!”
세진은 혼란스러워하다 천천히 무릎을 폈다.
“손 사장님, 우리 회사 직원이에요.”
손기태와 마리는 깜작 놀랐다. 세진은 더더욱 놀랐다.
“사소한 시비 같은데 이 정도로 끝내죠.”
“나 다친 거 안 보여요? 저 기집애가 이렇게…….”
이경이 서늘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마리는 찔끔 입을 다물었다. 애비 된 도리로 손기태가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어이, 서 대표.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돼?”
“기억력 참 나쁘시네.”
“뭐?”
손기태가 눈을 부릅떴다.
“하마터면 내 대신 죽을 뻔한 그 아이에요.”
손기태만이 무슨 소리인지 바로 알아듣고 흠칫했다.
“지금 나, 무척 애쓰고 있거든? 당신들, 그 추악한 꼬락서니 폭로하지 않으려고.”
이경의 서늘한 말투에 손기태는 뒷걸음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니까 그 아이, 더 이상 건드리지 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이경이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잘난 척할 거면 끝까지 잘났어야지. 겨우 저런 인간들 앞에서 무릎 꿇는 자존심이면 그만 갖다 버려.”
세진은 억울했다. 고마워도 할 말은 해야 했다.
“누군 좋아서 꿇은 줄 알아요? 나도 분해요! 분하고 억울하다고요!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친 거뿐인데. 가난이 죄예요? 없이 태어난 게 내 잘못이에요?”
“당연하지. 가난하면 죄야.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봤자 속는 건 너 하나뿐이야. 세상은 결코 속지 않아. 약하니까 밟히는 거고, 없으니까 당하는 거야.”
울부짖는 세진과 다르게 이경의 목소리엔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 도착 음이 울렸다. 세진은 솟구치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소리쳤다.
“대표님도 똑같잖아요! 가진 거 없고, 기댈 데 없는 흙수저니까, 대표님 맘대로 조종할 수 있겠다 싶어 절 고른 거잖아요. 아니에요?”
“맞아. 넌 지금 네가 샀던 싸구려 손거울이야. 5천 원 정도 하려나? 그렇지만 내가 마음먹으면 넌 오천, 오억, 그 이상의 값어치로 올려놓을 수 있어.”
세진은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가진 게 없으니까 채워주고, 기댈 곳이 필요하면 받쳐주고. 그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널 만들어서 철저하게 이용할 거야.”
“처음부터 날 점찍은 거예요? 경매에서 만난 그날?”
“말했잖아. 한번 탐낸 건 결코 잊지 않는다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이경이 올라섰다.
“대표님, 진짜로 날 만들어줄 수 있어요? 대표님처럼?”
이경은 뒤돌아보았다.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세진은 보았다. 문틈 사이로 그녀가 미소 짓는 것을. 세진은 열망으로 눈물을 말렸다. 입술을 깨물며 닫힌 엘리베이터를 한동안 쳐다보았다.